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형이 광주시민과 교전 중 사망했다고 조작했나”
고 이병택 중사 동생 이동하씨, 철저한 진상규명 요구
“형의 사망 조작… 명예 더럽히지 말라”
“계엄군 사망자들 명예 위해 ‘작전 잘못으로 사고’ 밝혀야”
[경향신문] 고창 / 글·사진 강현석 기자 | 입력 : 2020.05.11 06:00 | 수정 : 2020.05.11 06:01
“누가 형이 광주에서 시민들과 교전하던 중 전사했다고 기록한 겁니까? 이는 형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5·18 당시 사망 경위가 조작된 것으로 확인된 한 계엄군의 유가족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지난 6일 전북 고창군의 한 마을에서 만난 이동하씨(58)는 형의 사망 경위가 기록된 오래된 군 문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건은 5·18민주화운동 직후인 1980년 6월 군이 이씨의 형인 고(故) 이병택 중사(당시 24세)의 훈장 추서를 위해 쓴 공적서였다. 공적조서에는 “충정작전에 참가하여 11공수 대대장과 장갑차에 동승하여 작전임무 수행 중 광주시 송암동에서 폭도들을 제압 전진 중 90미리 무반동총에 직격당해 장열히(장렬히) 전사”라고 기록돼 있다.
이 중사는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군수지원단 수송근무대 소속 부사관(하사)이었다. 그는 5월 24일 ‘충정작전 80-2’호 명령으로 광주 동구 주남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11공수부대를 광주비행장으로 수송하는 작전에 참여했다. 그는 차량소대 대열의 맨 앞에서 공수부대 대대장이 탄 장갑차를 운전하다 계엄군으로 동원됐던 또 다른 부대인 전교사 육군보병학교 교도대와의 교전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이 중사의 사망확인조서와 공적조서는 모두 광주시민들과 교전하다 사망한 것처럼 적혀 있다. 사망 당일 작성된 ‘사망확인조서’에는 “11공수 대대장과 함께 노상(도로) 안내 중 광주시 송암동에 도착했을 때 폭도들로 추정되는 5~6명이 전방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제압하면서 앞으로 전진 중 폭격당했다”고 적혀 있다. 사망 구분은 ‘전사’로 기록됐다.
전교사 헌병대와 소속 부대장이었던 군수지원단장의 확인이 들어 있는 사망확인조서와 훈장의 공적조서 모두 ‘계엄군 간 오인교전’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당시 가족들이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군에서는 자세한 사망 경위는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동료들이 ‘군인끼리 교전이 있었다’고만 전해줘 가족들은 그렇게만 알았다. 이씨는 형이 사망한 지역과 시간, 교전을 벌인 부대가 전교사 소속이었다는 것도 경향신문을 통해 40년 만에 처음 접했다고 했다.
4형제 중 장남이었던 이 중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군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의 한 공업계 고교 자동차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1976년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1980년 5월은 의무 복무기간 5년을 몇 달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전역하면 자동차수리점을 열 계획도 세워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형이 부사관으로 입대해 집안을 모두 책임졌다. 당시 나는 전주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형이 하숙비와 학비를 모두 댔다”면서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집안이 끝장났다. 어머니는 때때로 방바닥이나 벽에 머리를 찧으며 괴로워하셨다”고 말했다.
이씨는 고향집에서 파킨슨병으로 거동조차 못하는 92세의 노모를 곁에서 돌보고 있다. 200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거동이 힘들어지면서 서울현충원의 묘역도 몇 년째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형의 사망 경위를 재조사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이 만약 선량한 광주시민들과 교전하다가 사망했다면 유족 입장에서는 더욱더 견디기 힘든 일이다. 광주시민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형이 작전 중 사망했으니 ‘전사’는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계엄군 사망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정확하게 조사해 ‘작전 잘못으로 인한 군인들 간 우발적 사고로 숨졌다’는 사실을 공표해야 한다”며 국방부 등 관계기관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어 “광주시민이나 계엄군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결국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와 신군부 인사들”이라면서 “계엄군의 사망 경위가 있는 그대로 밝혀져야 광주시민과 사망한 계엄군 유가족이 화해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군인들의 사망 경위를 조작했는데,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진실을 바탕으로만 정리될 수 있습니다.”
