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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이제 집회·시위의 자유는 없다

이제 집회·시위의 자유는 없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악과 아시아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탄압
[민중의소리]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 발행 : 2020-05-27 16:48:57 | 수정 : 2020-05-27 16:48:57


지난 20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확히 말하면 개악됐다. 집시법 11조 1항 1호가 헌법에 불합치 한다고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반하게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5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만장일치로 집시법 11조가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여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결정하였다. 해당 법조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터라, 지난해 말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올해 1월 1일 자동 폐기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굳이 국회에 개정안을 내 집회시위의 자유를 더 심각하게 제한하는 개악을 한 것이다.

▲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은 6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집시법 11조 개악 저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

개정된 집시법 내용

집시법 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장소)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국회의사당.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국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가. 국회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
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2.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가. 법관이나 재판관의 직무상 독립이나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경우
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4. 국무총리 공관.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국무총리 공관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가. 국무총리를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우
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국가 권력기관은 비판하지 말라는 집시법

1987년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집회 시위의 ‘허가’를 금하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기본적 권리이므로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헌법21조)고 명시적으로 못 박은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위법이자 실정법인 집시법에는 집회금지조항이 11조와 5조 등에 있다. 이 때문에 집회·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처럼 운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숱하게 비판하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개정안은 이를 시정하고자 하는 헌법재판소의 뜻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몇몇 국회의원들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며 불필요한 개정안이라고 지적했지만 이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후 표결에선 그런 의견을 내놓은 의원들조차 기권을 했다.

▲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야당 규탄 조국 수호를 위한 시민참여문화제. 2019.10.09. ⓒ제공 : 뉴스1

결국 개정 집시법은 헌법불합치 판결 이전보다 더 후퇴한 내용을 담게 됐다. 국회나 법원 인근에서는 “국회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나 대규모 집회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에만 집회나 시위를 허용하겠다고 명문화했기 때문이다. 개악 이전에는 “누구든지 국회의사당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할 경우 형사처벌 한다”는 내용으로 그저 ‘100m 이내’만 금지했다면, 이제는 포괄적이고 자의적으로 금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집회 확산 우려가 없는 경우에만 개최 가능하다는 게 얼마나 어이없는 기준인가. 대다수 국민의 관심사에 근거해 열리는 집회는 금지하겠다는 뜻이다. 또 ‘국회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도 매우 자의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가 국회 활동을 방해하는지 알 수 없다.

국회나 청와대, 법원 등 국가 권력기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민의를 반영하라고 다수의 시민들이 모여 외치는 게 집회시위가 아닌가. 그러니 권력기관을 비판하려면 권력기관 앞에서 해야 한다. 집회시위의 자유에는 장소와 내용, 방식에 대한 선택까지 포함된다는 것이 2003년 헌법재판소 판결이다. 국회가 잘못하면 국회 앞에서 집회를 하고 청와대가 잘못하면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하는 자유까지 포함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서조항을 달았으니 이제 권력기관 앞에서 집회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 서울시가 전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서울시내 집회 금지를 명령한 가운데,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가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를 강행하고 있다. 2020.02.22. ⓒ김철수 기자


집시법 개악은 예견된 일이었을까

이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촛불정부를 자처하던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에 경찰개혁위원회를 구성하고 경찰의 국가폭력에 대해 조사하는 등, 이전 정부들과는 달리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 했다. 경찰도 이러한 정부 기조에 맞춰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집권 2년이 지나자 경찰과 정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경찰이 결정한 일이라면 반인권적이더라도 수수방관한다. 경찰과 정부가 같이 가는 모양새다.

이러한 태도가 드러난 것은 소위 ‘아스팔트 극우세력’에 대해 조치를 취할 때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였다.

서울시는 감염병예방법을 근거로 도심 4개 지역을 집회금지 장소로 정했다. 그러더니 코로나19가 잦아드는 국면에서도 이를 풀지 않았다. 서울 도심 중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등에서만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것인가. 서울 도심은 정부종합청사 등 주요 권력기관이 있어 집회가 많다. 서울시가 도심 집회금지를 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유추가능하다.

경찰도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옥죄고 있다. 한국마사회의 비리를 고발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문중원 열사 추모공간은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경찰은 이를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없이 폭력적으로 철거했다.

지난 노동절에도 서울시와 경찰의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코로나19의 위기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기업을 규탄하며 정부에게 ‘해고금지’를 제도화하라고 촉구하는 긴급행동을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와 경찰은 집회금지 통보를 했다. 그리고는 이제 긴급행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내사하겠다고 한다. 당시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하고 장갑을 끼고 방진복을 입은채 안전하고 평화롭게 행동을 했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을 내사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일을 사전 차단하고자 하는 것인가.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18일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천막농성장을 강제철거 행정집행한 종로구청에 민원을 접수하러 방문했지만 경찰이 구청 진입을 저지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종로구청, 기업의 편에 서겠다는 것인가

집회시위의 자유는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모이고 외치고 행동할 수 있는 기본권이다. 이를 통해 시민은 국가 권력의 독주를 제어하고, 국가정책에 다양한 구성원의 뜻을 반영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기본권을 이제 종로구청장이 마음만 먹으면 자의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됐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의적 기본권 침해가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일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의 청소와 수화물 분류 작업을 담당하는 하청업체 아시아나KO의 노동자들은 원청의 무급휴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정리해고 됐다. 정부가 고용을 유지하면 지원금을 주겠다고 했으나, 업체측은 지원금도 거부하며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원청인 아시아나항공 사옥이 있는 종로구에 집회신고를 하고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4일차인 지난 18일, 종로구청과 경찰은 집회신고를 했음에도 노동자들의 천막이 ‘도로법’ 위반 노상적치물이라며 제대로 된 계고장도 제시하지 않고 강제철거했다. 이는 아시아나 본사 앞이 서울시의 집회 금지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도로법을 위반했다는 꼼수를 쓴 것이다. 집회 신고가 난 장소에서 집회 물품인 천막에 대해 도로법 위반을 적용한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탄압했던 남대문경찰서의 행태다. 그걸 이번에 다시 끄집어 낸 셈이다. 인권이 이렇게 뒤로 간다.

▲ 23일 서울 종로구 아시아나 종로사옥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주최한 아시아나KO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문제를 정부와 박삼구 회장이 직접 나서서 해결할 것을 요구하며 함께살자! 다시날자! 공항·항공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자전거행진 참가자들이 농성 천막을 설치하고 있다. 2020.05.23. ⓒ김철수 기자

26일 종로구청은 감염병예방법을 근거로 아시아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집회 금지 통보서를 보내왔다. 아예 종로 일대를 집회금지 구역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도로법 위반을 적용해서는 법적 다툼의 여지도 많고 궁색하니, 이제는 감염병예방법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갑자기 아시아나 본사 사옥 앞에 감염병 확산의 우려가 높아져서 집회 금지 구역으로 설정한다고 하면, 누가 쉽게 동의해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에 점차 집회 시위의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 정부가 바라는 코로나19의 세상은 자유와 평등의 나라가 아니라, 통제와 감시의 나라인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감에 잔뜩 움츠려있는 시민들이기에 어느 때보다 감시와 통제에 길들이기 쉽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민중은 밟히고 그저 누워있지만은 않는다. 5.18 광주 민중항쟁이 그랬고, 87년 민주항쟁이 그랬고, 2016년 촛불항쟁이 그랬다. 바람에 이끌려 다시 일어나는 것이 노동자 민중의 역사고 민주주의의 역사였다는 것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은 정부가 우리의 기본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모이고 행동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19 이후의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출처  [명숙 칼럼] 이제 집회·시위의 자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