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거짓말 릴레이를 좇아가다
[한겨레21 제891호] 특별취재팀 | 2011.12.26
[표지 이야기] 단독범행 몰고가려 청와대 외압, 금전거래 대가성 부인한 경찰…일선 경찰 입 막다 금전거래 폭로되자 수사팀에 책임 돌리는 수뇌부 거짓말의 재구성
경찰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사고를 치고도 거짓말을 늘어놓는 피의자와 마주하는 느낌을. 지금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이 그러할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의 디도스 공격을 둘러싼 금전거래를 은폐한 경찰의 발표 내용은 한마디로 오락가락·뒤죽박죽이다. 경찰 발표 내용의 앞뒤를 맞춰보면, 거짓말의 수준은 몰상식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덕의 언저리를 벗어난다. 경찰 조직 전체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거짓말로 눈가림하려는 경찰 수뇌부의 꼼수 탓일 것이다. 공연히 욕먹고 있을 일선 경찰들만 불쌍하게 됐다. 슬프게도 ‘권력의 지팡이’로 전락해버린 경찰의 거짓말 릴레이를 살펴보자._편집자
“금전거래 없었다?”
경찰은 지난 12월9일 선관위 누리집 공격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금전거래는 없었다고 못박았다. 그날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공아무개씨와 디도스 공격자들에 대한 계좌·신용카드·이메일 및 압수물 분석을 한 결과, 현재까지는 본건과 관련하여 준비자금 또는 대가 제공을 확인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겨레21>이 12월14일 누리집을 통해 “디도스 공격 ‘금전거래’ 있었다”라고 단독 보도하자,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그날 바로 말을 바꾸었다. 경찰은 수사 내용을 그때까지 숨기다가 사실관계가 백일하에 드러나자 마지못해 인정하는 모양새였다. 경찰이 실토한 내용도 기사와 똑같았다. 디도스 공격을 전후해 김아무개(30·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씨와 공아무개(27·최구식 국회의원 비서·구속)씨, 강아무개(25·정보기술(IT)업계 대표·디도스 공격 담당자·구속)씨 사이에 수차례의 돈거래가 있었다는 내용이다(표 참조).
이에 대해 경찰은 계좌추적이 뒤늦게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도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는 말이다.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12월14일 “12일 계좌추적이 끝나기까지 금전거래에 대한 진술만 있을 뿐, 이를 증명할 만한 물증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또한 거짓말이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경찰은 이미 12일 이전에 계좌 기록을 확인했고, 8일 수사 결과 발표 때 계좌 내용을 발표할지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12월8일에도, 12일에도 금전거래를 둘러싼 진실을 말하길 거부했다.
“청와대 직원은 없었다?”
박희태 국회의장의 비서인 김아무개(30)씨는 디도스 공격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10월25일 저녁 서울시내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경찰의 처음 발표를 보면, 이 자리에는 김씨 외에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비서 김아무개(34)씨와 공성진 전 의원 비서 출신 박아무개(35)씨 2명만 있었다. 술자리는 서울 강남의 단란주점에서 2차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 합류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비서인 공아무개씨는 그날 밤 술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새벽까지 문제의 디도스 공격을 지시했다. 앞뒤 맥락을 보면, 20대인 공아무개씨의 단독 범행으로 이해하기 힘든 정황이 만들어진다. 경찰의 단독범행론에 대해 각종 언론에서 토를 다는 이유이기도 했다.
경찰의 거짓말은 곧 들통이 났다. 지난 12월8일 언론매체들은 문제의 술자리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인물은 청와대 국내의전팀 박아무개 행정관이다. 그는 문제가 된 1차 술자리에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운하 수사기획관은 12월9일 기자 브리핑에서 “참고인에 불과한 사람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보면서 인권을 처음 생각했다. 직접 관련이 없다면 공개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그렇지만 경찰은 1차 술자리에 참석한 정두언 의원 비서와 공성진 전 의원 비서의 신원은 밝혔다. 경찰의 인권 보호는 청와대 인사를 위해서만 적용된 셈이다. 여러 언론매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궁색한 변명”이라고 해석했다.
청와대 인사의 인권이 남다르긴 했나 보다. 박 행정관은 12월7일 경찰 소환에 응했으나 조사를 거부했다. 다른 참고인과 피의자는 경찰청 별관에서 심문을 받았지만 청와대 행정관은 취재진의 눈을 피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사받았다. 경찰이 청와대 주변에 둘러친 ‘방화벽’이 뚫리자,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불길을 잡았다. 청와대는 12월8일 “박 행정관이 공씨와는 무관하게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들과 서울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왜 이렇게 무리수를 뒀을까? 경찰의 다음 거짓말들을 따지다 보면 실마리가 나온다.