출처 [단독]“누가 형이 광주시민과 교전 중 사망했다고 조작했나…명예 더럽히지 말라”
고 이병택 중사 동생 이동하씨, 철저한 진상규명 요구
“형의 사망 조작… 명예 더럽히지 말라”
“계엄군 사망자들 명예 위해 ‘작전 잘못으로 사고’ 밝혀야”
[경향신문] 고창 / 글·사진 강현석 기자 | 입력 : 2020.05.11 06:00 | 수정 : 2020.05.11 06:01
▲ 5·18 당시 계엄군 간 오인 사격으로 숨진 고 이병택 중사의 전북 고창 고향집. 이 중사는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소속으로 11공수를 수송하던 중 사망했다.
“누가 형이 광주에서 시민들과 교전하던 중 전사했다고 기록한 겁니까? 이는 형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5·18 당시 사망 경위가 조작된 것으로 확인된 한 계엄군의 유가족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지난 6일 전북 고창군의 한 마을에서 만난 이동하씨(58)는 형의 사망 경위가 기록된 오래된 군 문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건은 5·18민주화운동 직후인 1980년 6월 군이 이씨의 형인 고(故) 이병택 중사(당시 24세)의 훈장 추서를 위해 쓴 공적서였다. 공적조서에는 “충정작전에 참가하여 11공수 대대장과 장갑차에 동승하여 작전임무 수행 중 광주시 송암동에서 폭도들을 제압 전진 중 90미리 무반동총에 직격당해 장열히(장렬히) 전사”라고 기록돼 있다.
이 중사는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군수지원단 수송근무대 소속 부사관(하사)이었다. 그는 5월 24일 ‘충정작전 80-2’호 명령으로 광주 동구 주남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11공수부대를 광주비행장으로 수송하는 작전에 참여했다. 그는 차량소대 대열의 맨 앞에서 공수부대 대대장이 탄 장갑차를 운전하다 계엄군으로 동원됐던 또 다른 부대인 전교사 육군보병학교 교도대와의 교전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이 중사의 사망확인조서와 공적조서는 모두 광주시민들과 교전하다 사망한 것처럼 적혀 있다. 사망 당일 작성된 ‘사망확인조서’에는 “11공수 대대장과 함께 노상(도로) 안내 중 광주시 송암동에 도착했을 때 폭도들로 추정되는 5~6명이 전방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제압하면서 앞으로 전진 중 폭격당했다”고 적혀 있다. 사망 구분은 ‘전사’로 기록됐다.
전교사 헌병대와 소속 부대장이었던 군수지원단장의 확인이 들어 있는 사망확인조서와 훈장의 공적조서 모두 ‘계엄군 간 오인교전’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당시 가족들이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군에서는 자세한 사망 경위는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동료들이 ‘군인끼리 교전이 있었다’고만 전해줘 가족들은 그렇게만 알았다. 이씨는 형이 사망한 지역과 시간, 교전을 벌인 부대가 전교사 소속이었다는 것도 경향신문을 통해 40년 만에 처음 접했다고 했다.
4형제 중 장남이었던 이 중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군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의 한 공업계 고교 자동차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1976년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1980년 5월은 의무 복무기간 5년을 몇 달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전역하면 자동차수리점을 열 계획도 세워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형이 부사관으로 입대해 집안을 모두 책임졌다. 당시 나는 전주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형이 하숙비와 학비를 모두 댔다”면서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집안이 끝장났다. 어머니는 때때로 방바닥이나 벽에 머리를 찧으며 괴로워하셨다”고 말했다.
이씨는 고향집에서 파킨슨병으로 거동조차 못하는 92세의 노모를 곁에서 돌보고 있다. 200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거동이 힘들어지면서 서울현충원의 묘역도 몇 년째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형의 사망 경위를 재조사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이 만약 선량한 광주시민들과 교전하다가 사망했다면 유족 입장에서는 더욱더 견디기 힘든 일이다. 광주시민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형이 작전 중 사망했으니 ‘전사’는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계엄군 사망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정확하게 조사해 ‘작전 잘못으로 인한 군인들 간 우발적 사고로 숨졌다’는 사실을 공표해야 한다”며 국방부 등 관계기관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어 “광주시민이나 계엄군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결국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와 신군부 인사들”이라면서 “계엄군의 사망 경위가 있는 그대로 밝혀져야 광주시민과 사망한 계엄군 유가족이 화해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군인들의 사망 경위를 조작했는데,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진실을 바탕으로만 정리될 수 있습니다.”
출처 [단독]“누가 형이 광주시민과 교전 중 사망했다고 조작했나…명예 더럽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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