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비망록에 나타난 ‘수상한 변호사들’
김 전 수석 비망록 속 청와대 지시 “법률단체를 활용하라”
[경향신문] 박은하·백철 기자 | 입력 : 2017.01.07 16:11:00
세월호 특별법과 유가족에 대한 여론은 청와대가 조성하고 관리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1,000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밝혀진 진상 내용 중 하나다.
경찰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 현장에 차 벽을 설치하고 시민들의 행진을 막았다. 공영방송 KBS는 세월호 소식을 축소 보도했다. 공공기관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도의상 쉽게 하지 못하는 일들은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봉사단, 서북청년단 재건위 등 극우단체가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자행했다.
청와대 여론 조작의 그물망은 이처럼 ‘힘 있는 공공기관’과 ‘책임 없는 민간단체’를 각각 유리한 방식으로 활용하도록 짜여 있다.
그런데 두 가지의 방식을 오가며 활동한 존재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진상규명이나 박근혜 정부의 실정 책임에도 쏙쏙 빠져나간다. ‘법률가’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보수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때로는 정치권이나 공직 예비후보자로, 때로는 변호인으로 편의적으로 활동한다. 양지에서 일하며 음지의 일들을 처리한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국민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법치주의에 도전하는 자사고 폐지 기도를 즉시 중단하라.” 2014년 9월 16일 (가칭) ‘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행변) 창립준비위원회’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비판하는 성명을 블로그를 통해 발표했다. 조 교육감의 자사고 인가 기준 강화 정책은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와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비판한 내용이었다.
행변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변호사들의 모임”이며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정의와 인권, 법치에 기반해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단체”라고 소개했다. 차기환, 이인철, 김기수, 성빈, 강래형 5명의 변호사가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성명을 발표한 다음 날인 9월 17일 0시 40분에 세월호 유가족 대리기사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행변은 이 사건의 대리기사 측 무료 변론을 맡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대리기사 사건의 본격적 수사는 9월 24일부터 시작됐다.
행변 대변인을 맡은 성빈 변호사는 2011년 민주화보상심의위 심사분과위원과 대한변협 범죄피해자 지원특위 위원을 맡았다. 2005년 창립한 보수성향 변호사 모임으로 ‘시민을 위한 변호사 모임’(시변) 소속으로도 활동했다.
2012년 ‘민보상법 개정 추진본부’의 토론회에 참석해 과거사 특별법에 의한 민주화 운동 보상기준이 부적절하다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민·형사 및 국가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지급하는 금전을 ‘보상’이 아니라 ‘배상’으로 표현한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서울 강남갑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후보로 공천되지는 않았다. 국정원 직원의 월급은 배우자에게도 공개 불가하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소송사건에서도 국정원 직원 측 대리인으로 활동했다. 여당·국정원과 모두 관계가 있다.
국정원과 연관된 인물은 또 있다. 강래형 변호사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 김 모 씨의 변호인이었다. 지적재산권 분쟁 전문가로 법무법인 ‘렉스와 랙스’ 등 3개 로펌이 합병해 탄생한 에이펙스를 거쳐 법무법인 웅빈에서 근무했으나 2017년 1월 1일부로 퇴사했다.
차기환 변호사는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의 공동위원장이다. KBS 이사장이 된 고영주 변호사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통진당 해산 역시 국정원의 수사가 발단이 됐다.
정부와 변호인으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 사회적 지위를 활용해 보수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현 국무총리)의 통진당 해산심판 제소를 지원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차기환 변호사는 세월호 여당 추천 특조위원을 거쳐 현재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자 국정농단의 핵심인물인 정호성 비서관의 변호인을 맡고 있다.
국정원 댓글조작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박근혜 정부의 시작과 끝에 행변 멤버들이 있었다. 이들이 모여서 지식인으로서 공론장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조희연 교육감 비판이고, 변호사로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세월호 대리기사 폭행사건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결성된 변호사 모임이라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행변의 결성은 청와대의 필요와 밀접한 것으로 보인다. 행변 결성 약 두 달 전인 2014년 7월 7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은 업무일지에 “보수 법률단체 활용 : 헌변(헌법을 위한 변호사 모임)과 시변 커넥션 확보토록”이라고 적었다.
