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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개신교는 회개하고 민중의 편에 서라

개신교는 회개하고 민중의 편에 서라
박근혜와 함께 청산해야할 과제 - 종교
[민중의소리] 백창욱 (대구 새민족교회 목사) | 발행 : 2016-12-25 09:44:31 | 수정 : 2016-12-25 09:44:31


한국은 독재를 해야 돼, 하나님이 독재하셨어, 하나님이! 이런 걸 해결하는 분이 고 박정희대통령인 줄 믿습니다.

특별히 전두환사령관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누가 경제살려 달라고 대통령 세웠어! 우리가 장로님을 대통령 세울 때는, 종북주의자 척결해 달라고 세운거야!

한 유명팟캐스트가 기독교집회에서 나온 말들을 편집한 소리이다. 필자의 귀를 의심스럽게 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18년 동안 시민 위에 군림하고 시민을 학살하고 사대강을 온통 공사판으로 만들어 탐욕을 채웠던 문제의 대통령들을 칭송하는 설교와 기도이다. 단 한 마디도 동의할 수 없는 헛소리들은 박근혜가 참석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정점에 달했다.

▲ 청와대에서 기독교 원로 김장환(극동방송 이사장, 오른쪽) 목사와 김삼환(명성교회 원로, 왼쪽) 목사를 만나는 박근혜 ⓒ청와대 제공/뉴시스


2014년 3월 6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김삼환목사는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 통일을 위해 세워주신 하나님의 일꾼 고레스와 같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나팔을 불었다. 고레스는 바벨론포로로 끌려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땅으로 돌아가게 한, 당시 세계를 평정한 페르시아제국의 초대 왕이다. 무능한 박근혜를 고레스에 비긴 것은 지나친 아부였다.

말로만 하는 아부로는 부족했는가. 2016년 3월 3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소강석목사는 “외국 유명 여성정치인들은 몸매가 육중한데 비해, 박근혜는 여성미와 모성애적인 따뜻한 미소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외국 여성정치인들의 몸매를 깍아내리며, 대상화하는 위험발언을 감수하면서까지 박근혜의 외모를 추켜세웠다. 소목사는 이 말 뒤에 “이럴 때 박수안치는 분들은 좀 사상이 불순하지 않나 싶다”며 사상적 충성심까지 내비치었다.

이게 한국개신교의 실상이다. 성공했다는 목사들이 누구 한 사람 예외없이 권력에 붙어서 나팔 불었다. 박근혜에게 맹목적인 찬사를 늘어놓았다. 한마디로 종교부역자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칭송해 마지않던 박근혜가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탄핵당했다.

매체에서 연일 쏟아지는 국정농단 뉴스에 시민들은 허탈하고 분노했다.

민주공화국을 유지하는 공적시스템이 박근혜에게는 하찮은 것이었다.

심지어 박근혜 일당들은 시민이 위임해 준 권력을 사적보복수단으로 이용했다.

권력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과 민주시민들에게는 무자비했던 공적시스템이 그들에게는 그냥 만만한 공기돌이었다.

수백 명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한가하게 머리단장을 하는 사람, 애초에 박근혜는 대통령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대통령 자질은 고사하고 인간 품성이 비정상인 사람에게 이 나라는 너무도 무모한 선택을 했다.

기득권카르텔은 자신들의 탐욕유지를 위해 박근혜를 내세웠고 종교부역자들도 이 행렬에 가담한 것이다.


기독교는 원래 권력과 친하지 않았다

원래 기독교는 권력과 절대 친하지 않다. 예수의 길잡이 세례자 요한은 헤롯왕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렸다. 예수는 로마제국과 부역자인 이스라엘 종교지배자들에게 십자가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기독교의 원조는 권력의 미움을 받고 죽었다. 그 정신을 이어받은 예수의 후예들도 마찬가지이다. 로마시대 때, 주님은 황제의 고유칭호였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주님을 예수에게 돌렸다. 황제의 역린을 건드리면서까지 예수는 주님이라고 고백했다.

그뿐인가,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의 처음 이름은 프로테스탄트이다. 저항하는 사람이다. 무엇에 저항하는가? 당대 권력에 저항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공인받을 때 이미 맛이 갔다. 권력과 거리를 둬야 하는데 한 몸이 돼 간 것이다.

지금 교회는 대림절을 지내고 있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린다. 다시 오실 예수의 상은 심판자이다. 타작마당의 키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 또 쭉정이는 불에 태우실 것이라고 했다. 누가 쭉정이고 불에 태워질까?

