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친절한 삼성 기사는 눈물 흘려요
[토요판] 뉴스분석 왜?
<2>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조 결성
[한겨레] 김민경 기자 | 등록 : 2013.07.12 19:45 | 수정 : 2013.07.12 21:00
▶ 지난봄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를 찾았습니다. 빠른 업무처리와 친절한 응대에 짜증은 잊히고 감동이 남았죠. 저처럼 누구나 친절했던 삼성의 애프터서비스(AS)의 기억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8일 발표된 ‘2013년 한국산업의 서비스품질지수(KSQI)’ 고객 접점 부문에서 최고 점수를 받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서비스 기사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에 시달리며 남몰래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푸른색 삼성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차려입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출근 직후 삼성이 배정해놓은 하루치 업무를 받아 일터로 나갔고, 고객이 지급한 서비스 요금은 곧바로 삼성에 보냈다. 삼성이 말한 ‘또 하나의 가족’이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면 삼성의 가족이면서 동시에 삼성의 가족이 아닌, 위영일(43)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센터지회 준비위원장과 그의 동료를 일컫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11일 오전, 위영일 위원장은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23곳) 직원 486명을 대표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 섰다. 자신을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닌 진정한 삼성전자서비스 가족으로 받아달라는 외침, 곧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위해서였다.
비수기에 빚내 살다 성수기에 벌어 막아
위영일 위원장과 ‘삼성’의 인연은 다소 복잡하다. 그 시작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가 찾아간 업체가 삼성전자 협력업체였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전기통신을 전공했어요. 전자제품 수리나 개구리 해부처럼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했거든요. 공부를 못해서 의사는 못 됐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기계를 다루는 일은 자신 있었어요.”
컴퓨터 유지·보수업체를 따로 차리며 1년 만에 그만뒀던 ‘삼성’을 다시 찾은 건 2003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영향이 컸다. 가게 문을 닫고 찾아간 ‘삼성’은 그사이 삼성전자가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로 바뀐 상태였다. 삼성전자는 1998년 10월 27일 고객 서비스 전담 부서였던 서비스사업부를 따로 떼어 자본금 300억 원 규모의 별도 법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세웠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티브이 등 삼성전자가 만든 각종 제품의 수리 및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는 전국 98곳(지점 기준)의 서비스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각각의 서비스센터는 도급 계약을 맺은 105곳 협력업체(2011년 기준)를 통해 삼성 제품의 수리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만나는 삼성전자의 애프터서비스(AS) 기사는 대부분 삼성이 아니라 협력업체의 직원이다. 위영일 위원장도 정확히 말하면 ‘동래프리미엄서비스’라는 업체 소속이었다.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규모는 1만여 명(삼성 주장 6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사와 협력업체 직원 간에 임금과 처우 등에서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위영일 위원장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실 가운데 하나는 먹고살겠다고 시작한 일이 정작 돈이 안 된다는 현실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 30분까지 삼성전자서비스센터로 출근했다. 하루 업무는 9시 시작이었다. 수시로 쏟아지는 신제품에 관한 교육은 9시 이전에 이뤄져야 했다. 가끔 교육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출근 시간은 많이 늦춰지지 않았다. 8시 10분 아침조회가 있었다. 출근 이후 오전 9시 전까지 1시간 30분 안팎의 ‘근무 시간’에 대한 임금은 없었다.
협력업체와 근로계약 맺었지만 삼성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고 삼성전자의 제품을 수리했다
시급 아닌 건수로 월급을 받고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했다.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업무를 지시하고 평가했으며 월급까지 실질적으로 지급했다
노조 설립에 나선 노동자들은 원청의 노동자와 다름없다며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서비스 기사의 모든 업무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지급한 개인용휴대단말기(PDA)나 휴대전화의 애플리케이션 ‘애니존’(Anyzone)을 통해 들어왔다. 이동시간까지 포함하면 1건의 서비스 요청건을 처리하는 데 최소 1시간은 필요하지만, 성수기인 여름에는 30분 안에 한 건을 처리해야 할 때도 있었다. 여름엔 습기 탓인지 에어컨, 냉장고 등 전자제품의 고장도 잦고 대부분 ‘긴급’을 요하는 제품 수리 요청이 폭주하곤 했다. 작업을 명령하는 휴대단말기는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도 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밥은 김밥, 햄버거로 차 안에서 때우거나 건너뛰기 일쑤였다. 호출이 끊이지 않으면 밤 12시까지도 일을 해야 했다. 휴일도 일정하지 않았다. 토요일은 기본적으로 나와야 했고, 일요일에도 일이 있으면 출근했다.
