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신화’ 창조한 농민들 “이명박... 억울해서 잠도 안 와”
[삽질 10년, 산 강과 죽은 강 10] 낙동강 보 수문 개방을 희망하는 농민들
[오마이뉴스] 글 : 김종술, 사진 : 권우성 | 등록 : 2019.09.19 19:01 | 수정 : 2019.09.19 19:59
“물고기 살리자고 사람 잡냐... 수문개방 결사반대”
“가뭄대책 없는 상주보 개방, 결사반대”
지난달 29일 낙동강 상주보 인근 도로변을 도배한 빛바랜 현수막을 보면서 금강 공주보를 떠올렸다. 공주보 주변과 공주시내를 도배했던 아래와 같은 현수막 문구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농민 다 죽인다, 공주보 해체 결사반대”
지난 3월부터 3~4개월 동안 내걸렸던 이런 현수막은 지금은 공주지역에 남아 있지 않다. 지난 2월 22일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발표한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에 반발하면서 토착왜구당과 관변단체들이 붙인 현수막이었다. 당시 4대강조사평가기획위는 금강의 경우 세종보를 해체하고 공주보의 공도교 기능을 남긴 채 부분 해체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금강과 낙동강의 닮은꼴이 현수막 문구만은 아니었다. 토착왜구당 황교활 대표와 왜창 나베 원내대표는 번갈아가며 공주보와 세종보를 다녀갔다. 이들은 4대강조사평가위 제안에 대해 “멀쩡한 보를 뜯는데 세금을 낭비한다”면서 “국가기간시설 파괴”라고 성토했다. 두 명의 대표는 지난 5월 낙동강 구미보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되풀이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보를 없애겠다는 것인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고 있다. (중략) 이 정권은 4대강 사업이 환경을 망쳤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황교활 대표)
“문재인 정권은 농민들의 이야기, 시민들의 이야기는 외면하면서 이상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보 해체를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왜창 나베 원내대표)
금강과 낙동강에서 본 씁쓸한 풍경, 같은 점은 또 있다. 보 해체와 수문개방의 반대 명분으로 ‘농민’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토착왜구당은 금강에서 보 해체 반대 명분으로 ‘농업용수 부족’을 내세웠고, 낙동강 8개 보의 수문개방 반대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를 댔다.
금강과 낙동강에서의 토착왜구당 대응 방식 중에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미 벌어진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 사이의 간극이다. 이들은 세종보, 공주보의 수문이 전면 개방된 금강에 와서 “농업용수와 지하수가 고갈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농번기 때 이 주장은 거짓임이 들통났다. “우리 농민 다 죽인다”고 주장했던 마을의 농수로에는 물이 철철 넘쳤다.
아래 사진은 당시 기자가 찍은 ‘물의 나라’ 영상이다.
낙동강 8개 보의 경우, 지금도 물을 가둬둔 것은 수문을 연 뒤에 발생할 수 있는 물 부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토착왜구당은 “수문을 연다면 농업용수가 부족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강처럼 이를 검증할 방법은 없다. 지하수위 하락 등의 영향을 모니터링하려고 해도, 토착왜구당과 일부 농민들이 일시적인 수문 개방조차 봉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낙동강을 취재하면서 토착왜구당이 앞세운 ‘피해 예정 농민’들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실제 피해를 당한 2명의 농민을 만났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보를 열어달라고 호소해 왔지만, 보상도 받지 못한 농민들이다. 농민을 위해 수문을 닫아야 한다는 토착왜구당 주장과 달리 수문을 열어달라고 주장해온 사람들이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지난 8월 29일 찾아간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의 남지철교 밑 낙동강에는 녹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가을 장마로 비가 많이 내렸고, 그날도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는데도 강변에 깔아놓은 돌 틈 사이를 녹색 페인트로 채운 듯 녹조가 머물고 있었다. 그곳에서 농민 이선길(65)씨를 만났다. 그는 우선 녹조 이야기부터 꺼냈다.
“예전에도 아주 가물고 웅덩이가 진 곳에서는 녹조 같은 게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새파랗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축산폐수와 오염수가 많아 물이 썩는다고 하는데, 그 말은 잘못된 겁니다. 예전보다 축산폐기물도 적고 오염수도 적게 배출됩니다. 환경은 잘 모르지만 4대강 사업으로 보에 물을 가둬서 썩는 겁니다.”
