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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박근혜 정권이 은폐하려던 죽음, 500일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은폐하려던 죽음, 500일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500일 연속기고 ①] 아직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최석환 | 17.03.27 05:08 | 최종 업데이트 : 17.03.27 05:08


3월 27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살인 물대포에 무참히 쓰러졌던 2015년 11월 14일로부터 꼭 500일째다.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렸던 그 날부터 317일 동안 백남기 농민은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죽음과 싸움을 벌여야 했고 결국 2016년 9월 25일, 단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슬퍼할 겨를도 없이 검찰과 경찰은 강제부검을 시도하였고 40여 일간이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또다시 불의한 권력과 싸워야 했다.

백남기 농민을 지키기 위해 수천 명의 시민이 장례식장에 모여들었다. 눈코 뜰 새 없는 추수철에 농사일을 마치고, 흙 묻은 작업복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밤늦게 올라와 안치실 앞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던 농민들. 퇴근 후 장례식장으로 달려와 밤을 지새우고 이른 아침 출근길에 나서던 노동자들. 자신들의 장사를 뒤로하고 시민들의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챙겨오던 노점상들. 시신 안치실로 내려가는 경사로를 지키며 시험공부를 하던 대학생들.

경찰과의 대치선에 가장 앞장서 있던 신부님 수녀님들, 그렇게 매일같이 어디선가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잠잘 곳도 먹을 것도 마땅치 않던 장례식장에 시민들이 산더미같이 보내준 후원 물품들 중에서도 컵라면은 아직도 단체 사무실들의 간식거리로 남아있다. 그렇게 불평 하나 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백남기 농민을 지켰다. (그 구름 같던 시민들은 또다시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을 함께 보냈다)

2016년 10월 25일. 부검 영장 만료를 앞두고 집행을 위해 몰려든 경찰과의 대치 끝에 시민들의 힘으로 영장 집행을 저지시켰고 바로 그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며 서울대병원의 촛불은 곧바로 퇴진 촛불로 옮겨붙었다. 그렇게 수십만 수백만으로 타오른 촛불의 힘으로 퇴진 촛불의 한복판에서 백남기 농민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 故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 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지난해 9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백남기대책위와 시민들이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영결식장 입구와 연결 통로 위에서 노숙하고 있다. ⓒ 이희훈



500일 동안 달라진 게 없다

퇴진 촛불이 타오르며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은폐하려고 했던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모습들이 드러났다. 서울대병원의 백선하 과장이 총대를 메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논란'을 만들고, 비선 의료의 핵심인 서창석 원장은 수시로 청와대에 상황보고를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317일간 단 한 번도 의식을 되찾기는커녕 조금도 회복되지 못했지만, 가족의 의사에 반하는 연명 치료를 강요하고, 숨을 거둔 이후에도 사인논란으로 부검 영장 발부의 빌미를 제공한 것 모두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가리기 위해 '정치 의사'들이 저지른 일들이었다.