“성수기인 6~8월에는 입 돌아갈 정도로 일해요. 심할 때는 4개월 동안 하루도 못 쉰 적도 있어요.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이 비수기 때 150만~200만 원, 성수기 때 300만~500만 원이에요. 거기서 차 기름값·수리비, 식비로 매달 50만 원을 쓰게 되고요. 생활이 안 되니까 비수기 때는 빚내서 살다가 성수기 때 벌어서 막아요. 당연히 저축은 꿈도 못 꾸죠.” 10년을 일한 그는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2만 원짜리 단칸방에 혼자 살고 있다.
위영일 위원장이 2012년 동래프리미엄서비스와 함께 작성한 근로계약서상 근로시간은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였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1일 8시간, 1주 40시간 노동을 초과할 수 없고, 초과하더라도 한도는 한 주 12시간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실제 그의 노동시간은 근로계약서와 다를 때가 많았다. 엄연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 할 수 있다. 또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이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주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당연히 점심시간은 보장되지 않았다. 은수미 민주당 국회의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 권영국 변호사 등은 삼성전자서비스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고용노동부는 문제가 제기된 뒤 지난달 24일부터 한 달간 수시 근로감독을 벌이고 있지만, 특별 근로 감독보다는 강도가 낮아 소극적인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국에서 하소연과 응원글 모여드는 ‘밴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가 입을 모아 제기하는 불만은 불투명한 임금 산정 방식이다. 위영일 위원장의 지난 한 해 급여명세서를 보면 기본급은 97만6320원, 94만3776원, 91만3332원 등으로 들쑥날쑥했다. 차량유지비와 식대보조금은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었다. 급여명세서를 분석한 김태오 노무사가 말했다. “임금 산정이 일한 시간이 아니라 일한 건수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근로기준법은 임금은 시간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걸 어긴 거죠. 대신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의 도급 계약서에 있는 제품별 수수료가 기준이 됐어요. 월급을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이 안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월급은 ‘건당’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무 수당도 없었다.
위영일 위원장이 ‘또 하나의 가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고통은 그만의 몫은 아니었다. 서울의 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박영수(가명)씨는 말했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 애들은 늘 자고 있습니다. 성수기인 한여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애들 키가 쑥쑥 자라 있더라고요. 애들이 그래요. ‘아빠는 거짓말쟁이.’ 빨리 온다는 약속도, 놀러 간다는 약속도 늘 못 지켰으니까요.”
네이버가 제공하는 폐쇄형 에스엔에스(SNS) ‘밴드’(BAND)의 ‘전국삼성서비스 노동자 모임’에 올라온 아내들의 글에서도 돈과 근로 시간에 대한 하소연이 많았다. ‘신랑은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이가 깨어 있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가 잘 때 출근해서 잘 때 퇴근을 하기 때문이죠. 저희 아기는 아빠라고 부를 줄 모릅니다. 정규직 바라지도 않습니다.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결혼하고 신랑이 회사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7시에 나가 10시나 돼야 들어오는데 월급은 날이 갈수록 줄고. 혹시나 비상금을 챙겨두는 건가. 신혼 초에는 정말 많이 싸웠죠. 이번 일 터지고 정말 응원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박영수씨의 아내도 글을 올렸다. ‘남편이 힘들게 일한다는 사실을 10년을 함께 살면서도 몰랐습니다. 철없이 왜 늦느냐고 전화해 짜증내고, 월급은 왜 이렇게 작냐고.’
“제가 어느 회사 직원처럼 보여요?”
7월 초 만난 박씨는 삼성 로고가 찍힌 작업복을 입고, 삼성전자서비스의 신분증을 목에 건 채 물었다. 고장 난 전자제품을 수리하러 집으로 찾아가면 사람들은 그가 삼성 직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정규직이 아닌 ‘서자’,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위영일 위원장과 함께 ‘해고’된 이영진(가명·41)씨는 함께 일하는 정규직 기사들을 보면 ‘모멸감’을 느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월급이 2배나 더 많아요. 점심시간에는 콜을 안 받아도 되고, 퇴근시간에 퇴근도 할 수 있죠. 나는 일을 더 많이 하는데 월급은 더 적어요.”
