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문건 작성에 군 사조직 관여했나
곳곳에서 보이는 알자회 흔적들
[오마이뉴스] 글: 김도균, 편집: 박혜경 | 18.08.09 14:22 | 최종 업데이트 18.08.09 16:51
지난 1992년 2월 1일, 당시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은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 및 참모들에게 보낸 '참모총장 지휘서신(제1호)'을 통해 군내부의 사조직을 단시일 내에 완전히 해체하라고 지시했다. 지휘서신에서 김 총장은 "군은 더 이상 정치 등 군 외부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군 내부에 눈을 돌려 안보 전문 집단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단시일 내에 군 내부 종적 사조직을 해체토록 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여론은 군 내 사조직 해체가 군의 정치적 중립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김 총장의 지시를 환영했다. 하지만 김 총장 자신이 군 내 최대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의 핵심멤버 중 한 명으로 12.12 군사반란에 적극 가담했다는 점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채 1년도 못 가 김 총장의 지휘서신을 무색케 하는 '알자회' 사건이 터졌다. 1992년 10월 11일 임관 10주년을 맞아 전·후방에서 소령으로 근무하고 있던 육사 38기생 150여 명이 육사에 모여 진급 및 보직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고 판단되는 알자회 가입 동기생 12명을 동기회에서 제명할 것을 결의하고, 조직의 해체 및 관련자 징계를 상부에 건의했다. 이 같은 사실은 같은 해 11월 13일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동기회에서 제명된 38기생 중 한 명이 바로 계엄령 문건 작성에 관여한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이다.
군 수사기관의 조사결과 알자회는 1976년 육사 34기생들이 중심이 돼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서로 알고나 지내자"는 의미에서 '알자회'란 이름으로 출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8기·39기 등 특정기수는 회원 전원이 특정지역 출신으로 구성된데다, 선호하는 보직을 차지하는 등 특혜를 누려온 것으로 알려져 '알짜 보직을 주고 받는다'는 의미에서 '알짜회'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육군 지휘부는 육사 34~43기 알자회 가입 장교 120명 중 육본 인사운영감실, 청와대 경호실, 수방사, 육사 훈육관, 육군대학 교관 등 이른바 '재경(在京) 노른자 보직'에 근무하고 있는 20명의 보직을 변경키로 결정했다. 또 이듬해 육군은 사상 처음으로 진급심사과정을 공개하고, 당시 1차로 소령심사 대상이 된 육사 41기 중 알자회 가담자 11명은 아예 진급심사 대상에서 제외시키기도 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시를 받아 공무원·민간인을 불법 사찰해 보고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도 41기 알자회원이다. 알자회 동기생들이 소령 1차 진급에서 배제되었을 때, 그는 이미 예편해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에 입부한 상태였다. 일반대학 81학번에 해당하는 육사 41기는 1985년에 임관했는데, 추 전 국장은 이미 1988년부터 안기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관학교 출신 장교의 의무복무 기간이 10년(5년차 전역기회 부여)임을 감안하면 추 전 국장의 경우는 이례적인 사례임은 분명하다.
추 전 국장은 알자회 선배인 조현천 기무사령관을 청와대에 천거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군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국정원의 실력자였던 추 전 국장이 장성 진급 검증 과정에 관여하면서 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알자회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17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고 누락 논란 때도 알자회가 그 배후로 거론되기도 했다.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관련 문건 의혹을 수사 중인 군·검 합동수사단도 이런 이유 때문에 군 내 사조직이 친위 쿠데타를 상정한 문건 작성 과정에 관여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계엄령 문건이 만들어진 지난 2017년 3월 당시 현역으로 남아있던 알자회 출신이 5명에 불과했다는 점, 특히 실제 진압작전을 실행할 부대의 지휘관들 중 알자회 출신은 조종설 육군 특수전사령관 한 명 뿐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알자회가 친위쿠데타를 도모할 정도의 중심세력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하나회 출신 선·후배 지휘관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성공시켰던 12.12 쿠데타와는 달리, (이번에는) 군 내 사조직이 중심이 되어 무엇을 도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에 코드를 맞춘 군 내 '이너서클'이 존재했고, 이들이 문건 작성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관련 문건에서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이 맡도록 한 것은, 육사 출신을 중심으로 계엄사령부를 편성하기 위해 비육사(3사) 출신인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을 의도적으로 배체하기 위한 것이란 '합리적 의심'의 연장선상이다.
