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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당신의 삶은 노조와 상관이 없을까

당신의 삶은 노조와 상관이 없을까
[민중의소리] 엄미야(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 | 최종업데이트 2015-11-09 14:51:12


역사와 언론, 언론과 역사. 요즘 가장 뜨겁고 치열한 분야다. 내가 잘 아는 두 사람이 이 두 곳에서 독립투사처럼 싸우고 있다. 최건일과 윤근혁. 한 사람은 언로노조 KBS본부에서 집행부를 하고 있고, 한 사람은 전교조에서 상근을 하고 있다.

나와 알고 지낸지 20년은 된 사람들이다. 둘 다 학교 때 배운 글 실력으로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또 다른 공통점을 찾자면 모두 학생운동을 하긴 했으나 그리 부각되는 인물들은 아니었다는 정도이겠다.

내 글에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실명을 올린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이 둘에게 미안함을 무릅쓰고 실명을 거론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의 가족도, 당신의 동료도 투사가 될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야당 의원들이 지난달 25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준비하는 교육부의 TF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사무실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혜화동 국립국제교육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윤근혁.

초등학교 교사이고, 두 아들의 아빠이다. 지금은 전교조에 파견을 나와 있으면서 전교조 기관지 교육희망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예전엔 오마이뉴스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글을 쓰던 그가 최근 매일 기사를 쓰고 있다. 교육전문기자로 쓴 국정교과서 관련 기사들인데, 최근 핫한 이슈이다 보니 대부분 특종이다. 주류 언론사들이 그의 기사를 인용해가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지만 보수단체에게 소송을 당하고 문자로 협박을 당하는 것도 최근 그의 일상이 됐다.

“독립투사 같으요. 몸조심해가면서 하쇼”라는 문자에 그가 “불쌍하면 밥 사라”는 짤막한 답장을 보내왔다.

최건일.

이 친구는 정말 학생운동 비주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졸업 후 잠깐 소식이 끊기고 몇 년이 지나서 KBS에 입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9시 뉴스에서 몇 번 얼굴을 보기는 했는데 어느 날 국제부로 옮겼다고 했고, 그리고 어느 날 노조 집행부를 하게 됐다고 했다.

주류언론 기자로서 대한민국사회에서 누리는 혜택에 만족하고 있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독립언론으로 갈아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을 용기 없는 현실주의자에 빗대 이야기하기도 했다.

처음에 KBS에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노조와는 전혀 인연이 없을 친구 같아 노조의 ‘노’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지금 새노조(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제2노조)에서 집행부를 하고 있다니 놀랠 ‘노’자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KBS 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고 이사회에 길환영 사장 해임을 촉구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조용한 소시민에서 ‘투사’로 변한 두 사람

둘 다 조용히 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사회 적응자’가 되어 조용히 생업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교사와 기자. 굳이 가시밭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고, 그럴 생각도 없었던 사람들. ‘운동’, ‘노조’ 이런 단어들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보이던 이 둘이 지금 전투의 가장 한 가운데 서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거꾸로 되돌리기 정책에 최선두에 서있는 전교조, 그리고 2009년 당시 기자협회로부터 93% 불신임을 받았던 고대영 사장 후보자 내정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KBS. 역사와 언론. 투쟁의 최전선에 서게 된 두 사람.

우리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 미리 예견했었다. 이명박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며, 모든 국민이 투사가 될 것이라고. 이제 그러한 일들이 눈앞에서, 내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다. 아주 구체적으로. 당신이 가정주부라서, 평범한 회사원이라서, 학생이라서, 사업자라서 골치 아픈 시위니, 정치투쟁이니, 노동조합이니 하는 것들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가?

보수정부는 소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조차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하지 않았던가. 당신의 삶도 예외일 수는 없다. 박근혜가 곧 당신을 투사로 만들 것이다.


출처  [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당신의 삶은 노조와 상관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