박영수씨가 가족을 위해, 이영진씨가 ‘준법 근로’를 위해 만든 노조의 씨앗은 지난해 부산 동래센터에서 싹텄다. 시작은 한 후배의 눈물이었다. “2년 전에 야유회를 갔는데 후배가 펑펑 우는 거예요. 100만 원 벌어서 4인 가족 살기 힘들다고. 후배들이 선배 욕 많이 했었거든요. 시키는 대로만 일하고 부당한 거 눈감아서 우리도 이렇게 사는 거 아니냐고. 부끄러웠어요. 제 나이에 앞으로 죽자 사자 일한다고 해도 부자 되긴 그른 것 같으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들었죠.” 위영일 위원장이 말했다. 그때부터 법을 찾아봤다. 그 뒤 노사협의회를 통해 찾아본 법과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답변을 근거로 ‘최저임금을 달라, 연장근무 수당을 달라, 주 5일 근무를 시켜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수개월을 버티던 협력업체 사장도 ‘법’을 들이미니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승소 땐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 고용하는 정규직
“5월 초에 전국 교육 다녀온 직원들이 부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못 받은 돈이 있는데, 거기는 소송이 아니라 사장한테 요청해서 받았다고. 너무 신기했죠. 우리도 받고 싶었고요. 그래서 연락을 했어요.” 부산 소식에 놀랐던 건 박영수씨만이 아니었다. 서로 얼굴도 모르던 전국 105곳 협력센터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밴드’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5월24일 위영일 위원장과 이영진씨의 협력업체가 ‘적자’라며 폐업했다. 다른 직원들은 새로 생긴 협력업체에 흡수됐지만 두 사람은 제외됐다. 사실상 해고된 것이다. 근로기준법대로 요구한 사안을 협력업체 사장은 들어줄 능력이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바뀔 수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협력업체는 경영의 독립성이 없어요. 사장은 대부분 삼성전자서비스의 임직원 출신이고, 오직 삼성전자서비스의 사업만을 대행하고 있죠.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기사들에게 업무 지시도 하고 평가도 해요.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곳도 원청이고요. 제품을 고치고 받은 수수료는 모두 원청에 입금되고, 협력업체는 원청이 정한 수수료 리스트에 따라 월급을 내요.” 민변의 류하경 변호사가 지적했다.
2008년 7월10일 대법원 판례를 보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기준은 △사업주로서 독자성 없는 원고용주(도급업체) △노동자와 원청의 종속적 관계 △원청의 실질적인 임금 지급 △근로제공의 당사자가 원청인지 여부다. 변호인단은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직원과의 관계가 이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은 근로자 지위 확인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양자 간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또는 불법 파견을 인정받으면, 소송을 제기한 이들은 그 즉시 삼성전자서비스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이 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독립된 법인인 협력업체는 사장이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있기 때문에 인사, 경영권 개입과 불법 파견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추진 사실이 언론 등에 보도되자 ‘노조에 가입하지 말라’거나, ‘가입 때는 폐업한다’는 식의 협력업체 사장의 협박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졌다. “사장이 ‘삼성은 무노조 경영이니 우리도 무노조로 따라가야 한다’고 했어요. 신문사, 방송사, 시민단체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가입하면 바로 알고 해고조치 한다고도요.” 박영수씨가 말했다. 6월18일에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협력업체 사장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본사 직원이 ‘밴드’에 가입한 협력업체 직원들의 명단을 보여주면서 탈퇴하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사실도 보도됐다. 국회의원과 민변 노동위는 고용노동부와 수원지법에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위영일 위원장이 휴대전화에 설치된 ‘영한노동법전’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줬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을 늘 보기 위해서 설치한 앱이다. 위영일 위원장이 말했다. “법대로 하려고 매일 이걸 봐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지 삼성 공화국 국민이 아니에요. 그래서 삼성의 법이 아닌 대한민국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요. 전태일 열사의 말처럼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는 게 우리 요구입니다. 삼성을 ‘무노조 신화’라고 하는데, 우리는 좀 달라요. 여기서 100만 원 버나, 주유소 아르바이트해서 그만큼 버나 똑같죠. 살려고 하는 겁니다.” 노조의 공식 출범을 알리는 창립 총회는 14일 오후 2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출처 : 당신의 친절한 삼성 기사는 눈물 흘려요
[토요판] 뉴스분석 왜?
