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12명 참변에도…“지역경제 영향 크다” 사업주 실형 면해
‘산안법 위반’ 5년치 판결 뜯어보니
황당한 감형 사유로 관대한 처벌
“전문가 아니라…” 현장소장도 감형
사업주 ‘전과’ 있는데도 ‘실수’ 판결
“노동자 과실도 있다” 책임 떠넘겨
산재보험 가입도 감형 사유로
[한겨레] 이지혜 기자 | 등록 : 2019-06-10 05:00 | 수정 :2019-06-10 09:32
9일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판결 분석 연구’에 나오는 하급심 판례를 보면, 법원이 법을 위반한 사업주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매우 관대한 처벌 기준을 적용한 사례가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가 숨져도 “노동자의 과실이 있었다”, “산재보험에 가입했다” 등 황당한 이유로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2013년 울산지방법원은 노동자 12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건에서 사업주의 “지역사회 영향력”을 감형 사유로 내세웠다. 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감형 사유다. 2012년 2월에 벌어진 이 사건은 해저지반 공사를 하는 450톤 규모 작업선에 안전진단도 없이 300톤짜리 공사장비를 불법 증축했다가, 작업선이 풍랑을 만나 침몰하면서 노동자 12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참사였다.
이 회사 사업주는 공사 기간을 줄이려고 정해진 절차를 생략해 사고의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또 이 사업주는 사고 뒤 경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각종 자료를 은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법원은 판결문에 이런 점을 언급하며 “죄질이 매우 중하다”고 판단하고도, 정작 사업주에게 징역 1년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로 “사업주가 안전관리 책임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할 권한과 의무를 위임한 상태”였고 “그의 회사가 해상 공사를 다수 수행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법인에도 고작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이 공사의 안전관리 책임자로 사고 당시 배에 있었던 현장소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역시 양형 사유가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현장소장이 선박 구조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라서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을 들어 감형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사고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현장소장의 전문성 부족이 법원에서는 오히려 감형의 근거가 된 셈이다.
산안법을 위반한 사업주와 회사를 감싸기 위해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판결문도 있었다. 2014년 3월 골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노아무개(48)씨는 덮개가 씌워져 있지 않은 낙엽처리기계 회전축에 말려 들어가는 사고로 현장에서 숨졌다. 사업주는 기계 회전축에 작업자가 접촉할 수 없도록 덮개를 씌워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다. 사업주는 같은 해 12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 골프장 사업주는 3년 전에도 협착이나 감전 위험이 있는 기계 부위에 덮개를 설치하지 않아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전과’가 있었지만, 가중처벌을 받지 않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사업주의 전과를 언급하며 “피고인이 사고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지만, 정작 판결 때는 사업주를 ‘과실범’으로 판단했다. 사업주가 ‘실수로’ 안전보건 조처를 위반했다는 뜻이다. 더구나 법원은 “노동자의 과실도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업주 책임을 덜어줬다.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히 정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려는 산안법의 애초 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판결이다.
모든 고용주의 의무 사항인 ‘산업재해보험 가입’이 감형 사유가 된 판결도 있었다. 2012년 10월 공사현장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패널을 올리는 작업을 하던 노동자 정아무개(40)씨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 크레인에 깔려 숨졌다. 이곳 현장소장은 정씨에게 안전모를 지급하지 않은데다, 위험한 작업을 할 때 작업자와 크레인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확보해야 할 조처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동료 노동자 김아무개씨는 크레인 면허도 없이 운전대를 잡아 사고를 키웠다.