바로 그날 헌변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낙마를 예로 들어 인사청문회 제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낸다. 공직자 개인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문 후보자는 6월 24일 낙마했다.
이 단체가 사회적 이슈에 성명을 낸 것은 2011년 11월 이후 4년 만이다. 여러모로 부자연스럽다. 8월 8일에는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수사·기소권을 맡기는 대신 상설특검제도를 활용하도록 한 세월호 특별법안에 대한 긍정적 논평을 한다. 김영한 비망록에도 특별법을 상설특검제도로 활용해야 한다는 언급이 수차례 등장한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당시 상설특검제도에서는 대통령이 여야 추천인 중에서 특검을 임명하게 돼 있다는 점에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주간경향>은 당시 보도 발표의 경위를 묻기 위해 헌변 관계자에게 지속해서 접촉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헌변의 성명은 대부분 법률적 이슈와 관계된 것들이었다.
‘덜 법리적’인 이슈에는 시변의 이헌 변호사가 등장했다. 2014년 8월 12일 이헌 시변 대표는 <데일리안>에 ‘극우 산케이 보도에 춤추는 국내 언론들의 행태’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8월 10일 김영한 비망록에는 <산케이신문>의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7시간 의혹 보도에 대한 언급이 담겼다. “자국민 관심 표명, 외교문제 X, 특정 기자의 범죄행위에 대한 대응(法), 언론 자유 이름으로 국가원수 모독은 용납할 수 없다.”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지국장의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어버이연합은 8월 내내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사무실에 위치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이헌 변호사는 ‘집회’와 ‘수사’ 사이 ‘공론’의 영역에서 정부를 지원한 셈이다. 이 변호사는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언론에서 여러 가지 원고 청탁을 받으면 작성한다. 그 외에 어떤 논의들을 (청와대에서) 했는지 저는 관심이 없다. <문화일보>나 <서울신문> 이런 데 정기적으로 글을 써 왔다”고 밝혔다.
세월호 대리기사 폭행사건이 발생한 그해 9월 17일부터 24일까지 이 사건은 비망록에 6회 연속 등장한다.
“김현 의원 폭행 건- 세월호 가족 선동 조종”(17일), “대리기사 폭행-경찰 고발”(18일), “대리기사 폭행사건-남부지검 고발-영장”(19일), “세월호 유가족 폭행-월요일 지휘-기만하게 일하도록→지휘권 확립토록”(21일).
‘지휘권’이 언급된 다음부터인 9월 19일 기록에는 행변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성명서-경찰은 대리기사를 폭행한 일부 세월호 유가족과 국회의원에 대한 수사를 공명정대하게 하라”(19일·22일), “행변, 폭행피해 대리기사 후원 모금”(24일). 행변의 행적과 일치하는 궤적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에서 김현 전 더불어민주당(민주통합당) 의원은 원래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다. 함께 술을 마셨던 유가족들과 대리기사 간 벌어진 폭행사건의 목격자 자격으로 9월 19일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23일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경찰은 대리기사를 두 번 소환해 두 번째 진술에서 김현 전 의원이 대리기사에게 “명함 뺏어”라고 고함 지르며 폭행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조사에서 대리기사는 이 진술을 하지 않았다.
단순 폭행사건이 아니라 국회의원 지위를 이용해 폭행한 것으로 된 김 전 의원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으로 민주당의 세월호 특별법 추진위 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유가족과 당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이었다. 경찰 조직을 감시하는 것이 안행위의 역할이다.
24일 자유청년연합의 고발로 김 전 의원에 대해 수사가 시작됐다. 김 의원은 1·2심 모두 폭행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현 전 의원은 김영한 비망록이 공개된 이후인 지난해 12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고발했다.
김 전 의원 측 변호사인 민변 소속 이광철 변호사는 고발장에서 “이 사건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다는 이유로 유가족들에 의하여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을 부풀려 과장, 확대하여 여론전의 소재로 삼았다”며 “객관·공정하여야 할 검찰사무(검찰청법 제4조 제2항)를 악용하여 수사 및 기소를 관철시킨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밝혔다.