<2>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조 결성
[한겨레] 김민경 기자 | 등록 : 2013.07.12 19:45 | 수정 : 2013.07.12 21:00
▲ 국회의원, 노동계 등이 참여한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고용 근절 및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오른쪽 둘째가 위영일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센터지회 준비위원장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
▶ 지난봄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를 찾았습니다. 빠른 업무처리와 친절한 응대에 짜증은 잊히고 감동이 남았죠. 저처럼 누구나 친절했던 삼성의 애프터서비스(AS)의 기억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8일 발표된 ‘2013년 한국산업의 서비스품질지수(KSQI)’ 고객 접점 부문에서 최고 점수를 받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서비스 기사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에 시달리며 남몰래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푸른색 삼성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차려입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출근 직후 삼성이 배정해놓은 하루치 업무를 받아 일터로 나갔고, 고객이 지급한 서비스 요금은 곧바로 삼성에 보냈다. 삼성이 말한 ‘또 하나의 가족’이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면 삼성의 가족이면서 동시에 삼성의 가족이 아닌, 위영일(43)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센터지회 준비위원장과 그의 동료를 일컫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11일 오전, 위영일 위원장은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23곳) 직원 486명을 대표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 섰다. 자신을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닌 진정한 삼성전자서비스 가족으로 받아달라는 외침, 곧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위해서였다.
비수기에 빚내 살다 성수기에 벌어 막아
컴퓨터 유지·보수업체를 따로 차리며 1년 만에 그만뒀던 ‘삼성’을 다시 찾은 건 2003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영향이 컸다. 가게 문을 닫고 찾아간 ‘삼성’은 그사이 삼성전자가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로 바뀐 상태였다. 삼성전자는 1998년 10월 27일 고객 서비스 전담 부서였던 서비스사업부를 따로 떼어 자본금 300억 원 규모의 별도 법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세웠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티브이 등 삼성전자가 만든 각종 제품의 수리 및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는 전국 98곳(지점 기준)의 서비스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각각의 서비스센터는 도급 계약을 맺은 105곳 협력업체(2011년 기준)를 통해 삼성 제품의 수리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만나는 삼성전자의 애프터서비스(AS) 기사는 대부분 삼성이 아니라 협력업체의 직원이다. 위영일 위원장도 정확히 말하면 ‘동래프리미엄서비스’라는 업체 소속이었다.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규모는 1만여 명(삼성 주장 6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사와 협력업체 직원 간에 임금과 처우 등에서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위영일 위원장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실 가운데 하나는 먹고살겠다고 시작한 일이 정작 돈이 안 된다는 현실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 30분까지 삼성전자서비스센터로 출근했다. 하루 업무는 9시 시작이었다. 수시로 쏟아지는 신제품에 관한 교육은 9시 이전에 이뤄져야 했다. 가끔 교육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출근 시간은 많이 늦춰지지 않았다. 8시 10분 아침조회가 있었다. 출근 이후 오전 9시 전까지 1시간 30분 안팎의 ‘근무 시간’에 대한 임금은 없었다.
협력업체와 근로계약 맺었지만 삼성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고 삼성전자의 제품을 수리했다
시급 아닌 건수로 월급을 받고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했다.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업무를 지시하고 평가했으며 월급까지 실질적으로 지급했다
노조 설립에 나선 노동자들은 원청의 노동자와 다름없다며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서비스 기사의 모든 업무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지급한 개인용휴대단말기(PDA)나 휴대전화의 애플리케이션 ‘애니존’(Anyzone)을 통해 들어왔다. 이동시간까지 포함하면 1건의 서비스 요청건을 처리하는 데 최소 1시간은 필요하지만, 성수기인 여름에는 30분 안에 한 건을 처리해야 할 때도 있었다. 여름엔 습기 탓인지 에어컨, 냉장고 등 전자제품의 고장도 잦고 대부분 ‘긴급’을 요하는 제품 수리 요청이 폭주하곤 했다. 작업을 명령하는 휴대단말기는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도 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밥은 김밥, 햄버거로 차 안에서 때우거나 건너뛰기 일쑤였다. 호출이 끊이지 않으면 밤 12시까지도 일을 해야 했다. 휴일도 일정하지 않았다. 토요일은 기본적으로 나와야 했고, 일요일에도 일이 있으면 출근했다.
