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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읽고

어떤 부부 이 땅에서 결혼하지 못하고 결국은 비행기를 타야 했다는 시골 총각. 어여쁜 베트남 처자를 아내로 맞이해 팔불출처럼 벌어진 입 다물어지기도 전, 중병에 걸린 아내가 덥석 자리에 눕고 말았단다. 꽃 같은 아내의 치료비 기천 만원이 무슨 대수겠는가. 밤낮없이 병상을 지키던 정성 덕분에 그녀는 겨울 먼지를 털어내듯 툭툭 병마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베트남에서 한 남자가 찾아왔으니, 가난 때문에 먼 나라로 시집 간 여인을 끝내 잊지 못했던 모양이다. 시골 남자,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니 도저히 애절하고 애절해서 갈라놓을 수가 없었단다. 비행기 타고 데려온 여인, 보따리까지 곱게 싸서 돌려보내고 사내는 몇 날을 울었을까. 두 계절이 지나도록 허리가 묶인 채 지하철 환기구 옆에 방치되었던 포장 수레가.. 더보기
신입사원과 커피믹스 입사하고 나서 줄곧 커피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거나 바쁘지 않을 때는 괜찮지만 다른 부서 사람들까지 저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건 모욕적이기까지 합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커피를 타야한다면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상사분께 말씀드려야 할까요? 아니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요? 원래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남이 타주는 커피가 더 맛있는 법이랍니다. 지금, 객관적인 시선으로 부서의 팀원들을 한 번 둘러보세요. 누군가는 프린터에 용지가 비어있을 때마다 새용지를 넣을 것이고 누군가는 정수기 물통이 비어있을 때마다 새물통을 꽂아둘 것이고 누군가는 컴퓨터가 말썽을 부릴 때마다 오류를 수정해 줄 것이고 누군가는 점심식사 때마다 냅킨 위에 수저를 놓아주고 있을 겁니다. 하찮은 일이란 없습니다... 더보기
내 나이 어딘가에 버려진 꿈을 찾다 "내 꿈은 요정이 되는 거에요. 아빠는 꿈이 뭐에요?" 네 살짜리 딸아이가 놀이동산에서 사 준 날개를 달고는 진지한 낯빛으로 묻는다. 글쎄... 적당한 대답을 궁리할수록 마음은 곤란해질 뿐. 나에게 꿈이란, 30대의 새치처럼 핀셋으로 퇴출되거나 40대의 흰머리처럼 염색으로 변형되거나 50대의 탈모처럼 가발로 구차해지거나 60대의 백발처럼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으니! 목표는 있어도 꿈은 없는 게 밥벌이들의 서러움 아니던가. 월급통장에, 펀드에,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저당잡힌 인생 아니던가 말이다. 카르페 디엠! 인생의 해답은 내일이 아닌 오늘에 있다.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대신 즐겁게 살기로 했다. 내 나이 어딘가에 버려진 꿈을, 찾았다. 더보기
참 좋은 선생님 오로지 가난 때문에 선생님이 되신 분이 계십니다. 등록금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육사를 지원했다가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염두에 두고 있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교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돈이 들지 않는다는 또 다른 대학. 군대도 면제고 졸업하면 곧바로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이것저것 잴 것이 없었습니다. 김주영 선생님은 그렇게 선생님의 길을 걷게 되었고 올해로 26년차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2005년의 일을 가장 잊지 못합니다. 경북 상주 변두리에 전교생 50명이 넘지 못해 폐교 위기에 몰린 학교가 있었습니다. 아무런 가산점도 없는, 선생님들에게는 기피대상의 초등학교였습니다. 그러나 깊은 뜻을 갖고 있는 선생님 몇.. 더보기
노란집 요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부암동에 노란집. 재료가 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는 말에 부랴부랴 걸음했건만 그나마 김밥은 모두 팔리고 수제버거만 가능하단다. 에피타이저로 시작된 대화는 진작 미리 먹는 디저트가 되었지만 주인은 요리를 내오기는커녕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며 자리를 비운다. 밥때가 아닌데도 밀려드는 허기- 다음 일정이 없는데도 초조한 기분- 언제부턴가 우리는 시간의 간극을 견디는데 취약해져간다. 커피를 기다리는 3분도 지겨워 매장의 커다란 TV 속 현란한 광고에 빠져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3분도 답답해서 휴대전화를 들어 용건도 없는 전화를 건다. 만약 요리가 3분 만에 나왔다면 우리의 대화 역시 거기까지였을거다. 30분을 훨씬 더 기다려서야 등장한 횡성한우 수제버거. 그 맛을 보니 황송한 .. 더보기
무단결근 한 사나흘 쯤 빈둥거리며 살고 싶었습니다. 화장실 가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빼고는 맘껏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 마저도 마뜩찮고 내키지 않으니 그저 내버려지고 싶은 마음 뿐이었지요. 불편한 사람과 통화할 일도, 다급하게 시계를 들여다 볼 일도 없는 하루하루가 일탈이 아닌 일상이 되어준다면 참 고마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평소 불가능했던 일들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무단결근을 하고 핸드폰은 꺼놓고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마음이 편안 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가슴이 방망이질을 치고 정돈되지 않은 마음에 어지러웠습니다. 자정이 지나 핸드폰을 켜보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찾느라고 애먹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부재중 1통화... 그나마 그 주인공은 1588로 시작하는 번.. 더보기
소금별 한낮에도 별이 내린다. 짜디짠 삶의 질곡을 보름 동안 걸러내고 찬란한 태양 한 주먹이면 깊지도 않은 바다에서 별이 떠오른다. 하나 둘 떠오르는 별들 아직은 이르다, 아직은 이르다. 염부의 '곰배'에 가슴을 찔리고 채 피지도 못한 하얀 별 그토록 슬펐을까. 있지도 않던 사랑이 더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나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 흔적이 어느새 꽃이 될 때면 너 죽고 나 죽는다던 하얀 맹세까지도 저 바다에서 별이 되어 떠오른다. 더보기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면? 사랑이란, 희망이라곤 전혀 없는 상처투성이 연인들의 이마에 슬며시 그어주는 하늘의 축복 같은 것. 사랑하라, 희망 없이 눈 감은 채 마주 선 연인들이여. 가장 깊은 진실은 눈을 감아야 보이나니. 윤영수의 소설 중에서 연인을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면? 본전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치사해서 쉽지 않죠. 내가 낸 밥 한 끼, 서프라이즈한 생일선물, 그리고 사소한 부탁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기만 하고 저 이는 받기만 하는 일들이 한 번, 두 번, 그러다 여러 번 반복되다 보면 은근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 마음일 겁니다. 몇 번은 저 이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다가 종국에는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죠. 그렇게 되면 이미 그 사람과의 관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