그는 “아무리 비가 내려도 씻기지 않는 시궁창 펄이 강바닥에 내 키만큼 쌓였을 것”이라면서 “주변 사람들과 척지기 싫어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4대강 보는 영원한 골칫거리이고, 과거처럼 물을 다 빼어버리면 날파리 떼들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신 담배를 피워 물면서 말을 이었다.
“이곳 농민들은 일반 농사도 짓지만, 하우스를 많이 합니다. 4대강 사업을 위해 공청회를 할 때부터 4대강 사업으로 보가 만들어지면 안개가 많이 피고, 기온이 급강화한다고 주장했어요. 농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어요. 당시 경산대에 다니던 친구들로부터도 진주 남강댐 만들고 기온이 7도 정도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었죠.”
4대강 사업 이후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낙동강의 물을 채우니 습하고 안개가 심해서 보통 12시나 1시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또 안개가 끼면 햇빛이 줄어들어 식물들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름값이 많이 들었죠. 병충해도 잦아졌습니다. 과거에 한 번 치던 농약을 두세 번 쳤습니다. 대신 수확은 줄었죠.”
그가 참여한 작목반은 230 농가로 구성돼 있다. 그는 “지하수 상승과 안개로 인한 작목반의 피해를 따져보니 무려 100억 원이나 됐다”면서 “보의 물을 빼면 물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창녕 지역의 경우 낙동강과 동떨어진 천수답의 농민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기에 그런 분들에게 시설을 보강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낙동강 보의 수문만 개방하면 환경도 살고, 지역 농민들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일 때 한나라당의 후신인 토착왜구당 의원들은 보에 물을 가득 채워두면 강도 살고 지역 경제도 풍요로워진다고 주장했었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다음날인 30일에 만난 농민은 경북 고령군 객기리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곽상수씨였다. 인근 지역인 포2리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오이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서 ‘신화창조’ 이야기부터 꺼냈다.
“과거에 KBS ‘신화창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수박이 잘 안 되는 지역에서 농민들의 노력으로 전국 최고의 그린 수박 원산지로 거듭난 스토리를 내보냈죠. 봄·가을에 가뭄이 들고 모래땅의 물 빠짐이 좋았습니다. 농민들은 일교차 등 자연조건을 이용해서 명품 수박을 만들었어요. 상인들은 이곳에 와서도 수박을 못 사서 난리였어요. 상인들이 농민들에게 술을 사주면서 자기에게 수박을 팔라고 할 정도였죠.”
곽씨에 따르면 이곳의 수박은 11월에 거름도 뿌린다. 12월 말~1월 초에 모종을 심고 5월 말이나 6월 초에 수확한다. 강의 수위가 떨어지는 시기에 물 빠짐이 좋은 모래땅에 심어 홍수기 전 출하하는 형태다. 수박은 갈수기에 최적화된 농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확을 마친 농민들은 홍수기에 벼농사를 지었다. 농민들에게 객기리는 이모작을 통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천혜의 농토였다.
하지만 합천보에서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수박농사는 직격탄을 맞았다. 2014년 4월부터 수박의 잎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하우스의 수박이 쭈글쭈글해졌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8년 넘게 버텼지만, 결국 4대강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2008년에 800동에 달하던 하우스가 150동으로 줄었다.
“예전에는 강 수위가 4m 정도였죠. 합천보 건설로 강 수위가 10.5m로 올라갔습니다. 6m가 높아졌기에 지하수위도 상승했습니다. 땅을 50cm만 파도 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수박 농사는 많은 물을 주어도 1시간이면 다 빠져나가야 합니다. 물이 빠지면 뿌리가 영양분을 찾아 1~2m 깊은 곳까지 내려갑니다. 그래서 당도 높은 최고 품질의 수박이 탄생했던 겁니다. 지금은 뿌리를 뻗을 필요가 없겠죠. 그래서 품질이 나빠진 것입니다.”
그는 하우스에 있는 오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여기도 땅에 물이 많아서 저렇게 쭈글쭈글한 오이가 많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수박 농사 피해에 대해 보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년부터 합천보의 수위를 1.5m 낮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수박 농가 150동의 수박이 수위만 낮췄는데 쭈글거리는 현상이 없어졌다고 했다.
“올해는 수박 값을 최고로 600만 원 정도 받았어요. 수박 농사를 지으면 하우스 한 동에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10동에서 수박 농사를 지으면 4천만 원의 순수익이 떨어지죠. 10동이면 한 가족이 지을 수 있는 양인데 지난 8년 동안은 한 동에 50~100만 원 정도밖에 수확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보의 수위라도 낮춰달라고 호소하면서 버텼습니다.