“외압이 없었다?”
이영상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장은 12월12일 경찰 내부망에 올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 후기’에서 “수사 진행 과정에서 어떠한 외압이나 주저함이 없었다는 점은 단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외압도 있었고, 주저함도 있었다. 사정 당국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청와대 치안비서관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찰청으로 직접 전화해 “손발 안 맞아 뭐를 할 수가 없다”고 역정을 냈다. 경찰 수사 혹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조율을 했다는 의미다. 이런 배경 속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은 수사진의 주장을 무리하게 꺾어가며 수사 결과 일부를 은폐했다.
지난 12월8일 수사 결과를 공개하기 직전까지 경찰이 ‘잔머리’를 굴리며 오래 주저한 정황도 드러난다. <헤럴드경제>의 12월15일치 기사를 보면, 12월8일 경찰청장과 수사국장, 수사기획관 등 핵심 멤버는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두 번에 나눠 경찰청장 집무실에서 회의를 했다. 8시부터 8시30분까지는 이들 외에도 사이버센터장·사이버수사기획관 등이 동석했으며, 회의가 끝난 뒤인 10시부터 11시까지는 경찰청장과 수사국장, 수사기획관 등 핵심 멤버만 따로 청장실에 모여 다시 한번 1시간에 걸쳐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12월15일 경찰청을 항의 방문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이 사실을 시인하며 “검경 수사권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중대한 사안을 발표할 때 검경 수사권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는 모양이 이상하다”고 맞받았다.
“대가성 있었다, 없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특히 거짓말이 어설프면 더욱 그렇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12월15일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김아무개(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씨가 디도스 공격 주범인 공아무개씨에게 송금한 1천만원에 대가성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이 하루 만에 자신의 말을 정반대로 뒤집은 꼴이었다. 경찰은 하루 전인 12월14일, 그러니까 <한겨레21>이 ‘돈거래 사실’을 단독 보도한 직후, 디도스 공격을 전후해 해커 강씨에게 전달된 1억원의 돈이 “사건과 무관한 개인적인 거래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가관이다. 경찰은 판단이 바뀐 핵심 이유를 설명하며,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김씨의 말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다고 밝혔다. 불법행위를 전후해 주고받은 자금에 대해서는 대가성을 부정하면서, 거짓말탐지기의 말을 신뢰하는 꼴이었다.
이 말도 다시 반나절 만에 뒤집힌다. 경찰은 그날 오후 2시 기자들을 다시 모아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만들다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오전의 보도자료 내용을 부인했다.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주고받은 돈이) 사인 간의 거래’라는 경찰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며 “거짓말탐지기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는데, 대가성일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면 논란이 있을 것 같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국민을 상대로 경찰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었다. 경찰이 왜 이런 곡예를 부렸을까? 경찰의 다음 주장으로 넘어가보자.
“공씨의 단독 범행이다”
경찰은 12월8일 공씨가 술자리 중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공씨는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돕는 게 최구식 의원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젊은 층이 투표소를 못 찾게 하면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20대 청년은 ‘대형사고’의 단독 기획자가 됐다. 경찰이 설명하는 당시의 정황 가운데 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 공씨가 지난 10월26일 새벽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김(박희태 국회의원 비서)씨에게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로 때릴 수 있다는데 때릴까요?”라고 묻자, 김씨는 “절대 하지 말라”고 말렸다. 김씨는 이때 공씨의 계획을 처음 들었다.
경찰이 밝힌 이런 정황은 공씨의 ‘단독범행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그렇지만 이 정황은 경찰의 ‘소설’일 가능성이 크다. 경찰이 발표한 내용을 복기해보자. 김아무개씨는 디도스 공격이 있기 6일 전인 10월20일 공아무개씨의 계좌로 1천만원을 보냈다. 공씨는 이 돈을 10월31일 강아무개씨에게 넘겼다. 디도스 공격이 성공하고 나서 5일 뒤다. 대가의 정황은 명확해 보인다.