헌변과 시변이 있는데 굳이 왜 행변이라는 새로운 단체가 필요했을까. 행변은 대리기사의 변론뿐 아니라 전국적 모금운동도 벌여 5,000만 원을 모았다고 언론에 밝혔다.
성빈 변호사는 2014년 11월 1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건 초기 유족들과 김현 의원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자 대리기사가 가해자로 몰리는 듯한 모습이 안타까워 변론을 맡게 됐다”며 “세월호 유족들의 편에 서는 것만으로 특권을 쥐고 있다고 여기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렸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보수성향 변호사 단체는 있었지만, 정부가 주시하는 사건의 법률대리인을 맡으면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야 할 시민사회에서 할 법할 ‘모금운동’을 동시에 한 것은 이례적이다. 헌변과 시변이 하지 않은 일이다.
청와대는 민변의 대응조직을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한 비망록에는 ‘민변’에 대한 언급도 수차례 등장한다.
민변은 다양하게 활동했지만, 특히 2013년 국정원의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밝혀냈다. 세월호 특별법에도 적극 결합하고 있었다. 헌변은 2014년 4년 만에 논평을 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활동 자체가 침체한 상태였다.
이헌 변호사는 “현 정부에서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곤 했다. 못 하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변호사지만 보수성향을 드러내는 칼럼과 논평으로 주로 활동했다.
시변은 이명박 정권 시절 두드러지게 활동했다. MBC 광우병 보도 관련 PD수첩 수사나 용산참사 공권력 집행을 옹호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등 사건 자체에 변호인으로 깊이 관련된 행변과는 차이가 있었다.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2014년 정부는 위기에 몰려 있었다.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이 안긴 타격이 컸다.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강제로 찍어내 검찰 내에서도 불만이 많았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윤회 문건 보도로 대통령의 사생활에도 큰 흠집이 났다. 군 승진경쟁의 핵심인 기무사 인사 파동도 정권의 불안한 상태를 방증한다”고 전했다.
세월호 특별법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태도도 이 같은 불안함의 연장 선상일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추측했다.
행변의 활동은 오래 지속하지 않았다. 2015년 차기환·김기수 변호사는 ‘자유와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별도로 나갔다. 공교롭게도 대리기사 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변호인들만 따로 나갔다. 강래형 변호사는 대리기사 폭행사건으로 김 전 의원이 기소된 이후 행변 활동은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간경향>은 차기환 변호사를 비롯한 행변 측 변호사에게 전원 연락을 시도해봤으나 확답을 받을 수 없었다. 행변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삭제되고 블로그는 취재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1월 5일 내용이 지워졌다.
변호사 개개인들은 행변의 활동이 침체한 이후에도 공직으로서 현 정부와 연관을 맺었다. 차기환 변호사는 여당 추천 몫 세월호 특조위원이 됐다. 이헌 변호사는 부위원장이 됐다.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이 일었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해 특조위가 조사를 시도할 경우와 특조위 조사기간, 예산문제 등에 대응하라”며 이른바 여당 추천위원들에게 지시하는 해수부 작성 문건이 2015년 11월 공개되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당 추천위원들을 조사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제동의 돌격대로 끝까지 활용한 셈이다. ‘논평’이라는 외부적 형식이 아니라 조사기관 내에 들어가 정부 지침을 따르는 역할이 ‘법률전문가’의 자격으로 주어질 수 있었다.
민변의 한 관계자는 “변호사는 정치인 예비군으로 적합한 직업이다. 기업이나 정부 수임 사건을 맡아 특히 보수정당에 줄을 대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의당 국정조사단장인 김종대 의원은 “현행법에서는 로비가 금지돼 있지만, 법률가에게 법률컨설팅을 받는 방식으로 로비가 이뤄진다. ‘방산비리’에서 자주 발견되는 패턴”이라며 “정치적 사건에서는 법률적으로 책임에서 빠져나갈 방법이나 역공할 방법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변호사들의 역할도 면밀히 파헤쳐야 게이트의 실태를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2014년 하반기 정부는 세월호 관련 정규군이 아니라 게릴라가 필요한 구조였고, 행변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은 탄핵국면에서 치밀한 법률대응이 필요한 시기로 친정부적 변호사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김영한 비망록에 나타난 ‘수상한 변호사들’
김 전 수석 비망록 속 청와대 지시 “법률단체를 활용하라”
[경향신문] 박은하·백철 기자 | 입력 : 2017.01.07 16:11:00
▲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경향신문 자료사진
세월호 특별법과 유가족에 대한 여론은 청와대가 조성하고 관리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1,000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밝혀진 진상 내용 중 하나다.
