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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여전히 분단의식에 사로잡힌 이들 안타까워… 민주화 멀었다”

“여전히 분단의식에 사로잡힌 이들 안타까워… 민주화 멀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 “이석기 전 의원, 정치적 차원에서 석방해야”
[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 발행 : 2019-12-22 17:35:54 | 수정 : 2019-12-22 19:47:08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 5층 조사실 복도에 섰다. 예전 이곳은 민주인사들을 조사하고 고문하던 곳으로 지선 스님도 1987년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김철수 기자

서늘한 기운이 온몸에 느껴진다. 좁은 복도 양쪽으로 작은 문들이 즐비하다. 발걸음 소리가 천정과 벽면을 타고 흐르며 묘한 긴장감이 퍼진다. 남영동 대공분실. 지난 1987년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민주인사가 고문을 당한 곳이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물은 피의자가 이동하는 계단을 나선형 철제 계단으로 만들어 방향감각을 잃게 했다. 조사실 사이의 문들이 서로 마주 보지 않게 해 조사받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고문받은 이의 비명과 조사관의 호통 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진다. 사무실마다 욕조가 갖춰져 있는 등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하고, 조사받는 이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다. 이곳은 지난해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위탁관리하며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수많은 민주인사가 이곳에서 조사와 고문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엔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도 있다. 1980년 ‘5.18광주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지선스님은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를 맡았고, 1987년 6월 10일 서울 정동 성공회성당의 종탑에 직접 올라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후보 지명 무효 선언문을 낭독함으로써 항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 일로 지선 스님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고, 내란음모죄가 적용돼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난 19일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을 만났다.

지선스님은 인터뷰 내내 ‘낡은 분단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가 바뀌고 있고, 이미 역사적 평가도 끝났는데 극우세력이 광주항쟁 등 민주화 역사를 뒤집으려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이석기 전 의원 석방에 대해 지선 스님은 “나도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면서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석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선 스님은 아울러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지 40년이 되던 지난 12월 12일 기념 오찬을 갖는 등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지선 스님은 인터뷰를 마친 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있었던 전두환과의 악연을 소개했다. 지선 스님은 1988년 12월 전두환이 부인과 함께 백담사에 칩거할 당시에 스님과 승가대 학생들로 ‘민족자주통일불교협의회 체포결사대’를 꾸려 전세버스를 타고 전두환 이순자 구속 투쟁을 위해 백담사로 떠난 바 있다. 당시 공권력은 경찰과 백골단 등을 총동원해 이들을 잔혹한 폭력으로 제지했고, 여러 날을 투쟁하며 당시 대장을 맡아 체포결사대를 이끌던 지선 스님도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머리와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런 스님들의 항의에도 전두환은 부인과 함께 백담사에서 13개월을 지냈다. 더구나 백담사는 이후 30년 넘게 전두환이 은거했던 화엄실에 ‘제12대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달아 보존했다. 은거 당시 전두환 부부가 쓴 의류와 목욕용품, 거울, 이불. 화장대, 촛대, 세숫대야 등도 함께 전시했다. 백담사는 전두환의 최근 행보가 부담스러웠던 듯 최근 인제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보전해오던 전두환의 물건을 백담사에서 치워버렸다고 한다. 지선 스님은 이런 백담사의 과거 행보를 비판하면서 일갈했다.

다음은 지선스님과 일문일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 ⓒ김철수 기자

-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취임한 지 2년이 넘었다. 이제 임기를 6개월여 앞두고 있다.

처음에 들어올 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같다.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임기가 6개월 남았으니깐 저보다 훌륭한, 경륜이 있는 분이 오셔서 이사장을 맡아주셨으면 하는 비림이다. 민주인권기념관을 짓는 것도 너무 늦어졌다. 훌륭한 분이 오셔서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 지난 9월엔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아직도 부마항쟁과 관련해 명예회복과 진상규명 등 가야 할 길이 멀다.

외형적으론 민주화가 보편화 되고, 이제는 질적인 민주시민사회로 가고 있다. 그런 만큼 길은 멀어도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 여야가 합의해서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한다면 잘될 것이라고 본다. 해당 지역의 의원들도 그런 당부를 하셔서, 지역의 의원들이 힘을 보태 달라고 이야기를 드렸다.


“이런 행태는 우리 민주화와 통일 인권에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동시에 세계 인류에게도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다.
이 시간에도 광화문 광장과 국회를 점거해
반공 궐기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뭐라 말할지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다.”

