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문제 보도’ 5가지 유형별로 정리해 봤습니다
[기자수첩] ‘이재용이, 이재용에 의한’ 결단과 리더십 강조한 언론들
[고발뉴스닷컴]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 승인 : 2020.05.08 09:34:11 | 수정 : 2020.05.08 10:32:56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과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특정 언론을 지칭할 것 없이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은데 몇 가지 유형별로 분류를 해서 ‘키워드’로 정리해 봤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이재용의 ‘위기극복 리더십’을 강조하는 언론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이 점을 가장 강조했습니다.
한국경제는 지난 7일 <이재용, 메르스 사과·사재 출연…위기 때마다 ‘오너 책임경영’>(2면)에서 이재용은 △메르스 때도 국민 앞에 머리 숙였고 △삼성서울병원의 혁신 방안도 함께 제시했으며 △2015년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 공모 때는 사재까지 출연해 위기를 극복한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호평했습니다.
한국경제는 해당 기사에서 한 경제계 관계자 멘트를 인용했는데 “예상보다 수위가 높네요. 정말 다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라는 칭찬이었습니다. 제가 봤을 땐 말로 선언한 것 외에 별로 내려놓은 게 없는 것 같은데 한국경제신문은 ‘극찬’이더군요.
한국경제신문은 전경련이 대주주로 있는 신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기사에 인용된 ‘경제계 관계자’가 누군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이외에도 한국경제가 주목한 키워드는 ‘고비마다 직접 나서는 이재용’, ‘과거와 단절 선언한 이재용’, ‘변명 없는 솔직한 사과’ 등이었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이재용의 결단과 의지’를 강조하는 언론입니다. 사실 이런 유형은 한겨레, 경향신문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로 ‘4세 경영 포기’라는 키워드와 함께 ‘승계논란 종식 의지’를 부각시키는 방식입니다.
특히 많은 언론이 측근과 주변에서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재용이 오랜 고민과 결심 끝에 ‘경영권 승계’를 포기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일부 신문 기사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재용, 내부 만류에도 ‘자녀승계 불가’ 결단> (7일 동아일보)
<이재용 ‘4세경영 포기’ 전격 선언…승계논란 종식 의지> (7일 매일경제)
<이재용, 참모들 반대에도 준법감시위 4대 요구 다 받아들였다> (7일 조선일보)
<사내 논란 뚫고 사과 회견… 세 번 고개 숙인 이재용> (7일 한국일보)
특히 조선일보는 이번 이재용의 사과문을 “이재용의 ‘새로운 삼성’ 선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세 번째 유형은 ‘이재용의 노동권 보장’을 강조하는 언론입니다. 상당수 언론이 이재용의 사과를 계기로 ‘삼성이 80년 이어온 ‘무노조 경영’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이재용이 “더이상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방점을 찍고 높은 평가를 한 것이죠.
그런데 노조 설립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 권리입니다. 80년 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온 삼성이 ‘비상식적·반헌법적인’ 것이지 ‘이재용의 시혜나 성과’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3개의 소규모 노조만 있었던 삼성전자에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생겼고, 이후 삼성화재, 삼성디스플레이에도 잇따라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무슨 얘기냐? 이재용 사과와 상관없이 삼성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상당수 언론은 마치 ‘이재용의 결단으로 삼성에서 노동권이 보장된 것처럼’ 썼습니다. 노동 문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인식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 유형은 ‘노조 혐오’입니다. 여기엔 조선일보가 ‘선봉’에 섰습니다. 조선일보는 어제(7일) 기사에서 재계 반응을 소개하면서 “삼성 모든 계열사에 노조가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삼성마저 한국의 후진적인 노조 문화에 휘둘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어제(7일) 사설에선 “합리적 대화보다 투쟁과 폭력이 앞서는 한국적 노동 현실에서 만에 하나 삼성마저 노조로 인해 세계적 경쟁력을 잃게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라고도 했습니다.
‘무노조 경영에 이재용이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을 부각시킨 다른 언론과 달리 조선일보는 ‘노조 때문에 삼성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겁니다.
아니 노조가 있으면 회사가 망하나요? 그런 식이면 한국에서 이미 망했어야 할 대기업이 여러 곳입니다. 조선일보에도 노조가 있지 않나요? 조선일보 논리대로라면 조선일보도 경쟁력을 상실한 언론사가 됐어야 합니다. 노조에 대한 조선일보의 시각이 어떤지가 ‘이재용 사과 기사’를 계기로 또 한번 확인이 된 셈입니다.