경찰은 ‘어리석게도’ 이를 인정해버렸다. 경찰은 12월15일 “(김씨에게서 강씨에게 흘러간) 1천만원에 대가성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말은, 김씨가 디도스 공격의 내용을 사전에 알았다는 뜻이 된다. 즉, ‘디도스 공격=공씨의 단독 범행’ 공식은 무너지게 된다. 그렇다면 앞에서 경찰이 그려준 정황은 거짓으로 판명나게 된다. 경찰이 12월15일 반나절 만에 서둘러 말을 뒤집고, ‘돈거래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강변한 이유다. 경찰의 ‘거짓말 곡예’는 자신의 통제 수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경찰이 ‘실수’로 인정했듯이, 김씨가 디도스 공격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가정하면 상황은 묘해진다. 김씨는 디도스 공격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 청와대 행정관과 만났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우연이 겹친다. 박아무개 청와대 행정관은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2010년 이후 총리실 정보관리비서관실 상황행정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정보관리비서관실은 온라인 등의 여론 동향을 점검하는 곳으로, 박 행정관은 정부·여당에서 온라인 시스템 등의 문제를 다뤄온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10월25일의 술자리에 박 행정관이 참여한 사실을 숨겨오다가 뒤늦게 밝힌 점도 사건의 정황을 둘러싼 의혹을 키우는 대목이다.
“몰랐다”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은 12월2일 트위터를 통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황당한 심정”이라며 “보좌진과 주변을 상대로 확인해봤지만 제 운전기사가 그런 일에 연루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글을 올렸다. 그리고 다음 말이 묘하다. 묘하다 못해 해괴하다. 그는 “만약 제가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즉각 의원직을 사퇴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언뜻 책임을 지겠다는 말처럼 보이지만, 두 번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이런 대형사고에 연루됐다면 그는 이미 국회의원 자격에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된다. 그의 말은 비유하자면, ‘내가 100만원을 훔쳤다면, 책임지고 10만원을 돌려주겠다’는 격이다. 법 정의에 민감한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왔다고 보기 힘든 말이다.
최 의원을 둘러싼 정황도 아리송하다. 경찰이 그린 시나리오를 따라가도, 김씨 등은 공씨가 주도한 디도스 공격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공격을 주도한 공씨에게 “한나라당에 엄청난 악재가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최 의원에게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김씨 역시 최 의원의 비서관 출신이다. 또 디도스 공격 과정에 참여한 혐의로 구속된 차아무개(27·IT업자)씨는 최 의원이 지역구에 내려가면 차를 모는 등 비서 구실을 했던 인물이다. 디도스 공격이 사실상 최 의원의 주변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그림이 그려진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핵심 인사는 12월16일 묘한 말을 했다. “최구식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 전날 몇몇 의원들과 밥을 먹으면서 ‘비장의 카드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최 의원의 개입을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개입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힘든 정황도 나온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 등의 말만 믿고 최 의원을 소환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를 둘러싼 의혹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검찰이 최 의원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 12월15일이었다.
여전히 선관위 누리집 공격을 둘러싼 진실은 안갯속에 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밝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잇따른 거짓말로 상황을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12월16일 언론 브리핑을 자청해 경찰청 수사팀의 결론을 뒤집었다. 그는 디도스 공격은 우발적 단독 범행이 아닌 것으로 보일뿐더러, 배후의 돈 거래도 대가성으로 보인다며 이를 규명하지 못한 수사 실무진을 질책했다. 수사 내용에 대한 온갖 의혹을 일순에 뒤집고,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폭탄 발언이었다. 경찰 수사를 책임지는 경찰청장이 지금껏 경찰의 발표 내용을 스스로 반박하는 진풍경을 연출한 셈이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경찰청장과 경찰 수사팀 사이의 ‘갈등’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조 청장이 이토록 민감한 수사 진행 상황에서 배제됐다가 별안간 전면에 나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지금까지 스스로가 이끌었던 경찰의 온갖 판단을 뒤집어, 수사를 둘러싼 모든 책임을 수사 실무진에 떠넘기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게 상식에 부합할 것이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2월16일 김아무개 전 국회의장 비서관을 소환 조사했다. 권력의 끝자락에도 가닿지 못한 경찰 수사의 전말에 대해 이번에는 검찰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뜻이다. 경찰과 권력을 둘러싼 거짓말 릴레이의 끝이 어디에 미칠지 두고 볼 일이다.
