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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을 걸어야 하는 마약수사

교도소 담장을 걸어야 하는 마약수사
마약사범의 제보 없이는 적발 불가능… 정보 받고 형량 줄여주기
[경향신문] 류인하 기자 | 입력 : 2020.01.11 17:09


▲ 2019년 1월 29일 인천지방검찰청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말레이시아 현지 마약 조직원들로부터 압수한 필로폰을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마약범죄는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없는’ 범죄로 분류된다. 마약투입 이후 2차 가해가 벌어지지 않는 한 마약범죄는 마약사범들끼리 마약을 제조하고, 유통하고, 투약하는 일련의 과정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사가 어렵다.

수사는 통상 ‘피해자’의 신고로 시작된다. 피해자의 제보나 각종 고소·고발 등을 통해 범죄의 실마리를 얻는 것이 수사의 출발이다. 마약사건은 그러나 마약사범 모두가 공범이다. 딱히 누가 피해자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마약수사는 모든 범죄 가운데 유일하게 검찰의 ‘플리바게닝(사전형량조정제도)’을 넓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사다. 우리나라에는 플리바게닝 제도가 없다. 그럼에도 마약범죄는 투약을 함께한 사람들을 수사기관에 밀고하거나, 마약사범들의 은어로 ‘상선(공급책)’ 또는 ‘하선(피제공자)’을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형량 조절이 가능한 유일한 범죄로 통한다.

때문에 마약사범 재판에서 반성문 다음으로 많이 제출되는 서류가 ‘공적조서’라는 말도 나온다. 공적조서는 전체 범죄 가운데 마약범죄에서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문서다. 경찰이 작성한 공적조서와 검사가 작성한 공적조서 두 종류가 있지만 영향력은 당연히 검사가 작성한 쪽이 더 크다. 구형량까지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적조서는 마약사범의 자백 및 공범을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법정에서의 영향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마약범죄에만 존재하는 ‘공적조서’

“공적조서에는 보통 ‘이 피고인은 우리 마약수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간혹 공적조서가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자기도 처벌받으면서 공범도 찔렀으면 (제보에) 진정성이 있지만 자기는 해당 건으로는 기소도 되지 않았으면서 공적조서가 들어오면 ‘뭔가 검찰과 딜(거래)이 있었구나’ 하는 건 보인다. 다만 그런 세세한 것까지 법정에서 검찰에 묻지는 않는다. ‘다른 수사 중인 사건이 있어서 합쳐서 기소하려 한다’든지, ‘현저한 정상이 있어서 그러하다’ 등의 이유를 댈 것을 뻔히 아니까. 너무 거짓말이다 싶은 건 검찰의 구형과 다르게 판결하면 그만이다. 다만 자기 범죄의 선처를 받기 위해 거래선을 불어서 검사가 공적조서를 써줬다고 한다면 양형에 당연히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형사전담 재판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문제는 이 공적조서가 경찰 또는 검찰 단계에서 ‘작업’으로 조작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사기관의 범죄조작이 실제로도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작업’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크게는 ▲다른 마약사범의 제보 정보를 구입해 자신의 공적으로 올리는 행태 ▲마약사범이 수사기관과 공조해 또 다른 마약사범을 만들어 수사기관의 실적도 쌓고, 이를 마약사범의 공적조서로도 올리는 행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필로폰 마약전과 10범 ㄱ씨의 말이다.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제조업체 아들이 과거 마약으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는데 또 투약해서 구속이 됐었다. 그러자 자기가 알고 지내던 또 다른 마약사범에게 ‘작업’을 좀 해달라며 3000만원을 줬다. 어리숙한 사람을 골라 외국에 나가서 마약을 갖고 들어오라고 시킨 뒤 수사기관에 정보를 흘려 검거하게 한 뒤 본인도 공적을 쌓는 식의 작업을 한 거다. 그 작업이 좀 잘 됐다. 이쪽 말로 ‘야당(마약사범에게 대가를 받고 마약사건 정보를 넘겨 제보하도록 하거나, 직접 제보한 뒤 수사기관에 부탁해 재판 중인 마약사범에게 공적을 돌리는 사람들)’ 일을 잘 본 거다. 그래서 검사가 그 제조업체 아들에게 벌금 2000만원을 구형했다. 그러자 판사가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해버렸다. 검사가 구형한 대로 나올 줄 알았는데 실형이 나와버렸으니 어떻게 했겠나. 그 사람이 ‘야당’한 애랑 수사관이랑 전부 다 엮어서 변호사법 위반으로 걸어버렸다. 내 돈 내놔라, 이 말이지. 그래서 3000만원을 토해내는 웃기지도 않는 일도 있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마약수사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함정수사’다. 대법원은 2004년 5월 ‘범의(犯意)’를 유발하는 형태의 함정수사, 즉 마약을 투약하거나 유통할 생각이 없었는데 부추겨서 하게 만든 뒤 검거하는 형태의 함정수사는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함정수사는 여전히 마약수사에서 불가피하게 활용된다.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마약판매자 또는 매수자를 찾아 실제 마약 거래가 이뤄지게 한 뒤 현장에서 검거하는 형태의 ‘기회제공형’ 수사는 불법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즉 ‘범의유발형’ 수사는 함정수사이지만 ‘기회제공형’ 수사는 함정수사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는 게 현재 법원의 태도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원칙에 불과할 뿐 개개 사건에서 이를 명확하게 구분짓기는 쉽지 않다. 현장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범의유발형’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기회제공형’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경찰관이 익명 채팅 어플에서 성매매 여성인 것처럼 꾸며 남성에게 마약을 구입해 오도록 한 뒤 검거한 사건에서 1심과 2심 법원은 각각 다른 판단을 내려 언론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마약을 사오도록 부추긴 행위를 놓고 ‘범의유발형’으로 볼 것인지, ‘기회제공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다른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1심은 유죄판결(기회제공형으로 판단)을 내린 반면 2심은 공소기각 판결(범의유발형으로 판단)을 했다.

전·현직 마약수사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마약수사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일’이다. 수사관이 직접 투약을 해서 ‘마약공동체(?)’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결국은 정보원(마약사범)에 의존하거나 SNS를 뒤져 잠복해 잡는 방식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 또 정보를 받으려고 마약사범과 가깝게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자신도 모르게 넘나들게 된다. 게다가 경찰의 정보원(마약사범)은 마약사범들에게도 (경찰 정보를 주는) 정보원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그래서 이제 정보원을 이용한 마약수사는 되도록 지양하도록 일선 청에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경찰서는 강력계 형사들에게 굳이 마약수사를 찾아서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어렵게 잡아봤자 큰 성과도 없고, 되레 마약사범들로부터 역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암수범죄처럼 여전히 존재하는 마약범죄를 가만히 놔두기도 쉽지 않다.

합법적인 마약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은 어쩌면 지금도 마약사범 검거를 위해 잠복 중인 검·경 수사관들에게는 정답이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출처  교도소 담장을 걸어야 하는 마약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