이제 정부는 수박피해 농민들에게 귀를 활짝 열고 합천보 수문도 활짝 열어야 합니다. 또 정부는 그동안 고생을 해 온 농민들을 찾아와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줘야 합니다. 그동안 농민들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한 배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촛불 정부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는 “과거 4대강 사업을 할 때 이명박 정부로부터 막대한 농지보상을 받으면서 특혜를 누렸던 사람들이 지금도 보 개방은 안 된다고 떠들고 있다”면서 “10년 전부터 피해를 당해온 우리들은 지금도 억울해서 잠도 못 잘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말을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곳에서 가장 젊은 51살 농부입니다. 아버지도 이 들에서 농사를 지었고 나도 그 뒤를 이어 15년 정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70년도에 이곳 제방을 정리할 때 한 집에 한 명씩 부역을 했습니다. 당시 학교도 못 가고 고사리손으로 품을 냈습니다. 국가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쌓은 제방입니다. 우리는 정부 도움 없이 잘사는 농촌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늙고 병든 지역을 만들었습니다. 이젠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지금도 낙동강 수문 개방을 결사반대하는 토착왜구당 의원들에게 객기리 수박 농민들은 농민이 아니었다. 토착왜구당은 수문을 열면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농업용수 피해를 걱정했지만, 지난 10년간 낙동강 보의 수문을 개방해달라고 호소해 온 또 다른 농민들의 피해에는 눈을 감았다.
이곳에는 상주보에 걸린 것과 같은 현수막은 없었지만, 물이 바닥에 흥건한 오이 하우스의 뜯어진 비닐이 비바람에 펄럭였다.
출처 ‘수박 신화’ 창조한 농민들 “이명박... 억울해서 잠도 안 와”
[삽질 10년, 산 강과 죽은 강 10] 낙동강 보 수문 개방을 희망하는 농민들
[오마이뉴스] 글 : 김종술, 사진 : 권우성 | 등록 : 2019.09.19 19:01 | 수정 : 2019.09.19 19:59
▲ 경북 상주시 도남동 낙동강 상주보. ⓒ 권우성
“물고기 살리자고 사람 잡냐... 수문개방 결사반대”
“가뭄대책 없는 상주보 개방, 결사반대”
지난달 29일 낙동강 상주보 인근 도로변을 도배한 빛바랜 현수막을 보면서 금강 공주보를 떠올렸다. 공주보 주변과 공주시내를 도배했던 아래와 같은 현수막 문구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농민 다 죽인다, 공주보 해체 결사반대”
[금강과 낙동강] 토착왜구당의 닮은 꼴 전략
지난 3월부터 3~4개월 동안 내걸렸던 이런 현수막은 지금은 공주지역에 남아 있지 않다. 지난 2월 22일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발표한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에 반발하면서 토착왜구당과 관변단체들이 붙인 현수막이었다. 당시 4대강조사평가기획위는 금강의 경우 세종보를 해체하고 공주보의 공도교 기능을 남긴 채 부분 해체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 토착왜구당 황교활 대표와 왜창 나베 원내대표가 지난 5월 13일 경북 구미시 선산읍 낙동강 구미보에서 현장최고위원회를 열었다. ⓒ 조정훈
금강과 낙동강의 닮은꼴이 현수막 문구만은 아니었다. 토착왜구당 황교활 대표와 왜창 나베 원내대표는 번갈아가며 공주보와 세종보를 다녀갔다. 이들은 4대강조사평가위 제안에 대해 “멀쩡한 보를 뜯는데 세금을 낭비한다”면서 “국가기간시설 파괴”라고 성토했다. 두 명의 대표는 지난 5월 낙동강 구미보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되풀이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보를 없애겠다는 것인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고 있다. (중략) 이 정권은 4대강 사업이 환경을 망쳤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황교활 대표)
“문재인 정권은 농민들의 이야기, 시민들의 이야기는 외면하면서 이상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보 해체를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왜창 나베 원내대표)
[농업용수 부족?] 미래의 피해와 현재의 피해
금강과 낙동강에서 본 씁쓸한 풍경, 같은 점은 또 있다. 보 해체와 수문개방의 반대 명분으로 ‘농민’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토착왜구당은 금강에서 보 해체 반대 명분으로 ‘농업용수 부족’을 내세웠고, 낙동강 8개 보의 수문개방 반대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를 댔다.
금강과 낙동강에서의 토착왜구당 대응 방식 중에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미 벌어진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 사이의 간극이다. 이들은 세종보, 공주보의 수문이 전면 개방된 금강에 와서 “농업용수와 지하수가 고갈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농번기 때 이 주장은 거짓임이 들통났다. “우리 농민 다 죽인다”고 주장했던 마을의 농수로에는 물이 철철 넘쳤다.