마지막 유형은 ‘비나이다 비나이다’입니다. 이번 사과문이 파기환송심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사실 많은 분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죠. 그런데 일부 언론이 법조계 반응이라며 마치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선 재판부가 요구한 준법감시위의 사과 권고를 삼성이 받아들인 만큼 이날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경제), “삼성과 이 부회장의 조치가 양형에 반영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선일보), “재판부가 제시한 조건을 외형상으로나마 갖춤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양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일보) 등이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이번 사과문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법조인들’도 분명 있을 텐데 이들은 ‘이재용 양형 전망’ 기사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재용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행위에 대해 사과했고, 기성 언론 상당수가 이 부분을 주목했지만 정작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삼성 내부’입니다.
오늘(8일) 한겨레가 4면 <이재용 사과했지만…회계사기 삼바 임원들은 ‘무풍지대’>에서 지적했듯이 “승계 작업의 일환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의혹에 연루된 핵심 임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핵심 피의자인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3월 20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 됐고, “김동중 삼성바이오 경영자원혁신센터장(사내이사)과 심모 경영혁신팀장(상무)도 건재”한 상황입니다.
사과문과 별개로 이재용이 과거 승계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이 있었다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는 게 온당한 태도죠. 하지만 백 번을 양보해서 최소한 이재용의 어제(7일) 사과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들’에 대한 문책성 인사 정도는 단행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조치 없이 ‘말뿐인 사과’만으로, 기성 언론을 설득(?)할 수는 있겠지만 국민들을 설득할 순 없습니다. ‘이재용의, 이재용에 의한’ 결단과 리더십을 언론들이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출처 ‘이재용 문제 보도’ 5가지 유형별로 정리해 봤습니다
[기자수첩] ‘이재용이, 이재용에 의한’ 결단과 리더십 강조한 언론들
[고발뉴스닷컴]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 승인 : 2020.05.08 09:34:11 | 수정 : 2020.05.08 10:32:56
▲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위해 회견장으로 입장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과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특정 언론을 지칭할 것 없이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은데 몇 가지 유형별로 분류를 해서 ‘키워드’로 정리해 봤습니다.
(1) 유형1 - ‘위대하신’ 이재용 부회장께서는…
첫 번째 유형은 이재용의 ‘위기극복 리더십’을 강조하는 언론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이 점을 가장 강조했습니다.
한국경제는 지난 7일 <이재용, 메르스 사과·사재 출연…위기 때마다 ‘오너 책임경영’>(2면)에서 이재용은 △메르스 때도 국민 앞에 머리 숙였고 △삼성서울병원의 혁신 방안도 함께 제시했으며 △2015년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 공모 때는 사재까지 출연해 위기를 극복한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호평했습니다.
한국경제는 해당 기사에서 한 경제계 관계자 멘트를 인용했는데 “예상보다 수위가 높네요. 정말 다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라는 칭찬이었습니다. 제가 봤을 땐 말로 선언한 것 외에 별로 내려놓은 게 없는 것 같은데 한국경제신문은 ‘극찬’이더군요.
한국경제신문은 전경련이 대주주로 있는 신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기사에 인용된 ‘경제계 관계자’가 누군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이외에도 한국경제가 주목한 키워드는 ‘고비마다 직접 나서는 이재용’, ‘과거와 단절 선언한 이재용’, ‘변명 없는 솔직한 사과’ 등이었습니다.
(2) 유형2 -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부회장께서는
두 번째 유형은 ‘이재용의 결단과 의지’를 강조하는 언론입니다. 사실 이런 유형은 한겨레, 경향신문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로 ‘4세 경영 포기’라는 키워드와 함께 ‘승계논란 종식 의지’를 부각시키는 방식입니다.
특히 많은 언론이 측근과 주변에서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재용이 오랜 고민과 결심 끝에 ‘경영권 승계’를 포기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일부 신문 기사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재용, 내부 만류에도 ‘자녀승계 불가’ 결단> (7일 동아일보)
<이재용 ‘4세경영 포기’ 전격 선언…승계논란 종식 의지> (7일 매일경제)
<이재용, 참모들 반대에도 준법감시위 4대 요구 다 받아들였다> (7일 조선일보)
<사내 논란 뚫고 사과 회견… 세 번 고개 숙인 이재용> (7일 한국일보)
특히 조선일보는 이번 이재용의 사과문을 “이재용의 ‘새로운 삼성’ 선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3) 유형3 – 이재용의 보장한 노동권 보장?
