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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국정원, 비판글 작성 증거 나오자 뒤늦게 ‘거짓말’ 시인

국정원, 비판글 작성 증거 나오자 뒤늦게 ‘거짓말’ 시인
애초 “김씨 업무 종북글 추적” 입장 바꿔 “‘대북심리전’ 위해…” 해명
이정희 후보 비방글 및 MB정부 홍보글 ‘대북심리전’ 연관성 설명못해

[한겨레] 박현철 기자 | 등록 : 2013.01.31 11:40 | 수정 : 2013.02.01 10:07


▲ 18대 대선 당시 불거진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아무개씨(29·오른쪽)가 25일 오후 3차 소환 조사를 마친 뒤 변호인과 함께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29)씨가 진보 성향의 ‘오늘의 유머’ 누리집에 대선 야당후보를 비판하는 내용 등 91개 글을 올렸다(<한겨레> 1월31일치 1면)는 보도가 나가자 국정원은 31일 “대북심리전 활동을 위한 글이지, 정치적 목적으로 올린 글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동안 국정원은 경찰이 발표한 ‘개인적인 찬반 표시’만을 인정했을 뿐, 김씨가 직접 쓴 글은 없다고 주장해 왔다. 게시글 작성 등 김씨의 인터넷 활동이 국정원의 ‘업무’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요 쟁점에 대한 여론조작을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펼친 게 아니냐는 의혹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게 됐다.

국정원은 이날 오전 ‘한겨레신문 보도에 대한 국정원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내어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글은 김씨가 북한 아이피(IP)로 작성된 글들이 출몰하고 있는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북한 찬양·미화 등 선전선동에 대응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쓴 글들이 ‘대북심리전’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이다. 이는 “김씨의 업무는 (‘오늘의 유머’ 누리집의) 종북글 추적이 주 임무”라는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국정원은 김씨의 온라인 활동이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예로 김씨가 직접 쓴 글들을 제시했다. 김씨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수십년간 핵·미사일 개발에 들일 돈은 있으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 밥 먹일 돈은 없다는 게 아이러니”라고 하거나, 대법원이 김정일에게 생일 축하 메일을 보낸 행위에 대해 국보법 위반 판결을 내린 것을 두고 “상식적으로 당연한 판단”이라고 썼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러한 글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게재했다고 오도하는 것은 정보기관의 대북심리전 활동을 위축시킴으로서 북한이 우리 사이버 공간에서 더욱 활개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줄 수 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종북글 추적이 주 임무’라고 밝혔던 국정원의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하지 않았다. 아울러 △평일 업무 시간만 골라 게시글 작성 및 찬반 표시 활동을 한 점 △북한 문제 외에도 야당 의원 비판, 이명박 대통령 칭송, 4대강 사업 홍보, 해군기지 건설 옹호 등에 대한 글을 지속적·반복적으로 올린 점 등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았다.

다만 ‘야당 대선 후보 비판 글을 썼다’는 <한겨레> 보도에 대해 “김씨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인터넷 댓글을 게재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관련 보도에서, 문재인 후보가 지난해 11월19일 기자협회 주최 토론회에 나와 “조건 없이 금강산 관광을 즉각 재개하겠다”고 한 다음날 김씨가 “금강산 관광 가보고 싶긴 하지만 목숨을 걸고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썼다고 밝혀 적었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4일 대선후보 토론회 직후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겨냥해 김씨가 작성한 글에 대해서도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김씨는 이 글에서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조차 대한민국을 남쪽 정부라고 표현하는 지경”이라며 사실상 이 후보를 특정해 비판했다.

국정원은 김씨의 게시글 작성 등에 대해 “인터넷상의 정상적 대북심리전 활동과정에서 작성·게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이 48번째 해외순방, MB는 진짜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스타일인 듯” 등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의 정책을 홍보·칭송하는 김씨의 글이 ‘대북 심리전’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국정원은 “북한은 한국에서 입수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다양한 국내 사이트에 우리 누리꾼인 것처럼 가입한 뒤 정부 비방 동영상이나 사진, 댓글 등을 통해 유언비어와 흑색선전을 무차별 확산하고 있다. 북한의 사이버 선전선동에 대응하여 국민들의 혼란을 예방하고,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는 대북심리전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인터넷에서 게시글 작성 및 찬반 표시 등의 방식으로 ‘조직적인 대북심리전’을 광범위하게 펼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고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대목이다.


출처 : 국정원, 비판글 작성 증거 나오자 뒤늦게 ‘거짓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