출처 : 경찰의 거짓말 릴레이를 좇아가다
[한겨레21 제891호] 특별취재팀 | 2011.12.26
[표지 이야기] 단독범행 몰고가려 청와대 외압, 금전거래 대가성 부인한 경찰…일선 경찰 입 막다 금전거래 폭로되자 수사팀에 책임 돌리는 수뇌부 거짓말의 재구성
경찰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사고를 치고도 거짓말을 늘어놓는 피의자와 마주하는 느낌을. 지금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이 그러할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의 디도스 공격을 둘러싼 금전거래를 은폐한 경찰의 발표 내용은 한마디로 오락가락·뒤죽박죽이다. 경찰 발표 내용의 앞뒤를 맞춰보면, 거짓말의 수준은 몰상식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덕의 언저리를 벗어난다. 경찰 조직 전체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거짓말로 눈가림하려는 경찰 수뇌부의 꼼수 탓일 것이다. 공연히 욕먹고 있을 일선 경찰들만 불쌍하게 됐다. 슬프게도 ‘권력의 지팡이’로 전락해버린 경찰의 거짓말 릴레이를 살펴보자._편집자
“금전거래 없었다?”
경찰은 지난 12월9일 선관위 누리집 공격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금전거래는 없었다고 못박았다. 그날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공아무개씨와 디도스 공격자들에 대한 계좌·신용카드·이메일 및 압수물 분석을 한 결과, 현재까지는 본건과 관련하여 준비자금 또는 대가 제공을 확인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겨레21>이 12월14일 누리집을 통해 “디도스 공격 ‘금전거래’ 있었다”라고 단독 보도하자,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그날 바로 말을 바꾸었다. 경찰은 수사 내용을 그때까지 숨기다가 사실관계가 백일하에 드러나자 마지못해 인정하는 모양새였다. 경찰이 실토한 내용도 기사와 똑같았다. 디도스 공격을 전후해 김아무개(30·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씨와 공아무개(27·최구식 국회의원 비서·구속)씨, 강아무개(25·정보기술(IT)업계 대표·디도스 공격 담당자·구속)씨 사이에 수차례의 돈거래가 있었다는 내용이다(표 참조).
이에 대해 경찰은 계좌추적이 뒤늦게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도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는 말이다.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12월14일 “12일 계좌추적이 끝나기까지 금전거래에 대한 진술만 있을 뿐, 이를 증명할 만한 물증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또한 거짓말이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경찰은 이미 12일 이전에 계좌 기록을 확인했고, 8일 수사 결과 발표 때 계좌 내용을 발표할지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12월8일에도, 12일에도 금전거래를 둘러싼 진실을 말하길 거부했다.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청와대 치안비서관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찰청으로 직접 전화해 “손발 안 맞아 뭐를 할 수가 없다”고 역정을 냈다. 경찰 수사 혹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청와대가 직접 나서 조율을 했다는 의미다.
“청와대 직원은 없었다?”
박희태 국회의장의 비서인 김아무개(30)씨는 디도스 공격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10월25일 저녁 서울시내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경찰의 처음 발표를 보면, 이 자리에는 김씨 외에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비서 김아무개(34)씨와 공성진 전 의원 비서 출신 박아무개(35)씨 2명만 있었다. 술자리는 서울 강남의 단란주점에서 2차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 합류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비서인 공아무개씨는 그날 밤 술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새벽까지 문제의 디도스 공격을 지시했다. 앞뒤 맥락을 보면, 20대인 공아무개씨의 단독 범행으로 이해하기 힘든 정황이 만들어진다. 경찰의 단독범행론에 대해 각종 언론에서 토를 다는 이유이기도 했다.
경찰의 거짓말은 곧 들통이 났다. 지난 12월8일 언론매체들은 문제의 술자리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인물은 청와대 국내의전팀 박아무개 행정관이다. 그는 문제가 된 1차 술자리에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운하 수사기획관은 12월9일 기자 브리핑에서 “참고인에 불과한 사람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보면서 인권을 처음 생각했다. 직접 관련이 없다면 공개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그렇지만 경찰은 1차 술자리에 참석한 정두언 의원 비서와 공성진 전 의원 비서의 신원은 밝혔다. 경찰의 인권 보호는 청와대 인사를 위해서만 적용된 셈이다. 여러 언론매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궁색한 변명”이라고 해석했다.
청와대 인사의 인권이 남다르긴 했나 보다. 박 행정관은 12월7일 경찰 소환에 응했으나 조사를 거부했다. 다른 참고인과 피의자는 경찰청 별관에서 심문을 받았지만 청와대 행정관은 취재진의 눈을 피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사받았다. 경찰이 청와대 주변에 둘러친 ‘방화벽’이 뚫리자,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불길을 잡았다. 청와대는 12월8일 “박 행정관이 공씨와는 무관하게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들과 서울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왜 이렇게 무리수를 뒀을까? 경찰의 다음 거짓말들을 따지다 보면 실마리가 나온다.