아래 사진은 당시 기자가 찍은 ‘물의 나라’ 영상이다.
낙동강 8개 보의 경우, 지금도 물을 가둬둔 것은 수문을 연 뒤에 발생할 수 있는 물 부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토착왜구당은 “수문을 연다면 농업용수가 부족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강처럼 이를 검증할 방법은 없다. 지하수위 하락 등의 영향을 모니터링하려고 해도, 토착왜구당과 일부 농민들이 일시적인 수문 개방조차 봉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낙동강을 취재하면서 토착왜구당이 앞세운 ‘피해 예정 농민’들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실제 피해를 당한 2명의 농민을 만났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보를 열어달라고 호소해 왔지만, 보상도 받지 못한 농민들이다. 농민을 위해 수문을 닫아야 한다는 토착왜구당 주장과 달리 수문을 열어달라고 주장해온 사람들이다.
[안개 피해] “지하수 상승과 안개로 인해 100억원 날렸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지난 8월 29일 찾아간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의 남지철교 밑 낙동강에는 녹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가을 장마로 비가 많이 내렸고, 그날도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는데도 강변에 깔아놓은 돌 틈 사이를 녹색 페인트로 채운 듯 녹조가 머물고 있었다. 그곳에서 농민 이선길(65)씨를 만났다. 그는 우선 녹조 이야기부터 꺼냈다.
▲ 경남 창녕군 남지읍 농민 이선길(65세)씨. ⓒ 권우성
“예전에도 아주 가물고 웅덩이가 진 곳에서는 녹조 같은 게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새파랗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축산폐수와 오염수가 많아 물이 썩는다고 하는데, 그 말은 잘못된 겁니다. 예전보다 축산폐기물도 적고 오염수도 적게 배출됩니다. 환경은 잘 모르지만 4대강 사업으로 보에 물을 가둬서 썩는 겁니다.”
그는 “아무리 비가 내려도 씻기지 않는 시궁창 펄이 강바닥에 내 키만큼 쌓였을 것”이라면서 “주변 사람들과 척지기 싫어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4대강 보는 영원한 골칫거리이고, 과거처럼 물을 다 빼어버리면 날파리 떼들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신 담배를 피워 물면서 말을 이었다.
“이곳 농민들은 일반 농사도 짓지만, 하우스를 많이 합니다. 4대강 사업을 위해 공청회를 할 때부터 4대강 사업으로 보가 만들어지면 안개가 많이 피고, 기온이 급강화한다고 주장했어요. 농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어요. 당시 경산대에 다니던 친구들로부터도 진주 남강댐 만들고 기온이 7도 정도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었죠.”
4대강 사업 이후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낙동강의 물을 채우니 습하고 안개가 심해서 보통 12시나 1시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또 안개가 끼면 햇빛이 줄어들어 식물들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름값이 많이 들었죠. 병충해도 잦아졌습니다. 과거에 한 번 치던 농약을 두세 번 쳤습니다. 대신 수확은 줄었죠.”
그가 참여한 작목반은 230 농가로 구성돼 있다. 그는 “지하수 상승과 안개로 인한 작목반의 피해를 따져보니 무려 100억 원이나 됐다”면서 “보의 물을 빼면 물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창녕 지역의 경우 낙동강과 동떨어진 천수답의 농민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기에 그런 분들에게 시설을 보강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낙동강 보의 수문만 개방하면 환경도 살고, 지역 농민들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일 때 한나라당의 후신인 토착왜구당 의원들은 보에 물을 가득 채워두면 강도 살고 지역 경제도 풍요로워진다고 주장했었다.
[몰락한 신화] 합천보 물 가두자 쭈글쭈글해진 수박
▲ 경북 고령군 객기리 농민 곽상수씨. ⓒ 권우성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다음날인 30일에 만난 농민은 경북 고령군 객기리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곽상수씨였다. 인근 지역인 포2리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오이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서 ‘신화창조’ 이야기부터 꺼냈다.
“과거에 KBS ‘신화창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수박이 잘 안 되는 지역에서 농민들의 노력으로 전국 최고의 그린 수박 원산지로 거듭난 스토리를 내보냈죠. 봄·가을에 가뭄이 들고 모래땅의 물 빠짐이 좋았습니다. 농민들은 일교차 등 자연조건을 이용해서 명품 수박을 만들었어요. 상인들은 이곳에 와서도 수박을 못 사서 난리였어요. 상인들이 농민들에게 술을 사주면서 자기에게 수박을 팔라고 할 정도였죠.”
