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저성과자 해고, 대신증권 ‘성과 관리’ 프로그램 보니...

저성과자 해고, 대신증권 ‘성과 관리’ 프로그램 보니...
평가는 명분, 퇴출이 목표
초단기 보직순환, 등산 후 인증샷 찍기 등 잔류 의지 상실 유도

[민중의소리] 정웅재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09-29 13:02:30


저성과자 해고 지침 도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노동계에서는 기업이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활용해 정리해고를 할 수도 있고, 노조원 등을 해고하는 식으로 노조 무력화를 노릴 수도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직원에 대한 평가의 칼자루를 회사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 -> 저성과자에 대한 교육 또는 직무 재배치 등 기회 제공 -> 재평가' 등의 외양은 그럴싸하게 갖출 수 있지만,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특정인을 저성과자로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KT에서는 명예퇴직 거부자, 노동조합 활동가 등을 부진인력으로 찍어 퇴출 프로그램을 가동한 바 있다. (관련기사 : 저성과자 해고, KT 사례 들여다 보니...)

대신증권에서는 인력 구조조정을 위해 성과관리 체계를 활용한 바 있다. 두 사례 모두 사내의 성과관리 프로그램이 나쁜 의도로 활용된 경우다.

▲ 대신증권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 개요 ⓒ체불임금 등 청구 소송 자료에서 발췌


노조 없는 상황에서 직원 퇴출 가능하도록
취업규칙·인사규정 개정해

대신증권은 2011년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그해 12월 '고성과 조직 구축을 위한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 매뉴얼' 제목의 보고서를 회신 받았다. (창조컨설팅은 노조 무력화 컨설팅 사실이 2012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던 그 노무법인이다)

창조컨설팅은 직원 퇴출 프로그램 도입을 위해서는 우선 취업규칙, 인사규정 등 회사 내부 규정을 직원 퇴출이 가능하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에따라 대신증권 사측은 취업규칙 퇴직 조항에 '직원의 퇴직은 의원퇴직, 정년퇴직, 자연퇴직 및 징계면직으로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고, 인사규정에는 '대기발령을 받은 자에 대해서는 교육 훈련 또는 별도의 과제를 부여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 대기발령자에 대해서도 명령휴직할 수 있도록 하고, 명령휴직 만료시 까지 휴직사유가 해소되지 않아 복직명령을 받지 못한 때는 자연퇴직으로 처리한다고 개정했다.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최종적으로 직원을 퇴출시킬 수 있도록 사내 규정을 개정하거나 신설한 것이다. 당시 대신증권에는 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프로그램 도입을 위한 이같은 사전 정지작업은 별다른 저항없이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 대신증권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 ⓒ체불임금 등 청구 소송 자료에서 발췌


성과평가와 역량강화는 명분일 뿐
목표는 직원 퇴출, 상시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

전략적 성과관리체계는 2012년 4월부터 본격 가동됐는데,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설계는 육성이나 목표는 퇴출인 상시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라고 적시돼 있다. 성과평가와 역량강화는 명분일 뿐, 직원 퇴출이 목표임을 알 수 있다.

퇴출이 목표라는 것은 보고서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외부적으로는 저성과자의 역량교육 프로그램으로 설계하되 내부적으로는 어려운 과제를 부여해 잔류의지를 없앰
- 단계별 급여삭감과 신분변동, 교육 업무 부여를 통해 잔류욕구 상실
- 3단계 프로그램 후 최종적으로는 자연퇴직 가능토록 설계

당시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 대상 인원으로 선정돼 결국 퇴직한 직원 등이 제기한 체불임금 등 청구 소송의 소장에는 잔류 욕구를 상실시키기 위한 교육의 내용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3단계 대상자를 현업에서 배제시킨 후 타영업점과 본사를 1~2주 간격으로 오고가도록 보직을 순환하고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지시(등산 후 산정상에서 인증사진 찍어 확인받기, 외부 명함 10장 받아오기, 길거리에서 전단지 배포하기 등)을 반복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인격적 자존심을 짓밟아 잔류의지를 상실시키기도 했다."

대신증권은 이 프로그램을 가동한 2년여 기간 동안 100여명의 인력을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일부는 희망퇴직이 아닌 자연퇴직이었기 때문에 3개월치 기본급만 받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런 식의 구조조정에 맞서 고용안정을 지키기 위해 지난해 대신증권에서는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이남현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대신증권지부장은 "인사평가에서 정성평가의 기준이 커서 (인사권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다같이 잘해도 무조건 꼴지(저성과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며 "지금도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회사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는데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상호 KT민주동지회 의장은 "회사가 특정한 사람을 찍어서 저성과자로 만드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쉬운 일이다. 회사에 밉보인 사람을 저성과자로 낙인찍을 것이다. 공정한 해고는 있을 수 없다. 흑자기업에서는 정리해고가 불가능한데, 저성과자 해고는 흑자기업에서도 집단해고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노조도 무력화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강문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은 24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긴급토론회에서 "정부가 저성과자에 대한 지침을 마련할 경우 이는 통상해고에 대한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촉진하라는 신호로 여겨져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상시적으로 하위 평가자 및 기준 미달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에서는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크고, 사용자에게 해고에 대한 전권이 부여돼 노동자들 사이에 지옥 같은 경쟁을 유발할 수 있고, 최종 귀결점은 노동법의 무력화, 노조의 무력화"라고 우려했다.


출처  저성과자 해고, 대신증권 ‘성과 관리’ 프로그램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