▲ 검찰 특별수사팀 수사관 가운데 한 명이 12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뒤 짐을 옮기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
“외압이 없었다?”
이영상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장은 12월12일 경찰 내부망에 올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 후기’에서 “수사 진행 과정에서 어떠한 외압이나 주저함이 없었다는 점은 단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외압도 있었고, 주저함도 있었다. 사정 당국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청와대 치안비서관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찰청으로 직접 전화해 “손발 안 맞아 뭐를 할 수가 없다”고 역정을 냈다. 경찰 수사 혹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조율을 했다는 의미다. 이런 배경 속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은 수사진의 주장을 무리하게 꺾어가며 수사 결과 일부를 은폐했다.
지난 12월8일 수사 결과를 공개하기 직전까지 경찰이 ‘잔머리’를 굴리며 오래 주저한 정황도 드러난다. <헤럴드경제>의 12월15일치 기사를 보면, 12월8일 경찰청장과 수사국장, 수사기획관 등 핵심 멤버는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두 번에 나눠 경찰청장 집무실에서 회의를 했다. 8시부터 8시30분까지는 이들 외에도 사이버센터장·사이버수사기획관 등이 동석했으며, 회의가 끝난 뒤인 10시부터 11시까지는 경찰청장과 수사국장, 수사기획관 등 핵심 멤버만 따로 청장실에 모여 다시 한번 1시간에 걸쳐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12월15일 경찰청을 항의 방문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이 사실을 시인하며 “검경 수사권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중대한 사안을 발표할 때 검경 수사권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는 모양이 이상하다”고 맞받았다.
“대가성 있었다, 없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특히 거짓말이 어설프면 더욱 그렇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12월15일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김아무개(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씨가 디도스 공격 주범인 공아무개씨에게 송금한 1천만원에 대가성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이 하루 만에 자신의 말을 정반대로 뒤집은 꼴이었다. 경찰은 하루 전인 12월14일, 그러니까 <한겨레21>이 ‘돈거래 사실’을 단독 보도한 직후, 디도스 공격을 전후해 해커 강씨에게 전달된 1억원의 돈이 “사건과 무관한 개인적인 거래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가관이다. 경찰은 판단이 바뀐 핵심 이유를 설명하며,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김씨의 말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다고 밝혔다. 불법행위를 전후해 주고받은 자금에 대해서는 대가성을 부정하면서, 거짓말탐지기의 말을 신뢰하는 꼴이었다.
이 말도 다시 반나절 만에 뒤집힌다. 경찰은 그날 오후 2시 기자들을 다시 모아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만들다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오전의 보도자료 내용을 부인했다.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주고받은 돈이) 사인 간의 거래’라는 경찰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며 “거짓말탐지기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는데, 대가성일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면 논란이 있을 것 같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국민을 상대로 경찰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었다. 경찰이 왜 이런 곡예를 부렸을까? 경찰의 다음 주장으로 넘어가보자.
“공씨의 단독 범행이다”
경찰은 12월8일 공씨가 술자리 중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공씨는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돕는 게 최구식 의원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젊은 층이 투표소를 못 찾게 하면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20대 청년은 ‘대형사고’의 단독 기획자가 됐다. 경찰이 설명하는 당시의 정황 가운데 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 공씨가 지난 10월26일 새벽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김(박희태 국회의원 비서)씨에게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로 때릴 수 있다는데 때릴까요?”라고 묻자, 김씨는 “절대 하지 말라”고 말렸다. 김씨는 이때 공씨의 계획을 처음 들었다.
경찰이 밝힌 이런 정황은 공씨의 ‘단독범행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그렇지만 이 정황은 경찰의 ‘소설’일 가능성이 크다. 경찰이 발표한 내용을 복기해보자. 김아무개씨는 디도스 공격이 있기 6일 전인 10월20일 공아무개씨의 계좌로 1천만원을 보냈다. 공씨는 이 돈을 10월31일 강아무개씨에게 넘겼다. 디도스 공격이 성공하고 나서 5일 뒤다. 대가의 정황은 명확해 보인다.
