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전용철, 이경해를 기억하라
박근혜와 함께 청산해야할 과제 - 농업
[민중의소리]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 발행 : 2016-12-23 16:45:23 | 수정 : 2016-12-23 16:45:23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민중의 희구는 그동안 처절했다. 그러나 메아리도 들리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이 1년간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시민들은 공권력의 폭력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백남기 농민을 지켜내고 연대의 참다운 모습으로 폭력에 저항했다. 되돌려진 민주주의를 살려내고 주권자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와중에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전봉준투쟁단이 해남과 진주에서 국회의사당과 광화문으로 트랙터를 몰고 올라왔다. 경찰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차례의 시도 끝에 촛불시민들의 염원에 호응하며 광화문 광장에 안착했다. 촛불시민들의 반응은 실로 뜨거웠다. 각처에서 후원이 들어왔고 심지어 해외 교포들도 기름값에 보태라고 금일봉을 보내왔다.
시민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그렇게 표현했다. 새로운 세상, 필자의 우민함으로 새로운 세상을 이곳에 펼쳐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다. 땅을 갈아엎는 트랙터가 의미하는바가 논밭을 갈아엎고 새로운 씨앗을 뿌린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것은 금수저의 갑질로 부터 세상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소망이다. 소망은 행동이 되어 촛불로 횃불로 타오르기 시작 했다. 곧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는 촛불시민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깜냥으로 보면 누구나 잘먹고 잘사는 세상에 대한 기다림이다. 그것은 또한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최순실과 그의 부역자들이 보여준 갑질의 절정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극도로 불평등하며 주권마저 빼앗긴 세상이란 것을 눈치채고 만 것이다. 그동안 불평등한 구조가 강고함을 눈치 챗으면서도 비겁하지만 ‘강건너 불구경’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이제 촛불을 들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최순실과 그 일당들이 깨우쳐준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성장중심으로 모든 정책과 사회구조들이 편성되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맹신으로 이어졌다.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이 생명이다. 사회의 모든 구조가 무한경쟁이다. 연대나 협동은 이사회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힌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오로지 거대자본이다. 자본은 이윤를 위하여 노동자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자본은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피를 빨아댄다. 그리고 자본은 이 땅에서 농사를 몰아냈다.
개방농정이라고 했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는 우리농사에 광풍을 몰고 왔다. 비교우위라는 무한경쟁논리로 농민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결국 농촌인구는 급격히 감소해 200만이 채 남지 않았다. 그마저 65세의 고령이라 10년 후면 50만이 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농업총생산은 GDP의 1%에 불과하고 농가소득은 도시소득 대비 60%를 약간 웃돌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식량 자급률은 24%에 지나지 않아 농사로 국민들의 생활안정과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는 그야말로 헛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일일이 촛불시민들이 알 리가 없다. 그러나 농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열망에 대해서는 이심전심으로 이해했으리라. 그렇기에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대열에 열광했고 용기와 힘을 더해주고 농민들의 새로운 세상이 촛불시민들의 새로운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채기에 가능한 연대의 지지의사를 보내준 것이리라.
농민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에는 농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마침 헌법개정에 대한 요구도 조심스레 펼쳐지고 있음을 보며 권력구조뿐 아니라 국민주권의 폭도 넓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식량주권선언’이다. 이것은 단순히 농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국민전체의 권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식량주권’은 국민, 지역사회, 국가가 농민의 고유한 농업적 노동, 어업 그리고 생태적, 사회적, 경제, 문화적으로 그들의 고유 환경조건에 적절한 식량과 국토정책을 정의하기 위하여 가지는 권리다. 이것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진정한 권리를 포함하며 이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영양가 있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식량과 식재료 생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이들을 지속가능하게 함을 의미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농민들의 식량주권 사수는 실로 만들어 내기 어려운 고독한 싸움이었다. 이미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진 국민들과 정부의 ‘농업죽이기’ 정책은 농민들을 죄인 취급했고 주눅 들게 만들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변화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자본의 이윤를 위해 우리농민들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과 같다. 농사가 지속가능한 사회는 소통과 협동과 연대가 가능 해진다. 농업의 특성이 이윤이 될 수 없다. 이미 오래전 농업은 상품이 아니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상품이 되는 순간 농민은 사라지고 농촌은 파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서로가 돕고 나누는 가운데 평화(平和)가 만들어 진다는 사실. 그것이 평등한 사회의 튼튼한 밑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영국의 블랙시트나 미국의 트럼프 당선이 보여준 것은 무엇인가. 이는 분명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이 가져온 불평등의 극대화가 그런 모습으로 발현된 것이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무너졌다. 전경련이 해체되는 것은 이 땅에서 신자유주의가 해체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은 격차 없고 차별 없는 평등의 가치가 발현되는 세상일 것이다.