곽씨에 따르면 이곳의 수박은 11월에 거름도 뿌린다. 12월 말~1월 초에 모종을 심고 5월 말이나 6월 초에 수확한다. 강의 수위가 떨어지는 시기에 물 빠짐이 좋은 모래땅에 심어 홍수기 전 출하하는 형태다. 수박은 갈수기에 최적화된 농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확을 마친 농민들은 홍수기에 벼농사를 지었다. 농민들에게 객기리는 이모작을 통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천혜의 농토였다.
▲ 낙동강 창녕합천보 상류인 경북 고령군 객기리 일대. 멀리 가로로 흐르는 강이 낙동강, 세로로 흐르는 강이 지천인 회천이다. ⓒ 권우성
▲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 세워진 경남 창녕합천보. 보 왼쪽이 합천군, 오른쪽이 창녕군이다. ⓒ 권우성
하지만 합천보에서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수박농사는 직격탄을 맞았다. 2014년 4월부터 수박의 잎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하우스의 수박이 쭈글쭈글해졌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8년 넘게 버텼지만, 결국 4대강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2008년에 800동에 달하던 하우스가 150동으로 줄었다.
“예전에는 강 수위가 4m 정도였죠. 합천보 건설로 강 수위가 10.5m로 올라갔습니다. 6m가 높아졌기에 지하수위도 상승했습니다. 땅을 50cm만 파도 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수박 농사는 많은 물을 주어도 1시간이면 다 빠져나가야 합니다. 물이 빠지면 뿌리가 영양분을 찾아 1~2m 깊은 곳까지 내려갑니다. 그래서 당도 높은 최고 품질의 수박이 탄생했던 겁니다. 지금은 뿌리를 뻗을 필요가 없겠죠. 그래서 품질이 나빠진 것입니다.”
그는 하우스에 있는 오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여기도 땅에 물이 많아서 저렇게 쭈글쭈글한 오이가 많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문개방] 4대강 사업 피해 농민에게도 귀를 활짝 열어야
하지만 그는 지금껏 수박 농사 피해에 대해 보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년부터 합천보의 수위를 1.5m 낮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수박 농가 150동의 수박이 수위만 낮췄는데 쭈글거리는 현상이 없어졌다고 했다.
“올해는 수박 값을 최고로 600만 원 정도 받았어요. 수박 농사를 지으면 하우스 한 동에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10동에서 수박 농사를 지으면 4천만 원의 순수익이 떨어지죠. 10동이면 한 가족이 지을 수 있는 양인데 지난 8년 동안은 한 동에 50~100만 원 정도밖에 수확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보의 수위라도 낮춰달라고 호소하면서 버텼습니다.
이제 정부는 수박피해 농민들에게 귀를 활짝 열고 합천보 수문도 활짝 열어야 합니다. 또 정부는 그동안 고생을 해 온 농민들을 찾아와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줘야 합니다. 그동안 농민들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한 배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촛불 정부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는 “과거 4대강 사업을 할 때 이명박 정부로부터 막대한 농지보상을 받으면서 특혜를 누렸던 사람들이 지금도 보 개방은 안 된다고 떠들고 있다”면서 “10년 전부터 피해를 당해온 우리들은 지금도 억울해서 잠도 못 잘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말을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곳에서 가장 젊은 51살 농부입니다. 아버지도 이 들에서 농사를 지었고 나도 그 뒤를 이어 15년 정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70년도에 이곳 제방을 정리할 때 한 집에 한 명씩 부역을 했습니다. 당시 학교도 못 가고 고사리손으로 품을 냈습니다. 국가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쌓은 제방입니다. 우리는 정부 도움 없이 잘사는 농촌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늙고 병든 지역을 만들었습니다. 이젠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지금도 낙동강 수문 개방을 결사반대하는 토착왜구당 의원들에게 객기리 수박 농민들은 농민이 아니었다. 토착왜구당은 수문을 열면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농업용수 피해를 걱정했지만, 지난 10년간 낙동강 보의 수문을 개방해달라고 호소해 온 또 다른 농민들의 피해에는 눈을 감았다.
이곳에는 상주보에 걸린 것과 같은 현수막은 없었지만, 물이 바닥에 흥건한 오이 하우스의 뜯어진 비닐이 비바람에 펄럭였다.
출처 ‘수박 신화’ 창조한 농민들 “이명박... 억울해서 잠도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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