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다음 국회서 사라져야 할 얼굴들

다음 국회서 사라져야 할 얼굴들
[민중의소리] 남소연 기자 | 발행 : 2020-01-23 16:34:03 | 수정 : 2020-01-23 16:34:03


▲ 2016년 9월 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국회의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국회의사당 본관 4층에는 20대 국회의원들의 단체 사진이 한 장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의원들의 형체만 선으로 따서 그려놓고, 의원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국회에 출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는 의원들을 조금이나마 빨리 익혀보려고 사진 속 의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하나하나 맞춰보는,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어이없던 취미도 가지고 있었다.

20대 국회가 끝을 향해 가는 지금, 다시 그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 속 환한 웃음을 띤 의원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공천 칼바람’을 앞둔 이들의 처지에 애잔한 감정이 들기는커녕 인상이 찌푸려지기만 한다.

A의원은 잦은 막말로 구설에 올랐다. ‘막말 논란’으로 시작된 기사 제목은 이제는 ‘또’라는 수식어까지 덧붙여졌다. 실언이라는 표현은 너무 점잖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단순한 말실수에서 그치는 경우보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꼬는 방식으로 공격하면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경우는 성난 여론에 떠밀려 반성문을 쓰더라도 ‘자기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변명한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 속아주는 척이라도 할 수 있다. 습관성 막말은 그 의원의 수준이자 인성일 뿐이다.

B의원은 소수자의 인권을 당당하게 짓밟으며 표 장사를 했다. ‘내게도 누군가를 반대할 권리가 있지 않느냐’는 명언(?)도 덤으로 남겼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아이 잃은 부모가 다른 아이들의 죽음을 막기 위한 법안을 논의만이라도 해달라며 무릎꿇게 만든 C의원도 있다. 지나가는 의원들을 붙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법안 처리를 호소하는 이들을 매몰차게 뿌리친 D의원은 또 어떤가. 겉으로는 개혁적인 정책들을 내놓지만, 사석에서 만나면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맛있지’라며 시대에 뒤떨어진 발언을 하고 다니는 ‘낡은’ 정치인 E의원도 빼놓을 수 없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A~E 같은 의원들은 이번 국회에 한두 명만 있는 게 아니다.

진영 상관없이, 여야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이 더 암울하게 만든다. 이쯤 되면 20대 국회는 지뢰밭투성이라는 평가도 부족한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기사를 쓰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이번 국회는 혐오와 불신이라는 표현 말고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이를 반면교사 삼는다면 다음 국회에서 국민과 동떨어진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총선은 이런 정치인들을 심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까지 존중하고 반영하는 새로운 국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다행인 건 이번 총선은 바뀐 선거제도로 치러진다는 점이다. 정당득표율과 의석수가 연동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국민의 의사는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국회에 반영될 수 있게 됐다. 토착왜구당을 뺀 여야가 합의하는 과정에서 선거제도가 누더기가 되긴 했지만 한 걸음의 진전도 진전이라면 진전일 것이다.

유권자들 룰이 바뀐 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투표할 것인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내 표가 사표가 될까 걱정하며 전략적인 투표를 해왔던 이들 중 일부는 내가 밀어주고 싶은 정당을 찍겠다고 결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제도의 변화 외에 유권자들의 인식도 많이 변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서 보다 다양한 후보자들이 다양한 공약을 들고 국회 입성을 노리고 있고, 각 정당도 이전과는 다른 선거전략을 고심하는 중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총선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올해는 변화의 원년이 될 수 있다. 총선을 앞둔 여의도는 피바람이 불어닥친다며 매일매일이 요란스럽지만 국회에서 사라져야 할 얼굴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이 문제의 의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넬 때가 왔다. 4년간 이들의 ‘막장 활약상’을 보며 온몸으로 부끄러움을 감당해야 했던 우리들에게도 잘 참아왔다고 위로를 건넨다.


출처  [기자수첩] 다음 국회서 사라져야 할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