경찰은 ‘어리석게도’ 이를 인정해버렸다. 경찰은 12월15일 “(김씨에게서 강씨에게 흘러간) 1천만원에 대가성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말은, 김씨가 디도스 공격의 내용을 사전에 알았다는 뜻이 된다. 즉, ‘디도스 공격=공씨의 단독 범행’ 공식은 무너지게 된다. 그렇다면 앞에서 경찰이 그려준 정황은 거짓으로 판명나게 된다. 경찰이 12월15일 반나절 만에 서둘러 말을 뒤집고, ‘돈거래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강변한 이유다. 경찰의 ‘거짓말 곡예’는 자신의 통제 수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경찰이 ‘실수’로 인정했듯이, 김씨가 디도스 공격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가정하면 상황은 묘해진다. 김씨는 디도스 공격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 청와대 행정관과 만났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우연이 겹친다. 박아무개 청와대 행정관은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2010년 이후 총리실 정보관리비서관실 상황행정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정보관리비서관실은 온라인 등의 여론 동향을 점검하는 곳으로, 박 행정관은 정부·여당에서 온라인 시스템 등의 문제를 다뤄온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10월25일의 술자리에 박 행정관이 참여한 사실을 숨겨오다가 뒤늦게 밝힌 점도 사건의 정황을 둘러싼 의혹을 키우는 대목이다.
“몰랐다”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은 12월2일 트위터를 통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황당한 심정”이라며 “보좌진과 주변을 상대로 확인해봤지만 제 운전기사가 그런 일에 연루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글을 올렸다. 그리고 다음 말이 묘하다. 묘하다 못해 해괴하다. 그는 “만약 제가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즉각 의원직을 사퇴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언뜻 책임을 지겠다는 말처럼 보이지만, 두 번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이런 대형사고에 연루됐다면 그는 이미 국회의원 자격에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된다. 그의 말은 비유하자면, ‘내가 100만원을 훔쳤다면, 책임지고 10만원을 돌려주겠다’는 격이다. 법 정의에 민감한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왔다고 보기 힘든 말이다.
최 의원을 둘러싼 정황도 아리송하다. 경찰이 그린 시나리오를 따라가도, 김씨 등은 공씨가 주도한 디도스 공격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공격을 주도한 공씨에게 “한나라당에 엄청난 악재가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최 의원에게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김씨 역시 최 의원의 비서관 출신이다. 또 디도스 공격 과정에 참여한 혐의로 구속된 차아무개(27·IT업자)씨는 최 의원이 지역구에 내려가면 차를 모는 등 비서 구실을 했던 인물이다. 디도스 공격이 사실상 최 의원의 주변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그림이 그려진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핵심 인사는 12월16일 묘한 말을 했다. “최구식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 전날 몇몇 의원들과 밥을 먹으면서 ‘비장의 카드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최 의원의 개입을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개입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힘든 정황도 나온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 등의 말만 믿고 최 의원을 소환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를 둘러싼 의혹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검찰이 최 의원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 12월15일이었다.
▲ 서울 구로구에 있는 ㅅ정보통신 업체의 입구 모습.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비서인 공아무개(28)씨의 지시에 따라 선관위 누리집에 디도스 공격을 감행한 강아무개(25)씨가 이 업체를 사실상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월15일 이 업체를 찾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
여전히 선관위 누리집 공격을 둘러싼 진실은 안갯속에 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밝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잇따른 거짓말로 상황을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12월16일 언론 브리핑을 자청해 경찰청 수사팀의 결론을 뒤집었다. 그는 디도스 공격은 우발적 단독 범행이 아닌 것으로 보일뿐더러, 배후의 돈 거래도 대가성으로 보인다며 이를 규명하지 못한 수사 실무진을 질책했다. 수사 내용에 대한 온갖 의혹을 일순에 뒤집고,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폭탄 발언이었다. 경찰 수사를 책임지는 경찰청장이 지금껏 경찰의 발표 내용을 스스로 반박하는 진풍경을 연출한 셈이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경찰청장과 경찰 수사팀 사이의 ‘갈등’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조 청장이 이토록 민감한 수사 진행 상황에서 배제됐다가 별안간 전면에 나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지금까지 스스로가 이끌었던 경찰의 온갖 판단을 뒤집어, 수사를 둘러싼 모든 책임을 수사 실무진에 떠넘기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게 상식에 부합할 것이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2월16일 김아무개 전 국회의장 비서관을 소환 조사했다. 권력의 끝자락에도 가닿지 못한 경찰 수사의 전말에 대해 이번에는 검찰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뜻이다. 경찰과 권력을 둘러싼 거짓말 릴레이의 끝이 어디에 미칠지 두고 볼 일이다.
출처 : 경찰의 거짓말 릴레이를 좇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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