경찰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 현장에 차 벽을 설치하고 시민들의 행진을 막았다. 공영방송 KBS는 세월호 소식을 축소 보도했다. 공공기관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도의상 쉽게 하지 못하는 일들은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봉사단, 서북청년단 재건위 등 극우단체가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자행했다.
청와대 여론 조작의 그물망은 이처럼 ‘힘 있는 공공기관’과 ‘책임 없는 민간단체’를 각각 유리한 방식으로 활용하도록 짜여 있다.
그런데 두 가지의 방식을 오가며 활동한 존재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진상규명이나 박근혜 정부의 실정 책임에도 쏙쏙 빠져나간다. ‘법률가’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보수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때로는 정치권이나 공직 예비후보자로, 때로는 변호인으로 편의적으로 활동한다. 양지에서 일하며 음지의 일들을 처리한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국민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법치주의에 도전하는 자사고 폐지 기도를 즉시 중단하라.” 2014년 9월 16일 (가칭) ‘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행변) 창립준비위원회’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비판하는 성명을 블로그를 통해 발표했다. 조 교육감의 자사고 인가 기준 강화 정책은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와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비판한 내용이었다.
행변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변호사들의 모임”이며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정의와 인권, 법치에 기반해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단체”라고 소개했다. 차기환, 이인철, 김기수, 성빈, 강래형 5명의 변호사가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성명을 발표한 다음 날인 9월 17일 0시 40분에 세월호 유가족 대리기사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행변은 이 사건의 대리기사 측 무료 변론을 맡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대리기사 사건의 본격적 수사는 9월 24일부터 시작됐다.
행변 대변인을 맡은 성빈 변호사는 2011년 민주화보상심의위 심사분과위원과 대한변협 범죄피해자 지원특위 위원을 맡았다. 2005년 창립한 보수성향 변호사 모임으로 ‘시민을 위한 변호사 모임’(시변) 소속으로도 활동했다.
2012년 ‘민보상법 개정 추진본부’의 토론회에 참석해 과거사 특별법에 의한 민주화 운동 보상기준이 부적절하다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민·형사 및 국가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지급하는 금전을 ‘보상’이 아니라 ‘배상’으로 표현한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서울 강남갑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후보로 공천되지는 않았다. 국정원 직원의 월급은 배우자에게도 공개 불가하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소송사건에서도 국정원 직원 측 대리인으로 활동했다. 여당·국정원과 모두 관계가 있다.
정치적 목적 변호사 모임 의혹
국정원과 연관된 인물은 또 있다. 강래형 변호사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 김 모 씨의 변호인이었다. 지적재산권 분쟁 전문가로 법무법인 ‘렉스와 랙스’ 등 3개 로펌이 합병해 탄생한 에이펙스를 거쳐 법무법인 웅빈에서 근무했으나 2017년 1월 1일부로 퇴사했다.
차기환 변호사는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의 공동위원장이다. KBS 이사장이 된 고영주 변호사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통진당 해산 역시 국정원의 수사가 발단이 됐다.
정부와 변호인으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 사회적 지위를 활용해 보수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현 국무총리)의 통진당 해산심판 제소를 지원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차기환 변호사는 세월호 여당 추천 특조위원을 거쳐 현재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자 국정농단의 핵심인물인 정호성 비서관의 변호인을 맡고 있다.
국정원 댓글조작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박근혜 정부의 시작과 끝에 행변 멤버들이 있었다. 이들이 모여서 지식인으로서 공론장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조희연 교육감 비판이고, 변호사로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세월호 대리기사 폭행사건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결성된 변호사 모임이라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행변의 결성은 청와대의 필요와 밀접한 것으로 보인다. 행변 결성 약 두 달 전인 2014년 7월 7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은 업무일지에 “보수 법률단체 활용 : 헌변(헌법을 위한 변호사 모임)과 시변 커넥션 확보토록”이라고 적었다.
