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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미군이 숨긴 오염물질 검출 위치는

미군이 숨긴 오염물질 검출 위치는
용산 미군기지 오염원은 주유소·동물병원 주변
한·미 3차례 합동조사…대법 압박에 위치 뺀 1차 결과 공개
경향신문 확인 결과, ‘벤젠 기준치 162배’ 관정도 주유소 옆
미군 책임 확실한데도 모호한 KISE 기준 탓 늘 빠져나가

[경향신문] 허진무 기자 | 입력 : 2017.10.03 10:00:00 | 수정 : 2017.10.03 10:01:01


▲ 그래픽 : 엄희삼 기자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을 앞두고 있지만 기지 내부의 오염 상태는 여전히 철저한 비밀에 부쳐져 있다. 2013년 6월 열린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에서 한·미 양국은 용산 미군기지 내부에 대해 3차례 합동 환경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 3차례 시행한 조사 결과는 아직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미군의 반대를 이유로 한국 정부도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SOFA 합동위원회 각서에는 한·미 양측이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자료를 공개할 수 없게 돼 있다.

조사 결과를 봉한 정부는 환경·시민단체가 제기한 법정 소송에 휩싸였다. 지난 4월 대법원이 1차 조사 결과를 공개하라고 판결하자 환경부는 1장짜리 자료를 내놓았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쪽 용산 미군기지 내부 주유소의 반경 200m 안쪽 관정 14곳만 대상으로 한 소규모 조사 결과였다. 지하수·토양 조사를 위해 뚫은 관정 14곳 중 7곳에서 벤젠·톨루엔·에틸벤젠·크실렌이 검출됐다. 모두 발암·유해 물질들이다. 정부가 내놓은 자료엔 해당 관정들의 연번이 공개됐지만,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 2001년 7월 발생한 녹사평역 기름 유출 사고의 휘발유 오염원으로 지목된 용산 미군기지 내 주유소(AAFES). 김기범 기자

환경부 관계자는 “관정 위치도 기지 내부 정보이기 때문에 미군이 동의하지 않으면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이 2·3차 조사 결과도 공개하라는 1심 판결을 내놨지만, 환경부는 미군 반대에 부딪혀 다시 항소한 상태다.

경향신문은 추가 취재를 통해 환경부가 공개 안 한 관정 14곳 중 12곳의 위치와 기준치 이상 오염물질이 검출된 관정 7곳 중 6곳의 위치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미군 측 자료 ‘녹사평역 오염 프로젝트: 유출 관련 관정과 배수조에서 지하수와 생성물의 샘플링 및 레벨 측정 결과Ⅰ’을 보면, 미군 자체조사에서 기준치 이상 오염된 관정 7곳 중 6곳(B01-868·869·870·873, RW-101·102)은 휘발유가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된 주유소(AAFES)와 동물병원(NVC) 주변에 모여 있다. 나머지 1곳(B09-256)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미 육군 공병대가 삼성물산에 용역 조사를 맡겨 2002년 11월부터 2003년 2월까지 주유소와 동물병원 주변 반경 500m의 지하수·토양을 채취·분석해 2003년 7월 제출한 것이다.

환경부가 공개한 1차 조사 결과 자료를 참고하면, 주유소 옆 ‘B01-873’은 가장 심각한 오염이 발견된 관정이다. 1급 발암물질 벤젠이 기준치의 162배나 검출됐다. 동물병원 뒤편의 4개 관정에서도 기준치의 최대 96배에 달하는 벤젠과 2배 안팎의 톨루엔·에틸벤젠·크실렌이 검출됐다. 군견 훈련장 쪽 언덕의 1개 관정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하는 벤젠이 나왔다.

▲ 지난 8월 9일 용산 미군기지 메인포스트 담장 밖에서 토양오염조사 전문가들이 토양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서울시는 10여 년간 약 70억 원의 비용을 들여 기지 주변 정화작업을 해왔지만, 여전히 기준치의 최대 수백 배에 달하는 독성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연합뉴스

녹사평역은 2001년 7월 지하 터널에서 유류 오염이 발견된 곳이다. 2002년 미군은 유출된 기름의 일부인 휘발유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했지만, 대부분을 차지한 등유는 인정하지 않았다. 녹색연합 등은 녹사평역에서 발견된 등유 ‘JP-8’이 미군이 사용하는 유종이라는 근거를 들며 추궁했다.

당시 서울시는 농업기반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에 2001년 1차 조사, 2002년 2차 조사를 맡겨 휘발유·등유의 오염원이 모두 미군기지라는 결론을 냈다. 비슷한 시기 미군은 삼성물산에 조사를 맡겨 2002년 2월 결과 보고서를 받았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녹사평역 오염 지하수에 대한 조사 보고서’는 기지 밖 오염 지역 동쪽·북쪽의 난방유 탱크와 대성주유소 등을 오염원 후보로 지목하면서 기지 내부 군견훈련장 옆 주거단지는 오염원 후보에서 제외했다.

이 주거단지에 있던 지하 유류탱크 2기는 2001년 2월 누유 점검을 통과하지 못해 지상 탱크로 교체된 것들이었다. 그해 8월 추가 검사에서는 군견 훈련장 인근 탱크 1기가 더 교체됐다. 이 탱크들엔 1999년 이후 등유 ‘JP-8’이 저장돼 있었지만 보고서는 지하수·토양 조사 결과 등유 유출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서울시는 녹사평역은 2001년부터, 캠프 킴은 2006년부터 약 70억 원의 비용을 들여 주변 정화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시료 채취를 시작한 2004년 녹사평역 주변 관정에서는 기준치의 최대 1,957배에 달하는 벤젠이 검출됐다. 10여 년 동안 정화를 계속하고 있지만, 벤젠·톨루엔·에틸벤젠·크실렌·석유계총탄화수소(TPH) 모두 기준치의 수배~수백 배가 남아 있다.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는 1966년 한·미가 체결한 SOFA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OFA에는 환경오염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2000년 미군이 한강에 맹독성 물질 포르말린을 무단 방류한 사실이 알려진 뒤인 2001년에야 한·미가 합의한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에 “인간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해(KISE)”라는 모호한 기준이 담겼다. 미군은 KISE에 해당하는 오염만 정화하겠다고 시간을 끌다 2007년 정화작업 없이 23개 기지를 반환했다. 이 중 22곳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TPH가 검출됐다. 정부는 땅을 다시 매각할 17개 기지 정화비용으로 1865억5000만 원을 지출해야만 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미국과 공동환경평가절차서(JEAP)에 합의했다. 이후 반환 미군기지 오염 조사 방식은 국내법에 의한 ‘토양 정밀조사’에서 ‘위해성 평가’로 바뀌었다. 위해성 평가는 오염이 인체에 미치는 위험을 산출한 뒤 KISE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반환된 부산 하야리아 기지는 전체 면적의 0.26%만 위해성이 인정돼 정화비용 3억 원이 책정됐지만, 정밀조사에선 17.96%가 오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화비용은 146억 원으로 불어났다.

기지 안쪽에서 기름이 흘러 퍼지고 스며들어도 한국 정부에선 알 길이 없다. 지난 4월 녹색연합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미국정보자유법(FOIA)에 따른 절차를 거쳐 ‘용산 미군기지 내부 유류 유출 사고 기록(1990~2015)’을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16년 동안 용산기지 곳곳에서 일어난 유류 유출 사고는 84건에 달했다. 3.7t 이상 유류가 유출된 사고는 7건, 400ℓ 이상 유출된 사고는 31건이다.

<취재 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출처  [단독] 미군이 숨긴 오염물질 검출 위치, 주유소·동물병원 주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