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의 딸? "자위대 행사인 줄 몰랐어요!"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
기사입력 2011-09-23 오후 6:46:02
자위대 창립 50주년
여당의 유력 정치인이 자위대 창립 5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는 그게 무슨 행사인 줄 미처 몰랐다고 거짓말하는 나라에서 한일 관계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제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 역사는 먼 과거이니 더는 사과 요구를 하지 말고 미래 지향적 관계를 갖자고 말하는 대통령이 있는 국가에서 한일 합방의 역사적 평가는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 것일까?
일본 문제만 나오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 나라 국민들은 그렇다면 과연 역사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것일까?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엄청난 희생과 박탈이 이루어졌는지 주목하지 않고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는 세력들이 학자라고 발언하는 나라에서 일제시대는 어떻게 교육되고 있을까?
식민지 지배 세력에게 협력하고 개인의 영달을 취한 친일 반민족 세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하는 일조차 이념으로 매도되는 일이 여전하고, 그 후예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자신의 조상들을 엄호하기에 바쁜 현실에서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어떻게 밝혀나갈 것인가?
우리가 망각하고 외면한 역사에 대한 기록
그런데 이런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본의 진보적 역사가들의 책이 나왔다. 일제시대는 이미 흘러간 옛날이고, 더는 우리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 나라의 정신세계에 이 책은 충격을 가한다.
와다 하루키를 비롯해 재일 조선인을 포함한 16인의 일본 지식인은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최덕수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우리가 망각했거나 외면했거나 아니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역사의 실체를 진솔하게 짚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 격에 해당하는 "한국 병합 기념비 앞에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책의 편집을 책임진 교토대학의 조선 근대사 교수 미즈노 나오키의 글은 일본의 역사에 대한 통렬한 자기 성찰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조선 반도를 얻었다는 사실은 일본이 세계적으로 강국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는 점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일대 경사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 병합'이 일본과 일본인에게 '성사'이고 '성덕대업'이었을까? 설사 일본의 조선 지배가 군사, 정치, 경제 등의 측면에서 일본에 이익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조선 민중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이익이었다는 점은 새삼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우리들은 그것이 역사 속에서 일본 자신에게 무엇을 초래했는지 재고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일본인 자신에게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까지도 생각이 미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 책의 인식이 출발하고 있는 지점은 미야지마 히로시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현재 일본이 커다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러한 전환의 본질적인 내용은 일본이 다시 동아시아의 주변적 지위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서구 근대화 모델 수용의 모범생으로 떠오른 일본이 아시아를 배신하고 그 등에 비수를 꽂은 사태 앞에서 일본이 아시아의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주도권을 잡는 듯 했다가 다시 이제는 주변부적 위치로 전락하고 있다는 뼈아픈 고백을 듣는다. 그래서 이 글의 미야지마는 일본이 아시아로 제대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특히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명한 역사적 자성과 정리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일본에 있어 조선에 대한 강탈과 학살, 핍박과 지배의 역사를 넘어선 아시아 복귀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일본에게 사과를 말하는 것은 일본에게 아시아로 돌아오는 길을 열어주는 셈이 된다. 지금 일본은 이걸 모르고 있는 거다.
일본 식민지 시대가 남겨 놓은 것들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는 우리의 역사 인식에 존재하지 않은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과 관점을 보여준다. 한일 합방의 과정에서 강제적 조약 체결이 아닌, 조약 자체의 성립 요건이 부재한다는 점, 청일 전쟁의 과정에서 동학 농민군에 대한 "모조리 살육"이라는 초토화 섬멸 작전이 전개되었다는 사실, 기존의 조선조에는 공론의 정치와 불만을 호소하는 통로가 존재했는데 일본은 이를 모두 봉쇄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 유교적 민본주의가 작동했던 조선사의 원리를 식민지 시대가 철저하게 파괴해버렸다는 사실 등은 우리의 역사가 상실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가령 지바 대학에서 조선 근대사를 가르치는 조경달의 "무단 정치와 조선 민중"이라는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왕조 시대에 조선 민중은 어느 정도 지배 정책이나 수탈에 불만이 있었다고 해도 곧바로 왕조 타도의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것은 유교적 민본주의에 의한 지배에 대한 합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은 필사적으로 수탈을 감내하는 가운데 공론을 통해서, 혹은 민란이라는 폭력을 통해서 스스로의 의지를 상달할 수 있었다. 그러한 경우 왕조 권력은 마지못해, 혹은 기만적이면서도 그것에 대하여 무언가로 대응하는 것이 흔했다. 그랬기 때문에 조선은 500년 이상에 걸쳐서 존속할 수 있었다.
(…) '한국 병합'은 조선 민중이 장기간에 걸쳐 익숙해졌던 그러한 정치 문화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식민지 지배의 본질이라는 것은 종주국 총체로부터 다양하게 이루어진 수탈, 차별, 억압과 그것을 보장하는 폭력의 체계성에 있다. 무단 정치는 바로 그러한 폭력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지배의 모습이었다."