거기다 청와대 행정관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 등과 관련한 '가짜여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시로 친박 단체들과 통화를 하며 '관제데모'를 조직했다는 의혹도 드러났다. 결국, 그들이 숨기려 한 진실은 가려지지 않았고 겨우내 이어진 촛불의 힘으로 결국 그 나쁜 박근혜는 파면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은 형사 고발된 경찰 진압책임자 7명 중 누구 하나 기소하지 않았다. 아니 수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국가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정부 측은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하며 재판 진행을 지연시키고 있다. 검찰의 직무유기에 특검도입을 추진했지만, 특검법안은 국회에서 6개월째 잠들어 있다. 지난 500일 동안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책임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2005년 두 농민이 시위진압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공권력에 대한 의미 있는 언급을 하였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매우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책임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뤄야 하는 것입니다." - 2005년 12월 27일 대국민사과문 중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후에도 공권력 집행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물었던 경우가 거의 없었다. 책임을 묻기는커녕 철거민과 경찰특공대가 희생되었던 용산참사의 진압책임자였던 김석기가 지난 총선에 출마해 당당히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도 했다.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살인'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고발 당시에는 살인미수) 진압책임자였던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아무 일 없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고 경찰기동대 현장지휘관을 비롯해 살수차를 운용했던 경찰관들도 영전, 승진하여 아무런 문제 없이 경찰관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통제되고 무거운 책임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공권력이 법적 근거나 제대로 된 기준 없이, 견제장치도 없이, 잘못에 대한 처벌도 없이 남용된 결과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다. 다시는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공권력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고 응당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찰의 날 기념식장앞 "살인경찰 규탄" 회견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故 백남기 농민 유가족과 백남기투쟁본부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21일 오전 ‘제7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대통령 사죄, 경찰청장 사퇴, 살인 경찰의 날 기자회견’을 개최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인근 광화문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500일이 되도록 '죽은' 사람만 있고 '죽인' 사람은 없다. '죽인' 사람을 처벌하라는 요구에도 답이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는 죽지 않기 위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대안을 만들려고 한다. 정권과 경찰 공권력 남용의 근거가 되어버린 현행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 입법청원 운동이 그것이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박근혜 정권은 항의의 대상인 청와대에 접근하지도, 소리치지도 못하도록 철저하게 '차 벽'과 '물대포'로 13만 명의 외침을 짓밟았다. 그 결과로 백남기 농민이 목숨을 잃었고 노동자 한상균 위원장이 1년 넘도록 감옥에 갇혀있다. 1년이 지난 후 2016년 겨울의 광화문은 어떠했는가? 차 벽과 물대포가 사라진 광장에는 평화롭지만 완강한 시민들의 외침으로 가득 찼다.

모든 국민에게는 모이고 말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 너와 내가 광장에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하는 기쁨은 인간다움을 구현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경찰은 그동안 서울 시내 교통소통을 이유로 혹은 국가 주요시설인 청와대 앞이라며 집회를 금지했다.

경찰이 집회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금지하고 불법으로 만들 수 있는 근거는 현행 집시법으로부터 나온다. 현행 집시법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고, 국민이 이 권리를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고 진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권력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며 살인 무기와 다를 바 없는 물대포를 또다시 시민을 향해 사용하도록 둘 수는 없다. 항의의 대상에게 다가가지 못 하게 하고 보이고 들릴 수 없도록 가두는 차 벽을 그대로 둘 수 없다. 그래서 시민들이 항의의 대상을 향해 평화롭게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자유를 제한하는 현행 집시법, 경찰 마음대로 준무기에 해당하는 위해성 장비를 아무런 통제 없이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있는 현행 경직법을 바꾸기 위한 입법청원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500일이 되었다

호소문 발표하는 백도라지씨 故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가 지난해 10월 22일 오후 고인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종로구청앞 사거리와 인접한 서울 청계천 광통교 부근에서 열린 '살인정권 규탄! 故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에서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경찰의 강제부검 시도를 규탄하며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행진을 벌였다. ⓒ 권우성


남편을, 아버지를 황망히 떠나보내고 그 누구보다 박근혜를 퇴진시키는 순간을 위해 싸워 왔던 가족들은 지난 500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지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백남기 농민의 큰딸 백도라지는 이 말을 꼭 전해 달라 당부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아버지 좋은 곳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이제 남은 저의 할 일은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도록 끊임없이 정부에게 요구하는 일이겠지요.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강신명 감옥 보내겠다는 다짐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몇 년이 걸리든 해내려고 합니다. 잊지 마시고 연대 부탁드리겠습니다."

박근혜가 파면되자마자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온갖 핑계를 대며 인양하기를 주저하던 자들이 3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세월호를 끌어올렸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잊지 않고, 끊임없이 진실을 인양하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밝혀질 것이다. 이 사회의 정의는 그렇게 하나씩 바로잡혀 갈 것이다.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자.


출처  박근혜 정권이 은폐하려던 죽음, 500일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