“성수기인 6~8월에는 입 돌아갈 정도로 일해요. 심할 때는 4개월 동안 하루도 못 쉰 적도 있어요.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이 비수기 때 150만~200만 원, 성수기 때 300만~500만 원이에요. 거기서 차 기름값·수리비, 식비로 매달 50만 원을 쓰게 되고요. 생활이 안 되니까 비수기 때는 빚내서 살다가 성수기 때 벌어서 막아요. 당연히 저축은 꿈도 못 꾸죠.” 10년을 일한 그는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2만 원짜리 단칸방에 혼자 살고 있다.
위영일 위원장이 2012년 동래프리미엄서비스와 함께 작성한 근로계약서상 근로시간은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였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1일 8시간, 1주 40시간 노동을 초과할 수 없고, 초과하더라도 한도는 한 주 12시간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실제 그의 노동시간은 근로계약서와 다를 때가 많았다. 엄연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 할 수 있다. 또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이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주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당연히 점심시간은 보장되지 않았다. 은수미 민주당 국회의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 권영국 변호사 등은 삼성전자서비스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고용노동부는 문제가 제기된 뒤 지난달 24일부터 한 달간 수시 근로감독을 벌이고 있지만, 특별 근로 감독보다는 강도가 낮아 소극적인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국에서 하소연과 응원글 모여드는 ‘밴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가 입을 모아 제기하는 불만은 불투명한 임금 산정 방식이다. 위영일 위원장의 지난 한 해 급여명세서를 보면 기본급은 97만6320원, 94만3776원, 91만3332원 등으로 들쑥날쑥했다. 차량유지비와 식대보조금은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었다. 급여명세서를 분석한 김태오 노무사가 말했다. “임금 산정이 일한 시간이 아니라 일한 건수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근로기준법은 임금은 시간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걸 어긴 거죠. 대신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의 도급 계약서에 있는 제품별 수수료가 기준이 됐어요. 월급을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이 안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월급은 ‘건당’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무 수당도 없었다.
위영일 위원장이 ‘또 하나의 가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고통은 그만의 몫은 아니었다. 서울의 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박영수(가명)씨는 말했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 애들은 늘 자고 있습니다. 성수기인 한여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애들 키가 쑥쑥 자라 있더라고요. 애들이 그래요. ‘아빠는 거짓말쟁이.’ 빨리 온다는 약속도, 놀러 간다는 약속도 늘 못 지켰으니까요.”
네이버가 제공하는 폐쇄형 에스엔에스(SNS) ‘밴드’(BAND)의 ‘전국삼성서비스 노동자 모임’에 올라온 아내들의 글에서도 돈과 근로 시간에 대한 하소연이 많았다. ‘신랑은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이가 깨어 있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가 잘 때 출근해서 잘 때 퇴근을 하기 때문이죠. 저희 아기는 아빠라고 부를 줄 모릅니다. 정규직 바라지도 않습니다.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결혼하고 신랑이 회사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7시에 나가 10시나 돼야 들어오는데 월급은 날이 갈수록 줄고. 혹시나 비상금을 챙겨두는 건가. 신혼 초에는 정말 많이 싸웠죠. 이번 일 터지고 정말 응원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박영수씨의 아내도 글을 올렸다. ‘남편이 힘들게 일한다는 사실을 10년을 함께 살면서도 몰랐습니다. 철없이 왜 늦느냐고 전화해 짜증내고, 월급은 왜 이렇게 작냐고.’
“제가 어느 회사 직원처럼 보여요?”
7월 초 만난 박씨는 삼성 로고가 찍힌 작업복을 입고, 삼성전자서비스의 신분증을 목에 건 채 물었다. 고장 난 전자제품을 수리하러 집으로 찾아가면 사람들은 그가 삼성 직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정규직이 아닌 ‘서자’,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위영일 위원장과 함께 ‘해고’된 이영진(가명·41)씨는 함께 일하는 정규직 기사들을 보면 ‘모멸감’을 느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월급이 2배나 더 많아요. 점심시간에는 콜을 안 받아도 되고, 퇴근시간에 퇴근도 할 수 있죠. 나는 일을 더 많이 하는데 월급은 더 적어요.”