동학농민군이 왕조 타도에 나서지 않은 것은 그 인식의 봉건적 한계라고 지적해온 우리의 형편에서 볼 때 그것이 또한 얼마나 식민지 사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결과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동학 농민 전쟁의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진보적 역사관에서조차 이러한 견해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선조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규명이 보다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침략은, 조선조의 정치 문화 가운데 이후의 시대가 계승할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만 셈이다. 한국 병합의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잊고 말았는지 정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일본에 의한 조선 사회의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허상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에 더해 이 무단 정치의 유산이 훗날 군사 독재의 현실과 직결되어 이 나라의 역사를 고통에 빠뜨렸다는 점은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
고대 한일 관계사에 대한 인식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 시기마다 달라진 일본의 조선에 대한 인식, 조선 지배를 위해 세운 조선 내부의 일본 관료 체제의 성격에 대한 분석 등은 오늘날 한일 관계를 정리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상호 역사 이해의 기초적 틀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계속 시간이 지나가면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 같은 것은 반복되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미래 세대도 일본의 과거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해져 버릴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론
이제 마흔도 채 되지 않는 소장 학자 이타가키 류타의 "한일 회담 반대 운동과 식민지 지배 책임론"은 매우 흥미로운 글이다. 일본 내 진보적 지식인과 운동이 제기해온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에 대한 논쟁과 그것이 전개되어가는 과정은 우리로서는 매우 소중하고 의미 있는 내용이다. 이는 향후 북한과 일본 사이에 정리되어야할 식민지 지배에 대한 교섭에 중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재일 조선인 학자를 포함하여 진보적인 일본 지식인들이 이런 노력을 축적해가면서 일본 사회가 빠져 있는 과거사 망각 현상에 경종을 울리고 올바른 아시아의 미래를 세우는 작업을 하는 것은 경탄스럽다. 우리 사회에서조차 일제 식민지 시대의 실상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국민 교육의 관점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에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는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사회와 국가 또는 민족은 미래에도 같은 늪에 또 빠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갈등과 문제의 밑바닥에 가로 놓여 있는 '원인'들을 알 길이 없어진다.
나라가 송두리째 남에게 넘어갔던 그 시대의 역사를 이미 낡고 낡은 옛날의 이야기처럼 여기고 있는 나라는 지금도 누구에게 먹히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진행형의 관점에 서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걸 모르면, 자위대 창립 50주년에 참석하고도 "완전 생 까는" 자들이 버젓이 얼굴을 들고 다니게 마련이다.
출처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923131744§ion=01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
기사입력 2011-09-23 오후 6:46:02
자위대 창립 50주년
여당의 유력 정치인이 자위대 창립 5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는 그게 무슨 행사인 줄 미처 몰랐다고 거짓말하는 나라에서 한일 관계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제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 역사는 먼 과거이니 더는 사과 요구를 하지 말고 미래 지향적 관계를 갖자고 말하는 대통령이 있는 국가에서 한일 합방의 역사적 평가는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 것일까?
일본 문제만 나오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 나라 국민들은 그렇다면 과연 역사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것일까?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엄청난 희생과 박탈이 이루어졌는지 주목하지 않고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는 세력들이 학자라고 발언하는 나라에서 일제시대는 어떻게 교육되고 있을까?
식민지 지배 세력에게 협력하고 개인의 영달을 취한 친일 반민족 세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하는 일조차 이념으로 매도되는 일이 여전하고, 그 후예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자신의 조상들을 엄호하기에 바쁜 현실에서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어떻게 밝혀나갈 것인가?
우리가 망각하고 외면한 역사에 대한 기록
▲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와다 하루키 외 지음, 최덕수 옮김,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
와다 하루키를 비롯해 재일 조선인을 포함한 16인의 일본 지식인은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최덕수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우리가 망각했거나 외면했거나 아니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역사의 실체를 진솔하게 짚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 격에 해당하는 "한국 병합 기념비 앞에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책의 편집을 책임진 교토대학의 조선 근대사 교수 미즈노 나오키의 글은 일본의 역사에 대한 통렬한 자기 성찰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조선 반도를 얻었다는 사실은 일본이 세계적으로 강국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는 점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일대 경사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 병합'이 일본과 일본인에게 '성사'이고 '성덕대업'이었을까? 설사 일본의 조선 지배가 군사, 정치, 경제 등의 측면에서 일본에 이익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조선 민중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이익이었다는 점은 새삼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우리들은 그것이 역사 속에서 일본 자신에게 무엇을 초래했는지 재고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일본인 자신에게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까지도 생각이 미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 책의 인식이 출발하고 있는 지점은 미야지마 히로시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현재 일본이 커다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러한 전환의 본질적인 내용은 일본이 다시 동아시아의 주변적 지위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서구 근대화 모델 수용의 모범생으로 떠오른 일본이 아시아를 배신하고 그 등에 비수를 꽂은 사태 앞에서 일본이 아시아의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주도권을 잡는 듯 했다가 다시 이제는 주변부적 위치로 전락하고 있다는 뼈아픈 고백을 듣는다. 그래서 이 글의 미야지마는 일본이 아시아로 제대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특히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명한 역사적 자성과 정리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일본에 있어 조선에 대한 강탈과 학살, 핍박과 지배의 역사를 넘어선 아시아 복귀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일본에게 사과를 말하는 것은 일본에게 아시아로 돌아오는 길을 열어주는 셈이 된다. 지금 일본은 이걸 모르고 있는 거다.