세 번째 유형은 ‘이재용의 노동권 보장’을 강조하는 언론입니다. 상당수 언론이 이재용의 사과를 계기로 ‘삼성이 80년 이어온 ‘무노조 경영’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이재용이 “더이상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방점을 찍고 높은 평가를 한 것이죠.
그런데 노조 설립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 권리입니다. 80년 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온 삼성이 ‘비상식적·반헌법적인’ 것이지 ‘이재용의 시혜나 성과’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3개의 소규모 노조만 있었던 삼성전자에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생겼고, 이후 삼성화재, 삼성디스플레이에도 잇따라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무슨 얘기냐? 이재용 사과와 상관없이 삼성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상당수 언론은 마치 ‘이재용의 결단으로 삼성에서 노동권이 보장된 것처럼’ 썼습니다. 노동 문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인식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서울 강남역사거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폐쇄회로(CC)TV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이재용이 대국민 사과 발표를 한 7일은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된 김용희씨가 고공농성을 한지 333일째 되는 날이다.
(4) 유형4 – 노조가 없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네 번째 유형은 ‘노조 혐오’입니다. 여기엔 조선일보가 ‘선봉’에 섰습니다. 조선일보는 어제(7일) 기사에서 재계 반응을 소개하면서 “삼성 모든 계열사에 노조가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삼성마저 한국의 후진적인 노조 문화에 휘둘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어제(7일) 사설에선 “합리적 대화보다 투쟁과 폭력이 앞서는 한국적 노동 현실에서 만에 하나 삼성마저 노조로 인해 세계적 경쟁력을 잃게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라고도 했습니다.
‘무노조 경영에 이재용이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을 부각시킨 다른 언론과 달리 조선일보는 ‘노조 때문에 삼성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겁니다.
아니 노조가 있으면 회사가 망하나요? 그런 식이면 한국에서 이미 망했어야 할 대기업이 여러 곳입니다. 조선일보에도 노조가 있지 않나요? 조선일보 논리대로라면 조선일보도 경쟁력을 상실한 언론사가 됐어야 합니다. 노조에 대한 조선일보의 시각이 어떤지가 ‘이재용 사과 기사’를 계기로 또 한번 확인이 된 셈입니다.
(5) 유형5 – ‘비나이다 비나이다’ 양형에 영향을 미치길
마지막 유형은 ‘비나이다 비나이다’입니다. 이번 사과문이 파기환송심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사실 많은 분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죠. 그런데 일부 언론이 법조계 반응이라며 마치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선 재판부가 요구한 준법감시위의 사과 권고를 삼성이 받아들인 만큼 이날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경제), “삼성과 이 부회장의 조치가 양형에 반영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선일보), “재판부가 제시한 조건을 외형상으로나마 갖춤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양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일보) 등이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이번 사과문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법조인들’도 분명 있을 텐데 이들은 ‘이재용 양형 전망’ 기사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재용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행위에 대해 사과했고, 기성 언론 상당수가 이 부분을 주목했지만 정작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삼성 내부’입니다.
오늘(8일) 한겨레가 4면 <이재용 사과했지만…회계사기 삼바 임원들은 ‘무풍지대’>에서 지적했듯이 “승계 작업의 일환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의혹에 연루된 핵심 임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회계 사기 ‘삼성 바이오’ 임원들은 여전히 건재
“핵심 피의자인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3월 20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 됐고, “김동중 삼성바이오 경영자원혁신센터장(사내이사)과 심모 경영혁신팀장(상무)도 건재”한 상황입니다.
사과문과 별개로 이재용이 과거 승계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이 있었다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는 게 온당한 태도죠. 하지만 백 번을 양보해서 최소한 이재용의 어제(7일) 사과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들’에 대한 문책성 인사 정도는 단행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조치 없이 ‘말뿐인 사과’만으로, 기성 언론을 설득(?)할 수는 있겠지만 국민들을 설득할 순 없습니다. ‘이재용의, 이재용에 의한’ 결단과 리더십을 언론들이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출처 ‘이재용 문제 보도’ 5가지 유형별로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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