단서가 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앞에 오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저주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당대 이스라엘 지배세력이다. 이들은 율법으로 민중을 학대하며 혈통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부류들이다. 제정일치시대여서 겉으로는 종교집단이지만 경제, 정치, 사회를 다 지배했다. 삼중고에 시달리는 민중이 그나마 해방구로 찾는 요한의 세례인데, 재벌이 골목상권 치고 들어오듯이, 그들이 세례까지 잠식하려고 찾아온지라, 요한의 분노를 격발한 것이다.

▲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질이 없다며 결단을 촉구하는 개신교 교단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비상시국대책회의(시국회의) 소속 목사들 ⓒ김철수 기자


오늘날은 누가 예수의 분노를 격발할까? 박근혜는 국정농단이 드러나고 온 나라가 들썩이자, 수습책이랍시고 기독교 인사로 김장환목사와 김삼환목사를 초청했다. 탄핵 전에는 국민통합위원장에 최성규목사를 임명했다. 딱 유유상종이다. 저같은 사람하고만 어울린다. 평생 권력과 밀착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혼란을 안정시킬 원로라고 불려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12월 21일에는, 박근혜와 두 목사가 구국기도회를 열어서 밀어주기로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회를 보신의 도구로 써 먹으려 한 것이다.

나라는 누가 구하는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공황을 겪었다. 조상 대대로 믿어온 야웨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바벨론의 신 마르둑과 신전을 보니 야웨신앙이 부질없어 보였다. 유다민족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 때 포로백성들과 민중사제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나온 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구약목록(후기문서 빼고)이다. 성서편찬으로 야웨신앙을 확립하면서 바벨론의 위용을 극복했다. 그리고 야웨신앙은 한 차원 더 승화했다.

이 나라 민주시민들이 백만 이백만 모이면서 촛불로 청와대를 포위하여 정세를 주도하며 정국을 확 뒤바뀌어 버린 것도 바로 그 역할이다. 결정적 순간에 한 역할하는 민중정치사의 한 단면을 확실하게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권력 깊숙한 데 숨겨져 있던 일들이 속속 드러나는 것을 볼 때, 이 배후에 하늘의 거룩한 뜻이 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개신교는 회개하고 민중과 함께해야

오늘날 이 나라 종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중 편에 서면 된다.

우리가 박근혜와 종교부역자들에게 분노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서로 좋아죽어라 하는 그 순간에도 권력의 압제에 신음하는 민중이 얼마나 많았던가!

진상규명이 안돼서 신음하는 세월호 참사 부모들, 해군기지와 싸우는 제주강정마을, 초고압송전탑이 지나는 밀양과 청도, 핵발전소를 옆에 끼고 사는 마을들, 이 마을들은 정권의 그 잘난 법집행과 자본의 돈놀음에 풍비박산났다.

손해배상가압류구속등으로 벼랑에 몰린 노동자들, 한 평도 안되는 광고탑에 올라간 노동자들, “쌀값 약속을 지키라”라고 시위하다가 박근혜정권에 죽은 백남기농민, 헬조선에서 갈 길을 못 찾는 청년들, 이 땅 처처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순과 적폐가 임계점에 달해서 고통받는 서민대중들.

지옥을 사는 사람들은 모르쇠하고 권력자를 향해 일방적으로 나팔부는 행위가 가증스러웠던 것이다.

필자는 우선 이 부역자들이 대중 앞에서 회개하기를 바란다. 회개는 말과 행실로 뉘우치는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나라 운동을 시작하는 첫 일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이다. 회개는 기독교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침묵모드이다. 그렇게 잠잠하다가 또 상황이 바뀌면 본색을 드러내려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 자숙하는 중인가. 부디 환골탈태하기 바란다.

아무리 박근혜탄핵 정국이지만, 이미 자본에 깊이 잠식돼 버린 종교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회의적이다. 그래도 방향을 제시하자면 가치의 틀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박근혜의 몰락이 그 부친 박정희 때부터 쌓인 개발독재신화를 끝장내고 새로운 가치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하듯이, 박정희신화와 함께 성장한 종교도 이제는 업적과 맘몬에 기초한 성공신화를 끝내야 한다. 진실로. 그리고 사람을 대상화하지 않고, 진정으로 사람을 중심에 놓는 본연의 가치에 주목하자.

필자는 그동안 무수한 투쟁현장에 몸을 담갔다. 거기서 억울하다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생존권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목도했다. 그들의 외침과 눈물이 생생하다. 그동안 이들은 이 나라 시민이 아니었다. 기득권의 전유물인 법과 물리력에 철저히 짓밟혔을 뿐이다. 이제 이들의 눈물과 한을 씻어줄 때가 왔다. 다행히 하나님이 이 나라를 보우하사 깨인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기회를 맞이했다. 종교도 이 천금같은 기회에 각성하여서 민중과 가까이 하는 갱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늘의 명령이다.


출처  [백창욱 칼럼] 개신교는 회개하고 민중의 편에 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