일본 식민지 시대가 남겨 놓은 것들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는 우리의 역사 인식에 존재하지 않은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과 관점을 보여준다. 한일 합방의 과정에서 강제적 조약 체결이 아닌, 조약 자체의 성립 요건이 부재한다는 점, 청일 전쟁의 과정에서 동학 농민군에 대한 "모조리 살육"이라는 초토화 섬멸 작전이 전개되었다는 사실, 기존의 조선조에는 공론의 정치와 불만을 호소하는 통로가 존재했는데 일본은 이를 모두 봉쇄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 유교적 민본주의가 작동했던 조선사의 원리를 식민지 시대가 철저하게 파괴해버렸다는 사실 등은 우리의 역사가 상실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가령 지바 대학에서 조선 근대사를 가르치는 조경달의 "무단 정치와 조선 민중"이라는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왕조 시대에 조선 민중은 어느 정도 지배 정책이나 수탈에 불만이 있었다고 해도 곧바로 왕조 타도의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것은 유교적 민본주의에 의한 지배에 대한 합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은 필사적으로 수탈을 감내하는 가운데 공론을 통해서, 혹은 민란이라는 폭력을 통해서 스스로의 의지를 상달할 수 있었다. 그러한 경우 왕조 권력은 마지못해, 혹은 기만적이면서도 그것에 대하여 무언가로 대응하는 것이 흔했다. 그랬기 때문에 조선은 500년 이상에 걸쳐서 존속할 수 있었다.
(…) '한국 병합'은 조선 민중이 장기간에 걸쳐 익숙해졌던 그러한 정치 문화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식민지 지배의 본질이라는 것은 종주국 총체로부터 다양하게 이루어진 수탈, 차별, 억압과 그것을 보장하는 폭력의 체계성에 있다. 무단 정치는 바로 그러한 폭력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지배의 모습이었다."
동학농민군이 왕조 타도에 나서지 않은 것은 그 인식의 봉건적 한계라고 지적해온 우리의 형편에서 볼 때 그것이 또한 얼마나 식민지 사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결과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동학 농민 전쟁의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진보적 역사관에서조차 이러한 견해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선조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규명이 보다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침략은, 조선조의 정치 문화 가운데 이후의 시대가 계승할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만 셈이다. 한국 병합의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잊고 말았는지 정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일본에 의한 조선 사회의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허상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에 더해 이 무단 정치의 유산이 훗날 군사 독재의 현실과 직결되어 이 나라의 역사를 고통에 빠뜨렸다는 점은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
고대 한일 관계사에 대한 인식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 시기마다 달라진 일본의 조선에 대한 인식, 조선 지배를 위해 세운 조선 내부의 일본 관료 체제의 성격에 대한 분석 등은 오늘날 한일 관계를 정리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상호 역사 이해의 기초적 틀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계속 시간이 지나가면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 같은 것은 반복되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미래 세대도 일본의 과거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해져 버릴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론
이제 마흔도 채 되지 않는 소장 학자 이타가키 류타의 "한일 회담 반대 운동과 식민지 지배 책임론"은 매우 흥미로운 글이다. 일본 내 진보적 지식인과 운동이 제기해온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에 대한 논쟁과 그것이 전개되어가는 과정은 우리로서는 매우 소중하고 의미 있는 내용이다. 이는 향후 북한과 일본 사이에 정리되어야할 식민지 지배에 대한 교섭에 중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재일 조선인 학자를 포함하여 진보적인 일본 지식인들이 이런 노력을 축적해가면서 일본 사회가 빠져 있는 과거사 망각 현상에 경종을 울리고 올바른 아시아의 미래를 세우는 작업을 하는 것은 경탄스럽다. 우리 사회에서조차 일제 식민지 시대의 실상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국민 교육의 관점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에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는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사회와 국가 또는 민족은 미래에도 같은 늪에 또 빠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갈등과 문제의 밑바닥에 가로 놓여 있는 '원인'들을 알 길이 없어진다.
나라가 송두리째 남에게 넘어갔던 그 시대의 역사를 이미 낡고 낡은 옛날의 이야기처럼 여기고 있는 나라는 지금도 누구에게 먹히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진행형의 관점에 서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걸 모르면, 자위대 창립 50주년에 참석하고도 "완전 생 까는" 자들이 버젓이 얼굴을 들고 다니게 마련이다.
출처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923131744§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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