이는 농민들의 바라는 세상이기도 하다. 농사가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사는 무한경쟁이 필요치 않다. 협동과 연대로 농촌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위해 농촌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기본소득 등 사회부조를 통해 농민과 농촌이 붕괴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후계농민이 육성되고 귀농인들이 자리 잡도록 지원정책이 만들어 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농산물 가격지지정책이다. 농산물 가격이 생산비를 밑돌면 다른 정책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기초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정책은 그래서 필요하다.
헌법이 식량주권을 명시하고 사회적 합의로 식량주권선언이 가능해지려면 농사가 살아있어야 한다. 기득권과 자본의 방해책동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국민이 원하는 대로”를 강조해 말하는 정치인들을 촛불 시민들의 압박과 견인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
농사가 무너지면 지역이 무너지고 전체사회가 무너진다. 시민혁명의 완수는 식량주권 선언으로부터 시작하자. 식량주권 선언은 주권재민의 살아있는 다른 표현이다.
출처 [한도숙 칼럼] 백남기, 전용철, 이경해를 기억하라
박근혜와 함께 청산해야할 과제 - 농업
[민중의소리]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 발행 : 2016-12-23 16:45:23 | 수정 : 2016-12-23 16:45:23
▲ 안성종합운동장 인근에서 경찰에 가로막혔던 전봉준투쟁단이 12시 40분경 청와대로의 행진을 다시 시작했다. ⓒ민중의소리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민중의 희구는 그동안 처절했다. 그러나 메아리도 들리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이 1년간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시민들은 공권력의 폭력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백남기 농민을 지켜내고 연대의 참다운 모습으로 폭력에 저항했다. 되돌려진 민주주의를 살려내고 주권자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와중에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전봉준투쟁단이 해남과 진주에서 국회의사당과 광화문으로 트랙터를 몰고 올라왔다. 경찰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차례의 시도 끝에 촛불시민들의 염원에 호응하며 광화문 광장에 안착했다. 촛불시민들의 반응은 실로 뜨거웠다. 각처에서 후원이 들어왔고 심지어 해외 교포들도 기름값에 보태라고 금일봉을 보내왔다.
시민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그렇게 표현했다. 새로운 세상, 필자의 우민함으로 새로운 세상을 이곳에 펼쳐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다. 땅을 갈아엎는 트랙터가 의미하는바가 논밭을 갈아엎고 새로운 씨앗을 뿌린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것은 금수저의 갑질로 부터 세상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소망이다. 소망은 행동이 되어 촛불로 횃불로 타오르기 시작 했다. 곧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는 촛불시민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깜냥으로 보면 누구나 잘먹고 잘사는 세상에 대한 기다림이다. 그것은 또한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최순실과 그의 부역자들이 보여준 갑질의 절정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극도로 불평등하며 주권마저 빼앗긴 세상이란 것을 눈치채고 만 것이다. 그동안 불평등한 구조가 강고함을 눈치 챗으면서도 비겁하지만 ‘강건너 불구경’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이제 촛불을 들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최순실과 그 일당들이 깨우쳐준 것이다.
▲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전 발인과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 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 ⓒ김철수 기자
‘식량주권’은 농민만이 아닌 국민 전체의 권한
우리 사회는 그동안 성장중심으로 모든 정책과 사회구조들이 편성되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맹신으로 이어졌다.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이 생명이다. 사회의 모든 구조가 무한경쟁이다. 연대나 협동은 이사회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힌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오로지 거대자본이다. 자본은 이윤를 위하여 노동자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자본은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피를 빨아댄다. 그리고 자본은 이 땅에서 농사를 몰아냈다.