- 최근 극우적 주장을 하는 이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등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엔 자유한국당에서조차 이런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었다.

참 말문이 막힌다. 어처구니없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생각했다. 이제는 1970~80년대의 분단 이데올로기, 반공 멸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마음이 커져야 한다. 세계가 발전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낡은 이데올로기를 붙들고 정치를 하려는 것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특히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의원조차 의식이 변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난다. 이건 국력 낭비다, 역사가 진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고, 국민의 정신을 퇴행시키는 것이다. 분단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역사적으로 평가가 끝났다. 제주 4.3, 부마항쟁, 광주 5.18, 6월항쟁 등 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문제를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선전 선동하고, 과거처럼 멸공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공격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우리 민주화와 통일 인권에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동시에 세계 인류에게도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다. 이 시간에도 광화문 광장과 국회를 점거해 반공 궐기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뭐라 말할지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다.


“전두환 개인도 한심스럽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치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처럼 느껴진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러면 되겠나.
그런 분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는 것도 문제다.”

- 이런 배경엔 여전히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재판조차 거부하고 있는 전두환 씨의 행동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2,12 군사반란 40년이던 지난 12일엔 호화 식사 자리까지 가져서 비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정이 많아서 그렇다. 진정으로 민주화를 시키려는 열망도 있지만, 인정도 많다. 그들이 저지른 죄에 버금가는 처벌을 내렸다면 저리지 못했을 것이다. 전두환 씨가 저렇게 행동하고 발언하는 걸 활용하는 세력이 있고, 저 사람들 뒤에도 믿는 힘이 있기에 저런 일을 저지른다. 분단국가이기에 생기는 일이지만, 전두환 개인도 한심스럽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치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처럼 느껴진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러면 되겠나. 그런 분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는 것도 문제다. 12.12를 같이 일으켰고, 대통령도 같이 지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아들을 보내서 망월동 묘역을 두 번이나 참배하는 등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전두환 씨는 어떻게 된 것인지, 적반하장으로 성을 내고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 ⓒ김철수 기자

- ‘민주’와 ‘인권’은 뗄 수 없는 가치다.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이곳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아직 ‘인권’이 무시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일도 많다.

인문학을 바탕을 사회과학이 형성된 교육을 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민주화가 총체적이라면, 인권은 그 가운데 구체적인 실천 행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권과 민주화는 하나이자 둘이고, 둘이자 하나이다. 인권이 완전히 보장된 사회라면 민주화와 인권이 다르다는 생각은 안 할 것이다.

- ‘인권’과 관련해서도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분단국가에서 교육이 잘못된 부분이 많다.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과 관련한 평등성이 교육에서 다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제 경제적으로 많이 부유해졌고, 성장이 되었고, 사상적으로도 자유로워진 세상에서 아직도 인권과 관련해서 난민 등 이런 것이 논란이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봤을 때 뒤늦은 감이 있다.


“역사가 더디 가더라도 진보적으로 가고 있고,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촛불항쟁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 움직임이다.”

- 촛불항쟁을 통해 민주화운동이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살아 숨 쉬는 힘임을 확인했다.

촛불항쟁에 대해 외국에서도 좋게 평가한다. 저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촛불항쟁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세계 모순이 집약된 한반도에서 민주화를 꿈꾸고 실천 노력했던 항쟁에서 터득한 것이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난 결과다. 과거와 현재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의 거울이 현재이고, 현재가 또 미래의 갈 길을 비춰준다. 과거, 현재, 미래 이 삼세는 늘 함께 살아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역사가 더디 가더라도 진보적으로 가고 있고,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촛불항쟁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 움직임이다.

- 한국사회에선 종북몰이가 여전하다. 수구세력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무조건 종북으로 몰고 있다. 이사장님께서도 과거 이런 공격을 당하셨는데

우리밖에 없는 분단국가의 슬픈 현상이다. 이념은 인간을 해방하는 면이 있지만,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면도 있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기울면 불행해진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는 것은 안 된다. 우리에겐 그런 이데올로기에 빠지고, 집착해서 불행했던 과거가 있다. 인권과 생명을 유린한 비극이 많았다. 그전엔 빨갱이라고 했고,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이제 새로운 말이 나와 종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수구는 보수가 아니다. ‘수구꼴통’이 있을 뿐 진정한 보수는 없다. 열려 있지 않은 보수는 수구일 수밖에 없다.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이들이 수구다. 그분들은 역사를 후퇴시킨다.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세력을 매도한다. 이건 망국적인 사고방식이다. 그걸 버려야 하는데, 빨리 버리면 버릴수록 좋은데 수구는 그걸 못 버리고 있다.