바로 그날 헌변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낙마를 예로 들어 인사청문회 제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낸다. 공직자 개인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문 후보자는 6월 24일 낙마했다.
이 단체가 사회적 이슈에 성명을 낸 것은 2011년 11월 이후 4년 만이다. 여러모로 부자연스럽다. 8월 8일에는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수사·기소권을 맡기는 대신 상설특검제도를 활용하도록 한 세월호 특별법안에 대한 긍정적 논평을 한다. 김영한 비망록에도 특별법을 상설특검제도로 활용해야 한다는 언급이 수차례 등장한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당시 상설특검제도에서는 대통령이 여야 추천인 중에서 특검을 임명하게 돼 있다는 점에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주간경향>은 당시 보도 발표의 경위를 묻기 위해 헌변 관계자에게 지속해서 접촉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헌변의 성명은 대부분 법률적 이슈와 관계된 것들이었다.
‘덜 법리적’인 이슈에는 시변의 이헌 변호사가 등장했다. 2014년 8월 12일 이헌 시변 대표는 <데일리안>에 ‘극우 산케이 보도에 춤추는 국내 언론들의 행태’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8월 10일 김영한 비망록에는 <산케이신문>의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7시간 의혹 보도에 대한 언급이 담겼다. “자국민 관심 표명, 외교문제 X, 특정 기자의 범죄행위에 대한 대응(法), 언론 자유 이름으로 국가원수 모독은 용납할 수 없다.”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지국장의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어버이연합은 8월 내내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사무실에 위치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이헌 변호사는 ‘집회’와 ‘수사’ 사이 ‘공론’의 영역에서 정부를 지원한 셈이다. 이 변호사는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언론에서 여러 가지 원고 청탁을 받으면 작성한다. 그 외에 어떤 논의들을 (청와대에서) 했는지 저는 관심이 없다. <문화일보>나 <서울신문> 이런 데 정기적으로 글을 써 왔다”고 밝혔다.
세월호 대리기사 폭행사건이 발생한 그해 9월 17일부터 24일까지 이 사건은 비망록에 6회 연속 등장한다.
“김현 의원 폭행 건- 세월호 가족 선동 조종”(17일), “대리기사 폭행-경찰 고발”(18일), “대리기사 폭행사건-남부지검 고발-영장”(19일), “세월호 유가족 폭행-월요일 지휘-기만하게 일하도록→지휘권 확립토록”(21일).
‘지휘권’이 언급된 다음부터인 9월 19일 기록에는 행변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성명서-경찰은 대리기사를 폭행한 일부 세월호 유가족과 국회의원에 대한 수사를 공명정대하게 하라”(19일·22일), “행변, 폭행피해 대리기사 후원 모금”(24일). 행변의 행적과 일치하는 궤적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에서 김현 전 더불어민주당(민주통합당) 의원은 원래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다. 함께 술을 마셨던 유가족들과 대리기사 간 벌어진 폭행사건의 목격자 자격으로 9월 19일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23일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경찰은 대리기사를 두 번 소환해 두 번째 진술에서 김현 전 의원이 대리기사에게 “명함 뺏어”라고 고함 지르며 폭행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조사에서 대리기사는 이 진술을 하지 않았다.
단순 폭행사건이 아니라 국회의원 지위를 이용해 폭행한 것으로 된 김 전 의원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으로 민주당의 세월호 특별법 추진위 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유가족과 당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이었다. 경찰 조직을 감시하는 것이 안행위의 역할이다.
24일 자유청년연합의 고발로 김 전 의원에 대해 수사가 시작됐다. 김 의원은 1·2심 모두 폭행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현 전 의원은 김영한 비망록이 공개된 이후인 지난해 12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고발했다.
김 전 의원 측 변호사인 민변 소속 이광철 변호사는 고발장에서 “이 사건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다는 이유로 유가족들에 의하여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을 부풀려 과장, 확대하여 여론전의 소재로 삼았다”며 “객관·공정하여야 할 검찰사무(검찰청법 제4조 제2항)를 악용하여 수사 및 기소를 관철시킨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밝혔다.
헌변과 시변이 있는데 굳이 왜 행변이라는 새로운 단체가 필요했을까. 행변은 대리기사의 변론뿐 아니라 전국적 모금운동도 벌여 5,000만 원을 모았다고 언론에 밝혔다.