실제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육사 출신 유력자들이 국방부와 청와대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군 인사에 개입함에 따라 일선 장교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던 적이 있었다. 2013년 8월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던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은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군 인사를 관리하는 5개의 머리가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장 사령관이 지목한 5개의 머리는 김장수 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남재준 국정원장, 김관진 국방장관,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으로 이들은 모두 육사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25일 장경욱 기무사령관은 취임 반년 만에 전격 경질되고 말았다. 사령관뿐만 아니라 기무사 참모장, 100기무부대장 등 기무사 서열 1·2·3위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군 내에서 '기무사 집단 학살 사건'으로 회자된 이날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군사권력은 육사 출신에게 더욱 집중되었다.
군 내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인사는 "박근혜가 취임하고 국방장관으로 내정됐던 김병관 후보자는 박정희와 육영수 사진이 든 열쇠고리를 들고 다녔던 사람이었다"면서 "비록 김 후보자는 낙마했지만, 박근혜 집권 기간 민주주의에 대한 소양이 부족했던 일단의 육사 출신 정치장교들이 청와대 안보실과 군 수뇌부를 장악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관련 문건은 이들 군 내 이너서클의 집단사고가 낳은 망상의 산물이었다는 지적이다.
출처 계엄령 문건 작성에 군 사조직 관여했나
곳곳에서 보이는 알자회 흔적들
[오마이뉴스] 글: 김도균, 편집: 박혜경 | 18.08.09 14:22 | 최종 업데이트 18.08.09 16:51
▲ 군-검 합동수사, 계엄령 문건 수사 박차 23일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수사하는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들어선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별관으로 군관계자가 오가고 있다. 국방부와 법무부는 기무사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과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 관련 의혹에 대해 군·검 합동수사기구를 구성해 공동으로 수사하기로 했다. ⓒ 연합뉴스
지난 1992년 2월 1일, 당시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은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 및 참모들에게 보낸 '참모총장 지휘서신(제1호)'을 통해 군내부의 사조직을 단시일 내에 완전히 해체하라고 지시했다. 지휘서신에서 김 총장은 "군은 더 이상 정치 등 군 외부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군 내부에 눈을 돌려 안보 전문 집단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단시일 내에 군 내부 종적 사조직을 해체토록 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여론은 군 내 사조직 해체가 군의 정치적 중립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김 총장의 지시를 환영했다. 하지만 김 총장 자신이 군 내 최대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의 핵심멤버 중 한 명으로 12.12 군사반란에 적극 가담했다는 점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채 1년도 못 가 김 총장의 지휘서신을 무색케 하는 '알자회' 사건이 터졌다. 1992년 10월 11일 임관 10주년을 맞아 전·후방에서 소령으로 근무하고 있던 육사 38기생 150여 명이 육사에 모여 진급 및 보직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고 판단되는 알자회 가입 동기생 12명을 동기회에서 제명할 것을 결의하고, 조직의 해체 및 관련자 징계를 상부에 건의했다. 이 같은 사실은 같은 해 11월 13일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동기회에서 제명된 38기생 중 한 명이 바로 계엄령 문건 작성에 관여한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이다.