“나도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석방해야 한다.”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석기 전 의원 등 양심수 석방과 관련해선 종교계 등의 사면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저하는 상황이다.

나도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9년형을 받고, 7년이나 갇혀 있었다. 이제 2년이 남았다. 7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다. 오늘날처럼 스피드한 시대에 비춰보면 긴 시간이다. 이 전 의원도 그곳에 계시면서 많은 사색을 했다고 본다. 당신의 잘한 점 못한 점이 다 정리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쯤 나오면 훨씬 더 성숙한, 숙성한 사상들이 정리됐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정치에도 그런 생각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석방해야 한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시면서, 완전한 통일 없이는 민주화가 없다고 강조하셨다. 분단 현실이 여전히 우리의 삶과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민주, 민중, 통일 이 세 가지가 우리 민족의 화두다. 더 나가서 세계적인 인류의 화두도 된다. 그리고, 진보적 입장의 사람들에겐 자주, 민주, 인권, 평화통일이 영원한 화두다. 통일이 없으면 완전한 민주화도 없다. 통일이 됐다는 말은 완전히 민주화가 됐다는 말이고, 완전한 민주화가 됐다는 말은 통일이 됐다는 말이다. 분단 현실에서 모든 건 반쪽이다. 민주화도 반쪽, 철학도 반쪽, 사상도 반쪽, 종교도 반쪽, 문화도, 예술도 다 반쪽이다. 예전 활동할 때 민족 모순이 먼저냐. 민중 모순이 먼저냐, 무엇이 주요 모순이고, 부차 모순인지를 두고 논쟁했다. 하지만 이 모순이 존재하는 한은 그것은 겹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가 별로 진보하지 못했다. 두 모순이 해결돼야 민주주의도 희망이 있다. 분단 현실을 놓아두고, 해묵은 분단 이데올로기에 고착된 이들이 있는 한 민주주의도 안된다.

▲ 박종철 열사가 조사를 받았던 509호 조사실엔 당시 모습이 보존돼 있다. 509호 조사실에 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 ⓒ김철수 기자

아울러 남북 모두, 분단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통엔 강대국의 책임도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이런 4대 강국들이 통일을 진실로 원하고 바란다면, 우리는 훨씬 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겉으론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한국의 분단 모순 해결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투거나 게임을 할 때 파이팅(Fighting)이라고 하는데,
화이통(和以通)했으면 한다. 화합해서 대화해야 통한다.
모든 것 갖추고 있는 큰 나라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작은 나라는 참고 견디기 어려운데 쉽게 대화문이 열리겠나.”

- 북미 대화와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화해의 분위기를 이어가던 남북 관계가 최근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 어떤 지혜가 필요하다고 보시나?

우리 같은 이들의 상식으로 볼 때는 상호불신 관계가 문제다. 북미간에 불신이 크고, 서로 불안해서 진척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깐 큰 나라는 큰 나라답게 아량을 보이고, 작은 나라는 작은 나라답게 협조해서 잘 풀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걸 보니 안타깝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강대국 열강들은 다 핵무장을 하면서,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 핵개발을 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가를 냉혹하게 지배하려고만 해서는 되겠는가. 자기는 선진 민주국가이고, 생명 존중, 인간 평등을 구가한다는 나라들이 왜 작은 나라에서 핵무기 만들었다고 트집 잡아서 없애지 않으면 가만 안 둔다는 으름장을 놓나. 그러니 작은 나라도 해볼 테면 해봐라, 죽기살기로 나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보일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는 예전 같은 전쟁 방식으론 안 된다. 그렇게 해선 세계 평화, 인류의 복지 국가 행복한 나라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니깐, 큰 나라에서 선물을 크게 주어서, 먼저 작은 나라의 불안감과 불신감을 씻어줘야 한다.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먼저 실천하면 제제 푼다고만 하니까, 작은 나라는 상대가 몇 배나 부강한 나란데, 한방이면 사라지는데 쉽게 포기할 수 있겠나. 지혜는 나눠주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투거나 게임을 할 때 파이팅(Fighting)이라고 하는데, 화이통(和以通)했으면 한다. 화합해서 대화해야 통한다. 모든 것 갖추고 있는 큰 나라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작은 나라는 참고 견디기 어려운데 쉽게 대화문이 열리겠나. 불신을 없애고, 불안감 없애야 한다.

