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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창살 없는 감옥’ 생활…‘수배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추석

‘창살 없는 감옥’ 생활…‘수배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추석
민주주의·생존권 위협 받는 순간마다 최후의 ‘보루’에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09-27 13:02:51


추석 연휴 첫날인 26일 아침 10시께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앞.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한적한 거리엔 행인을 가장한 건장한 남성 2~3명이 건물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검정색 점퍼 주머니엔 무전기 안테나가 삐쳐 나와 있었고, 자연스러운 척 곁눈질을 하면서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오히려 어색해보였다.

“어디에 오셨나요?”
“민주노총 위원장님 만나러 왔어요.”

경비원과 나눈 짧은 대화에 주변을 서성이던 남성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부러움에 가득찬 그들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민주노총 사무실로 향했다.

얼마 되지 않아 한상균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진 민주노총 조끼만 벗으면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의 몰골이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정의철 기자

한 위원장은 4.24 민주노총 총파업대회, 노동절 집회 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지난 6월 말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정확하게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과 일반교통방해 등 혐의다. 이후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 집무실에서 사실상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경향신문사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어 경찰이 체포 작전을 펼치는 데 부담스러운 장소다. 지난 2013년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를 위해 이 건물 입구 문을 부수는 등 무리하게 영장을 집행하려다 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었다.

“어떤 날엔 사복 경찰들이 주변에 천명 이상 깔려 있을 때도 있어요. 방심할 수가 없죠. 저 체포하는 데 1계급 특진도 걸려 있잖아요(웃음).”

3개월 넘는 은둔(?) 생활에는 이제 도가 텄다. 집무실 한 켠에 마련해둔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고, 책상 뒤엔 건조대라 부르기도 민망한 줄을 매달아 수건, 양말, 속옷 등을 널어놓았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 갇혀 있다는 사실은 2009년 쌍용차 공장 옥쇄파업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공권력에 의해 전기와 물이 끊길 우려가 없고, 외부 상황도 실시간으로 보고받을 수가 있다.

“씻고 먹고 자는 데엔 큰 문제가 없어요. 다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투쟁 현장에 가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답답하죠.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심정이에요. 이런 상황 때문에 애간장이 많이 탑니다.”

사무실 생활은 꽤 규칙적이다. 오전 6시에 기상해 씻고 업무 준비를 한다. 상근자들이 출근하면 업무보고를 받고, 각종 대정부 투쟁 계획을 지휘한다. 간부들이나 상근자들과의 정례회의, 산별노조 조합원들과 시민사회의 연대방문, 외부 자문인력들과의 현안 토론 등을 진행하고 하루 일과를 정리하면 어느덧 자정에 이른다. 그는 “신문 볼 시간도 없다. 갇혀 있어도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정의철 기자

‘오늘 같은 날엔 가족들이 보고싶다’, ‘집밥이 생각난다’와 같은 류의 흔한 푸념은 없었다. 쌍용차 투쟁으로 인한 오랜 감옥 생활, 각종 노동탄압에 맞선 투쟁의 연장…. 그에게 명절 연휴를 만끽하는 건 어찌 보면 사치에 가까웠을 지도 모른다. 그에겐 장기투쟁 중인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다.

“저처럼 공권력에 의해 갇혀있지는 않지만, 마지막 생존권 투쟁의 수단으로 고공에 오른 장기투쟁 동지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 동지들과 함께 찬 바람을 맞으면서 보내야 하는데, 현재로선 마음만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또 박근혜 정부 들어 구속된 노동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들한테도 남다른 추석이 될 것 같고…. 지금은 그런 부분들이 가장 마음에 걸리네요.”

대우조선해양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인 강병재씨의 60m 타워크레인 고공농성 166일 만에 끝났지만 생탁과 택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164일을 맞았으며,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한규협은 손바닥만한 전광판 위에서 108일째를 보내고 있다.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늘, 경찰은 기아차 두 노동자에게 물은 하루에 2리터, 전화기 배터리는 하루 한 개로 제한하겠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데자뷰:1980년 광주, 2009년 쌍용차 투쟁…그리고 2015년

고등학교 시절엔 군사정권의 총칼에, 2009년엔 정권과 자본에 생존권을 위협받았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된 2015년에도 한 위원장은 여전히 고립된 채로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한 위원장은 1980년 5.18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 중 한명이었다.

“광주기계공고에 다닐 때였죠. 며칠 되지도 않아요. 시민군이 곧바로 계엄군에 진압됐었으니깐. 시민군에 자원했는데, 그게 당시엔 특별한 일도 아니었어요. 누구나 민주주의의 위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저도 그 평범한 생각을 갖고 자원한 시민 중 한명이었을 뿐이에요.”

계엄군의 총칼에 의해 무참히 목숨을 잃은 옛 동료들을 떠올리기가 괴로웠던 것일까. 80년 광주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에 그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참혹했던 시간들만 머릿속에 남아있어요. 입으로 하나하나 꺼내기도 두려운 일들이 많았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민들이 참혹하게 학살되는 걸 어린 나이에 직접 눈으로 봤을 때 그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이죠. 그 학살된 시신들을 직접 옮기기도 했고요.”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정의철 기자

35년 동안 그가 반복적으로 겪었던 한국 사회의 굴곡진 지점들은 서로 묘한 데자뷰를 이루는 듯하다.

35년 전의 투쟁은 총칼에 맞선 싸움이었죠. 총칼에 의한 독재가 시퍼런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총칼이 노동자들을 옥죄는 시절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총칼에 의한 수탈 체제가 자본에 의한 수탈 체제로 바뀌면서 오히려 노동자, 민중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민중을 위한 정권은 없었어요. 여전히 우리 스스로 깨어있지 않고 대단결을 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 될 수가 있어요.

그는 2009년 쌍용차 투쟁을 포함, 노-정, 노-사 간의 투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과거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고 있다.

정리해고가 도입될 때,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됐을 때, 타임오프제가 통과됐을 때가 있었죠. 그런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다수의 노동자들이 ‘이게 정말 내 문제이긴 한걸까’, ‘얼마나 큰 문제인 것인가’ 하는 안일한 생각들이 만연했어요. 결국 정리해고로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나갔어요. 이런 것들을 보면 결국 ‘모든 걸 걸고 싸우지 않으면 몇 년 지나서 화살이 돼서 돌아온다’는 거죠. 지금 정부와 자본이 추진하는 쉬운해고, 취업규칙 변경 등이 그대로 관철이 되어버리면 결국 노동자는 ‘노조’가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무권리 상태로 내몰리게 될 겁니다.”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 ‘쉬운 해고’ 골자의 노사정위원회 합의안을 막는 일은 올해 목표로 삼은 최대 과업 중 하나다.

“정치권에선 추석 민심 잡기에 여념이 없어요. 우리들 전체 노동자들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현재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의 심각성들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가야 합니다. 올 명절엔 가족, 친지들에게 그러한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대단결로 대정부 투쟁에 올인할 수 있도록 체력을 충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귀성·귀경길에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창살 없는 감옥’ 생활…‘수배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