1992년 알자회 사건과 2017년 계엄령 문건
군 수사기관의 조사결과 알자회는 1976년 육사 34기생들이 중심이 돼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서로 알고나 지내자"는 의미에서 '알자회'란 이름으로 출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8기·39기 등 특정기수는 회원 전원이 특정지역 출신으로 구성된데다, 선호하는 보직을 차지하는 등 특혜를 누려온 것으로 알려져 '알짜 보직을 주고 받는다'는 의미에서 '알짜회'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육군 지휘부는 육사 34~43기 알자회 가입 장교 120명 중 육본 인사운영감실, 청와대 경호실, 수방사, 육사 훈육관, 육군대학 교관 등 이른바 '재경(在京) 노른자 보직'에 근무하고 있는 20명의 보직을 변경키로 결정했다. 또 이듬해 육군은 사상 처음으로 진급심사과정을 공개하고, 당시 1차로 소령심사 대상이 된 육사 41기 중 알자회 가담자 11명은 아예 진급심사 대상에서 제외시키기도 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시를 받아 공무원·민간인을 불법 사찰해 보고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도 41기 알자회원이다. 알자회 동기생들이 소령 1차 진급에서 배제되었을 때, 그는 이미 예편해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에 입부한 상태였다. 일반대학 81학번에 해당하는 육사 41기는 1985년에 임관했는데, 추 전 국장은 이미 1988년부터 안기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관학교 출신 장교의 의무복무 기간이 10년(5년차 전역기회 부여)임을 감안하면 추 전 국장의 경우는 이례적인 사례임은 분명하다.
추 전 국장은 알자회 선배인 조현천 기무사령관을 청와대에 천거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군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국정원의 실력자였던 추 전 국장이 장성 진급 검증 과정에 관여하면서 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합동수사단, 군 내 사조직 관여 여부 조사중
한동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알자회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17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고 누락 논란 때도 알자회가 그 배후로 거론되기도 했다.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관련 문건 의혹을 수사 중인 군·검 합동수사단도 이런 이유 때문에 군 내 사조직이 친위 쿠데타를 상정한 문건 작성 과정에 관여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계엄령 문건이 만들어진 지난 2017년 3월 당시 현역으로 남아있던 알자회 출신이 5명에 불과했다는 점, 특히 실제 진압작전을 실행할 부대의 지휘관들 중 알자회 출신은 조종설 육군 특수전사령관 한 명 뿐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알자회가 친위쿠데타를 도모할 정도의 중심세력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하나회 출신 선·후배 지휘관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성공시켰던 12.12 쿠데타와는 달리, (이번에는) 군 내 사조직이 중심이 되어 무엇을 도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에 코드를 맞춘 군 내 '이너서클'이 존재했고, 이들이 문건 작성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관련 문건에서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이 맡도록 한 것은, 육사 출신을 중심으로 계엄사령부를 편성하기 위해 비육사(3사) 출신인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을 의도적으로 배체하기 위한 것이란 '합리적 의심'의 연장선상이다.
실제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육사 출신 유력자들이 국방부와 청와대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군 인사에 개입함에 따라 일선 장교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던 적이 있었다. 2013년 8월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던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은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군 인사를 관리하는 5개의 머리가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장 사령관이 지목한 5개의 머리는 김장수 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남재준 국정원장, 김관진 국방장관,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으로 이들은 모두 육사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25일 장경욱 기무사령관은 취임 반년 만에 전격 경질되고 말았다. 사령관뿐만 아니라 기무사 참모장, 100기무부대장 등 기무사 서열 1·2·3위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군 내에서 '기무사 집단 학살 사건'으로 회자된 이날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군사권력은 육사 출신에게 더욱 집중되었다.
군 내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인사는 "박근혜가 취임하고 국방장관으로 내정됐던 김병관 후보자는 박정희와 육영수 사진이 든 열쇠고리를 들고 다녔던 사람이었다"면서 "비록 김 후보자는 낙마했지만, 박근혜 집권 기간 민주주의에 대한 소양이 부족했던 일단의 육사 출신 정치장교들이 청와대 안보실과 군 수뇌부를 장악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관련 문건은 이들 군 내 이너서클의 집단사고가 낳은 망상의 산물이었다는 지적이다.
출처 계엄령 문건 작성에 군 사조직 관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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