개방농정이라고 했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는 우리농사에 광풍을 몰고 왔다. 비교우위라는 무한경쟁논리로 농민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결국 농촌인구는 급격히 감소해 200만이 채 남지 않았다. 그마저 65세의 고령이라 10년 후면 50만이 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농업총생산은 GDP의 1%에 불과하고 농가소득은 도시소득 대비 60%를 약간 웃돌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식량 자급률은 24%에 지나지 않아 농사로 국민들의 생활안정과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는 그야말로 헛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일일이 촛불시민들이 알 리가 없다. 그러나 농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열망에 대해서는 이심전심으로 이해했으리라. 그렇기에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대열에 열광했고 용기와 힘을 더해주고 농민들의 새로운 세상이 촛불시민들의 새로운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채기에 가능한 연대의 지지의사를 보내준 것이리라.
농민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에는 농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마침 헌법개정에 대한 요구도 조심스레 펼쳐지고 있음을 보며 권력구조뿐 아니라 국민주권의 폭도 넓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식량주권선언’이다. 이것은 단순히 농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국민전체의 권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식량주권’은 국민, 지역사회, 국가가 농민의 고유한 농업적 노동, 어업 그리고 생태적, 사회적, 경제, 문화적으로 그들의 고유 환경조건에 적절한 식량과 국토정책을 정의하기 위하여 가지는 권리다. 이것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진정한 권리를 포함하며 이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영양가 있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식량과 식재료 생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이들을 지속가능하게 함을 의미하고 있다.
▲ 2005년 11월 15일 경찰에 폭행당해 쓰러진 故 전용철 농민을 다른 농민들이 발견해서 들고 공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시민혁명 완수는 ‘식량주권 선언’부터
지난 30년간 농민들의 식량주권 사수는 실로 만들어 내기 어려운 고독한 싸움이었다. 이미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진 국민들과 정부의 ‘농업죽이기’ 정책은 농민들을 죄인 취급했고 주눅 들게 만들었다.
멕시코 칸쿤에서 이경해열사가 “WTO Farmers kill.!”이라 외치며 자결했고 홍콩에선 한국농민들이 뜨거운 투쟁을 벌였다. 전용철이 경찰에 맞아죽고 백남기가 공권력에 목숨을 버렸다. 그럼에도 요지부동 정부의 ‘농업죽이기’는 노골적으로 진행됐고 농촌은 쇠락의 길을 급속히 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변화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자본의 이윤를 위해 우리농민들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과 같다. 농사가 지속가능한 사회는 소통과 협동과 연대가 가능 해진다. 농업의 특성이 이윤이 될 수 없다. 이미 오래전 농업은 상품이 아니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상품이 되는 순간 농민은 사라지고 농촌은 파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서로가 돕고 나누는 가운데 평화(平和)가 만들어 진다는 사실. 그것이 평등한 사회의 튼튼한 밑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영국의 블랙시트나 미국의 트럼프 당선이 보여준 것은 무엇인가. 이는 분명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이 가져온 불평등의 극대화가 그런 모습으로 발현된 것이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무너졌다. 전경련이 해체되는 것은 이 땅에서 신자유주의가 해체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은 격차 없고 차별 없는 평등의 가치가 발현되는 세상일 것이다.
이는 농민들의 바라는 세상이기도 하다. 농사가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사는 무한경쟁이 필요치 않다. 협동과 연대로 농촌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위해 농촌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기본소득 등 사회부조를 통해 농민과 농촌이 붕괴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후계농민이 육성되고 귀농인들이 자리 잡도록 지원정책이 만들어 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농산물 가격지지정책이다. 농산물 가격이 생산비를 밑돌면 다른 정책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기초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정책은 그래서 필요하다.
헌법이 식량주권을 명시하고 사회적 합의로 식량주권선언이 가능해지려면 농사가 살아있어야 한다. 기득권과 자본의 방해책동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국민이 원하는 대로”를 강조해 말하는 정치인들을 촛불 시민들의 압박과 견인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
농사가 무너지면 지역이 무너지고 전체사회가 무너진다. 시민혁명의 완수는 식량주권 선언으로부터 시작하자. 식량주권 선언은 주권재민의 살아있는 다른 표현이다.
출처 [한도숙 칼럼] 백남기, 전용철, 이경해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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