성빈 변호사는 2014년 11월 1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건 초기 유족들과 김현 의원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자 대리기사가 가해자로 몰리는 듯한 모습이 안타까워 변론을 맡게 됐다”며 “세월호 유족들의 편에 서는 것만으로 특권을 쥐고 있다고 여기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렸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보수성향 변호사 단체는 있었지만, 정부가 주시하는 사건의 법률대리인을 맡으면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야 할 시민사회에서 할 법할 ‘모금운동’을 동시에 한 것은 이례적이다. 헌변과 시변이 하지 않은 일이다.
청와대 민변에 대응 조직 필요했나
▲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경향신문 자료사진
청와대는 민변의 대응조직을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한 비망록에는 ‘민변’에 대한 언급도 수차례 등장한다.
민변은 다양하게 활동했지만, 특히 2013년 국정원의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밝혀냈다. 세월호 특별법에도 적극 결합하고 있었다. 헌변은 2014년 4년 만에 논평을 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활동 자체가 침체한 상태였다.
이헌 변호사는 “현 정부에서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곤 했다. 못 하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변호사지만 보수성향을 드러내는 칼럼과 논평으로 주로 활동했다.
시변은 이명박 정권 시절 두드러지게 활동했다. MBC 광우병 보도 관련 PD수첩 수사나 용산참사 공권력 집행을 옹호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등 사건 자체에 변호인으로 깊이 관련된 행변과는 차이가 있었다.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2014년 정부는 위기에 몰려 있었다.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이 안긴 타격이 컸다.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강제로 찍어내 검찰 내에서도 불만이 많았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윤회 문건 보도로 대통령의 사생활에도 큰 흠집이 났다. 군 승진경쟁의 핵심인 기무사 인사 파동도 정권의 불안한 상태를 방증한다”고 전했다.
세월호 특별법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태도도 이 같은 불안함의 연장 선상일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추측했다.
행변의 활동은 오래 지속하지 않았다. 2015년 차기환·김기수 변호사는 ‘자유와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별도로 나갔다. 공교롭게도 대리기사 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변호인들만 따로 나갔다. 강래형 변호사는 대리기사 폭행사건으로 김 전 의원이 기소된 이후 행변 활동은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간경향>은 차기환 변호사를 비롯한 행변 측 변호사에게 전원 연락을 시도해봤으나 확답을 받을 수 없었다. 행변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삭제되고 블로그는 취재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1월 5일 내용이 지워졌다.
변호사 개개인들은 행변의 활동이 침체한 이후에도 공직으로서 현 정부와 연관을 맺었다. 차기환 변호사는 여당 추천 몫 세월호 특조위원이 됐다. 이헌 변호사는 부위원장이 됐다.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이 일었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해 특조위가 조사를 시도할 경우와 특조위 조사기간, 예산문제 등에 대응하라”며 이른바 여당 추천위원들에게 지시하는 해수부 작성 문건이 2015년 11월 공개되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당 추천위원들을 조사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제동의 돌격대로 끝까지 활용한 셈이다. ‘논평’이라는 외부적 형식이 아니라 조사기관 내에 들어가 정부 지침을 따르는 역할이 ‘법률전문가’의 자격으로 주어질 수 있었다.
민변의 한 관계자는 “변호사는 정치인 예비군으로 적합한 직업이다. 기업이나 정부 수임 사건을 맡아 특히 보수정당에 줄을 대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의당 국정조사단장인 김종대 의원은 “현행법에서는 로비가 금지돼 있지만, 법률가에게 법률컨설팅을 받는 방식으로 로비가 이뤄진다. ‘방산비리’에서 자주 발견되는 패턴”이라며 “정치적 사건에서는 법률적으로 책임에서 빠져나갈 방법이나 역공할 방법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변호사들의 역할도 면밀히 파헤쳐야 게이트의 실태를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2014년 하반기 정부는 세월호 관련 정규군이 아니라 게릴라가 필요한 구조였고, 행변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은 탄핵국면에서 치밀한 법률대응이 필요한 시기로 친정부적 변호사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김영한 비망록에 나타난 ‘수상한 변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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