유족들이 현장소장과 김씨 등을 엄벌해달라며 법원에 탄원서를 냈지만 피고인들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원은 “피해자의 유족에게 산재보험금이 지급된 점”을 감형 사유로 꼽았다. 노동자를 단 1명이라도 고용한 사업주는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이번 보고서는 산안법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 ‘반성’이나 ‘합의’를 이유로 감형해주는 법원의 관행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피고인이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며 유족과 원만히 합의했다”는 관행구는 대부분의 판결문에 천편일률적으로 들어가 집행유예나 벌금형 선고의 주요 근거가 됐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반성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합의는 금전적 능력만 있다면 가능하다. 이런 요인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불리한 정황을 압도한다면 (해당 판결이) 사업주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로 전달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처 노동자 12명 참변에도…“지역경제 영향 크다” 사업주 실형 면해
‘산안법 위반’ 5년치 판결 뜯어보니
황당한 감형 사유로 관대한 처벌
“전문가 아니라…” 현장소장도 감형
사업주 ‘전과’ 있는데도 ‘실수’ 판결
“노동자 과실도 있다” 책임 떠넘겨
산재보험 가입도 감형 사유로
[한겨레] 이지혜 기자 | 등록 : 2019-06-10 05:00 | 수정 :2019-06-10 09:32
▲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이 지난해 4월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2018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열고 있다. 이들은 “노동부 중대재해 발생보고 자료를 기반으로 살인기업을 선정”하며 “기업의 책임과 처벌 강화를 위해 매년 산재사망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식 기자
9일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판결 분석 연구’에 나오는 하급심 판례를 보면, 법원이 법을 위반한 사업주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매우 관대한 처벌 기준을 적용한 사례가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가 숨져도 “노동자의 과실이 있었다”, “산재보험에 가입했다” 등 황당한 이유로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지역사회 영향력 있어” 집행유예
2013년 울산지방법원은 노동자 12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건에서 사업주의 “지역사회 영향력”을 감형 사유로 내세웠다. 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감형 사유다. 2012년 2월에 벌어진 이 사건은 해저지반 공사를 하는 450톤 규모 작업선에 안전진단도 없이 300톤짜리 공사장비를 불법 증축했다가, 작업선이 풍랑을 만나 침몰하면서 노동자 12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참사였다.
이 회사 사업주는 공사 기간을 줄이려고 정해진 절차를 생략해 사고의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또 이 사업주는 사고 뒤 경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각종 자료를 은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법원은 판결문에 이런 점을 언급하며 “죄질이 매우 중하다”고 판단하고도, 정작 사업주에게 징역 1년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로 “사업주가 안전관리 책임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할 권한과 의무를 위임한 상태”였고 “그의 회사가 해상 공사를 다수 수행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법인에도 고작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이 공사의 안전관리 책임자로 사고 당시 배에 있었던 현장소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역시 양형 사유가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현장소장이 선박 구조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라서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을 들어 감형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사고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현장소장의 전문성 부족이 법원에서는 오히려 감형의 근거가 된 셈이다.
사업주 전과 있어도…“노동자 과실”
산안법을 위반한 사업주와 회사를 감싸기 위해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판결문도 있었다. 2014년 3월 골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노아무개(48)씨는 덮개가 씌워져 있지 않은 낙엽처리기계 회전축에 말려 들어가는 사고로 현장에서 숨졌다. 사업주는 기계 회전축에 작업자가 접촉할 수 없도록 덮개를 씌워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다. 사업주는 같은 해 12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 골프장 사업주는 3년 전에도 협착이나 감전 위험이 있는 기계 부위에 덮개를 설치하지 않아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전과’가 있었지만, 가중처벌을 받지 않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사업주의 전과를 언급하며 “피고인이 사고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지만, 정작 판결 때는 사업주를 ‘과실범’으로 판단했다. 사업주가 ‘실수로’ 안전보건 조처를 위반했다는 뜻이다. 더구나 법원은 “노동자의 과실도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업주 책임을 덜어줬다.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히 정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려는 산안법의 애초 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판결이다.
산재보험 가입했다고 집행유예
모든 고용주의 의무 사항인 ‘산업재해보험 가입’이 감형 사유가 된 판결도 있었다. 2012년 10월 공사현장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패널을 올리는 작업을 하던 노동자 정아무개(40)씨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 크레인에 깔려 숨졌다. 이곳 현장소장은 정씨에게 안전모를 지급하지 않은데다, 위험한 작업을 할 때 작업자와 크레인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확보해야 할 조처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동료 노동자 김아무개씨는 크레인 면허도 없이 운전대를 잡아 사고를 키웠다.
유족들이 현장소장과 김씨 등을 엄벌해달라며 법원에 탄원서를 냈지만 피고인들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원은 “피해자의 유족에게 산재보험금이 지급된 점”을 감형 사유로 꼽았다. 노동자를 단 1명이라도 고용한 사업주는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이번 보고서는 산안법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 ‘반성’이나 ‘합의’를 이유로 감형해주는 법원의 관행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피고인이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며 유족과 원만히 합의했다”는 관행구는 대부분의 판결문에 천편일률적으로 들어가 집행유예나 벌금형 선고의 주요 근거가 됐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반성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합의는 금전적 능력만 있다면 가능하다. 이런 요인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불리한 정황을 압도한다면 (해당 판결이) 사업주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로 전달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처 노동자 12명 참변에도…“지역경제 영향 크다” 사업주 실형 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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