박영수씨가 가족을 위해, 이영진씨가 ‘준법 근로’를 위해 만든 노조의 씨앗은 지난해 부산 동래센터에서 싹텄다. 시작은 한 후배의 눈물이었다. “2년 전에 야유회를 갔는데 후배가 펑펑 우는 거예요. 100만 원 벌어서 4인 가족 살기 힘들다고. 후배들이 선배 욕 많이 했었거든요. 시키는 대로만 일하고 부당한 거 눈감아서 우리도 이렇게 사는 거 아니냐고. 부끄러웠어요. 제 나이에 앞으로 죽자 사자 일한다고 해도 부자 되긴 그른 것 같으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들었죠.” 위영일 위원장이 말했다. 그때부터 법을 찾아봤다. 그 뒤 노사협의회를 통해 찾아본 법과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답변을 근거로 ‘최저임금을 달라, 연장근무 수당을 달라, 주 5일 근무를 시켜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수개월을 버티던 협력업체 사장도 ‘법’을 들이미니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승소 땐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 고용하는 정규직
“5월 초에 전국 교육 다녀온 직원들이 부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못 받은 돈이 있는데, 거기는 소송이 아니라 사장한테 요청해서 받았다고. 너무 신기했죠. 우리도 받고 싶었고요. 그래서 연락을 했어요.” 부산 소식에 놀랐던 건 박영수씨만이 아니었다. 서로 얼굴도 모르던 전국 105곳 협력센터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밴드’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5월24일 위영일 위원장과 이영진씨의 협력업체가 ‘적자’라며 폐업했다. 다른 직원들은 새로 생긴 협력업체에 흡수됐지만 두 사람은 제외됐다. 사실상 해고된 것이다. 근로기준법대로 요구한 사안을 협력업체 사장은 들어줄 능력이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바뀔 수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협력업체는 경영의 독립성이 없어요. 사장은 대부분 삼성전자서비스의 임직원 출신이고, 오직 삼성전자서비스의 사업만을 대행하고 있죠.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기사들에게 업무 지시도 하고 평가도 해요.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곳도 원청이고요. 제품을 고치고 받은 수수료는 모두 원청에 입금되고, 협력업체는 원청이 정한 수수료 리스트에 따라 월급을 내요.” 민변의 류하경 변호사가 지적했다.
2008년 7월10일 대법원 판례를 보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기준은 △사업주로서 독자성 없는 원고용주(도급업체) △노동자와 원청의 종속적 관계 △원청의 실질적인 임금 지급 △근로제공의 당사자가 원청인지 여부다. 변호인단은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직원과의 관계가 이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은 근로자 지위 확인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양자 간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또는 불법 파견을 인정받으면, 소송을 제기한 이들은 그 즉시 삼성전자서비스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이 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독립된 법인인 협력업체는 사장이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있기 때문에 인사, 경영권 개입과 불법 파견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추진 사실이 언론 등에 보도되자 ‘노조에 가입하지 말라’거나, ‘가입 때는 폐업한다’는 식의 협력업체 사장의 협박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졌다. “사장이 ‘삼성은 무노조 경영이니 우리도 무노조로 따라가야 한다’고 했어요. 신문사, 방송사, 시민단체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가입하면 바로 알고 해고조치 한다고도요.” 박영수씨가 말했다. 6월18일에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협력업체 사장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본사 직원이 ‘밴드’에 가입한 협력업체 직원들의 명단을 보여주면서 탈퇴하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사실도 보도됐다. 국회의원과 민변 노동위는 고용노동부와 수원지법에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위영일 위원장이 휴대전화에 설치된 ‘영한노동법전’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줬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을 늘 보기 위해서 설치한 앱이다. 위영일 위원장이 말했다. “법대로 하려고 매일 이걸 봐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지 삼성 공화국 국민이 아니에요. 그래서 삼성의 법이 아닌 대한민국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요. 전태일 열사의 말처럼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는 게 우리 요구입니다. 삼성을 ‘무노조 신화’라고 하는데, 우리는 좀 달라요. 여기서 100만 원 버나, 주유소 아르바이트해서 그만큼 버나 똑같죠. 살려고 하는 겁니다.” 노조의 공식 출범을 알리는 창립 총회는 14일 오후 2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출처 : 당신의 친절한 삼성 기사는 눈물 흘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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