아울러 우리 국민도 이제는 폐기된, 구태의연한 안보의식, 그런 특정 이데올로기의 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 시민이 의식을 바꿔야 한다. 아직도 그런 망국적 개념과 인식에 머문 단체들은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걸 바꾸라고 강조하는 것은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민주 복지국가로 가려면 바꿔야 한다. 특히 이제 종교인들이 나서야 한다.


“무한하게 부정하고, 긍정해가면서, 더 세련되고,
민주화의 선순환을 거쳐서 행복한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뒤돌아보면 되는 것 적었고, 안되는 건 많아서
제 고향말로 “민주화 어디 만큼 왔냐?”라고
묻는다면 “당당 멀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 내년은 4.19혁명 60주년, 전태일 열사 50주기, 광주항쟁 40주기를 맞이한다.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큰 분기점이 된 내년을 맞이하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해수가 많이 지났다. 그런 아픔을 해소 시킬 엄청난 세월이다. 빨리 변화시켰으면 좋은데, 이 속절없이 시간만 쌓이는 민족적 사건 앞에서 부끄럽다. 변하지 않고 늘 푸르다는 허공도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시사철 수많은 생명 살게 하고, 역사를 많이 바꿔가도록 한다. 허공도 이렇게 늦게, 더디 가진 않는다. 민주화운동의 분기점을 낳은 사건들이 전부 반세기가 다 지나고 있는데, 본질적 면에서 변하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런 60, 50, 40주기마다 참 안타깝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고, 인생을 살날이 많지 않은데, 세계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과거의 분열의식을 가지고, 지금도 정치인은 거기 포로가 되고, 수구세력이 지지 추종한다. 이러니 이제 우리보다 못한 나라가 우리를 언제 앞지를지 모른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 ⓒ김철수 기자
중요한 사건들의 분기점을 맞으며 새롭게 단 짧은 시간일지라도 새롭게 의미를 새기면서 맞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돌아보며 내 인식은 진보적인가, 퇴행적인가 반성해보는 시민이 되었으면 한다. 반성과 참회의 의식을 갖지 않는 시민이라면 나라의 장래가 없다. 어떤 집단과 개인도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고, 자기 발전의 구상을 창조해내야 하는데 여전히 분단 이데올로기, 후진적 역사의식에 머무는 이들을 보니 안타깝다.

- 임기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계획은?

역사에 풀지 못한 여러 사건, 풀리지 않은 사건들을 겸허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다. 민주화가 이제는 어떤 이들에겐 먼 과거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렇게 싫어하는 단어가 됐다. 살기에 바쁜 청소년들에게 민주화운동 관련 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하면 달갑게 생각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민주시민 교육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인문학이 바탕이 된 사회과학을 철저히 가르쳐 선진 민주국가로 가야 한다.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시기를 낡은 이데올로기, 편가르기, 낡은 정치에 갇혀 놓치고 있다. 경제는 조금 잘살게 됐지만, 정신적인 면은 후진적 면을 면치 못했다.

얼마 임기가 안 남았는데, 민주인권기념관을 빨리 지을 수 있도록 힘쓸 계획이다. 설계를 마쳐서 내년엔 짓기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서울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도 세워져야 한다. 지자체가 땅과 돈을 내고, 부족한 부분은 정부가 지원해서 꼭 세워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시민교육도 다양하게 펼칠 수 있게 됐다. 민주시민교육센터, 민주화인권기념관 두 중점 사업에 힘을 쏟을 것이다.

이사장을 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세계 인류와 공존 공생하려면 민주주의가 폭넓게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여러 선진국도 지금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역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화만 되면 큰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추구할 이상이다. 무한하게 부정하고, 긍정해가면서, 더 세련되고, 민주화의 선순환을 거쳐서 행복한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그렇게 완성돼도 그것이 끝이 아닌 만큼 모든 시민이 무한히 부정하고, 긍정하면서 가꿔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일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 뒤돌아보면 되는 것 적었고, 안되는 건 많아서 제 고향말로 “민주화 어디 만큼 왔냐?”라고 묻는다면 “당당 멀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저 자신도 많이 반성했다. 제게 있어 비민주적이던 부분을 반성하고, 비민주적인 습관을 없애고, 민주시민이 되는 경험을 했다. 모든 것이 우리 성숙한 대한민국 시민 덕분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대동 세상, 제일 깊고 높고 성숙한 인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종교보다 거룩한 것이다.


출처  [인터뷰]지선 스님 “여전히 분단의식에 사로잡힌 이들 안타까워… 민주화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