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6-07-07 18:59:05 | 수정 : 2016-07-07 18:59:05
개인적으로 인류 문명의 역사 7000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그것은 성벽의 역사였다”라고 말하고 싶다. 7000년의 역사 속에 지배계급은 늘 안전하고 안락한 성벽 안에서 살았고, 피지배계급은 늘 그 성벽 밖에서 굶주려야 했다.
아마 7000년의 역사에서 그 성벽이 피지배계급을 향해 열린 적은 단 두 번뿐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등장한 자본가 계급이 성문을 열어젖힌 첫 번째 계급일 것이다. ‘유산자 계급’을 뜻하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라는 단어의 원뜻은 ‘성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원래는 성 밖에 살면서 귀족들에게 천대받는 공장질이나 하던 자본가 계급은 막강한 돈의 힘으로 마침내 성문을 열어젖히고 ‘성안에서 살 권리’를 인정받았다.
두 번째로 성벽을 열어젖힌 건 노동자 계급이었다. 역사적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자본가 계급이 고분고분한 방법으로는 결코 성벽을 열어 줄 의지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방식은 당시로는 매우 유용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노동자 계급은 다시 성 밖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1980년 홀연히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성벽의 높이를 더 높여 놓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져도, 자본가 계급의 부도덕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성벽은 더 공고해져 갔다.
오슬로 대학교 박노자 교수가 최근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냈다. 그런데 이 책의 소제목이 매우 도발적이다.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헬조선의 현실은 암울을 넘어 암흑에 가까운데, 왜 한국 민중들은 맞서 싸우지 않는가? 이것이 박노자 교수가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박 교수는 그 답을 ‘파편화된 개인’에서 찾는다.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해 세상을 바꾸려는 희망을 품기보다 어떻게든 나만, 혹은 내 가족만 이 헬조선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생활하는 박 교수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를 변혁할 수 있을까요?”가 아니라 “노르웨이 살기 좋아요? 이민은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나요?”라고 한다.
나는 가끔 성벽 위에서 물고기 밥 주듯이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지배계급의 모습을 본다. 성벽 밖에는 ‘혹시 저 성문이 나에게는 열리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바글거리는 ‘성 밖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배계급은 결단코 그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지만, 가끔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것으로 성 밖 사람들을 달랜다. 성 밖에서 그 빵 부스러기를 받아든 사람들은 믿는다. 언젠가 저 성문이 나에게만은, 혹은 내 가족에게만은 열릴 것이라고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 성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인류 역사 7000년 동안 단 두 번(그것도 한 번은 무력을 통해서)만 열린 성문이 나와 내 가족에게만 열리는 행운이 찾아올 가능성은 너무 낮다. 그래서 성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나에게만은(다른 사람들은 빼고) 이 성문을 열어주시오”라고 외치는 일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가장 현실적이고 올바른 방법은 성 밖 사람들이 손을 잡고, 그 성문을 넘어서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 자율적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쉬운 대처 방법은 칸트가 얘기했습니다. 자신을 기만하지 마라. 내가 처한 상황을 직설적인 언어로 스스로 말하고, 남들과 공유하십시오. 대기업 노동자로서 사회적 시민권은 얻었지만, 독재 국가(대기업)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면, 자신을 기만하지 마십시오. ‘나는 독재국가의 신민’이라고 스스로 말하십시오. 그리고 ‘독립투쟁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물어보십시오.”
‘나에게만은 저 성안에서 살 기회가 생길 거야’라고 자신을 기만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헬조선 어느 구석으로 도망쳐도 헬조선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이건 어디 외국으로 이민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미 글로벌 신자유주의로 엮인 이 지구 어느 곳에도 성 밖 사람들을 따뜻하게 성안으로 맞아줄 국가는 없다.
길은 하나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수많은 사람과 연대해 성문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꿈을 좇는 대신, 현실을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한다.”
출처 [기자수첩]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6-07-07 18:59:05 | 수정 : 2016-07-07 18:59:05
개인적으로 인류 문명의 역사 7000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그것은 성벽의 역사였다”라고 말하고 싶다. 7000년의 역사 속에 지배계급은 늘 안전하고 안락한 성벽 안에서 살았고, 피지배계급은 늘 그 성벽 밖에서 굶주려야 했다.
아마 7000년의 역사에서 그 성벽이 피지배계급을 향해 열린 적은 단 두 번뿐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등장한 자본가 계급이 성문을 열어젖힌 첫 번째 계급일 것이다. ‘유산자 계급’을 뜻하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라는 단어의 원뜻은 ‘성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원래는 성 밖에 살면서 귀족들에게 천대받는 공장질이나 하던 자본가 계급은 막강한 돈의 힘으로 마침내 성문을 열어젖히고 ‘성안에서 살 권리’를 인정받았다.
두 번째로 성벽을 열어젖힌 건 노동자 계급이었다. 역사적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자본가 계급이 고분고분한 방법으로는 결코 성벽을 열어 줄 의지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방식은 당시로는 매우 유용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노동자 계급은 다시 성 밖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1980년 홀연히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성벽의 높이를 더 높여 놓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져도, 자본가 계급의 부도덕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성벽은 더 공고해져 갔다.
▲ 오슬로 대학교 박노자 교수
박 교수는 그 답을 ‘파편화된 개인’에서 찾는다.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해 세상을 바꾸려는 희망을 품기보다 어떻게든 나만, 혹은 내 가족만 이 헬조선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생활하는 박 교수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를 변혁할 수 있을까요?”가 아니라 “노르웨이 살기 좋아요? 이민은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나요?”라고 한다.
나는 가끔 성벽 위에서 물고기 밥 주듯이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지배계급의 모습을 본다. 성벽 밖에는 ‘혹시 저 성문이 나에게는 열리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바글거리는 ‘성 밖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배계급은 결단코 그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지만, 가끔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것으로 성 밖 사람들을 달랜다. 성 밖에서 그 빵 부스러기를 받아든 사람들은 믿는다. 언젠가 저 성문이 나에게만은, 혹은 내 가족에게만은 열릴 것이라고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 성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인류 역사 7000년 동안 단 두 번(그것도 한 번은 무력을 통해서)만 열린 성문이 나와 내 가족에게만 열리는 행운이 찾아올 가능성은 너무 낮다. 그래서 성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나에게만은(다른 사람들은 빼고) 이 성문을 열어주시오”라고 외치는 일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가장 현실적이고 올바른 방법은 성 밖 사람들이 손을 잡고, 그 성문을 넘어서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 자율적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쉬운 대처 방법은 칸트가 얘기했습니다. 자신을 기만하지 마라. 내가 처한 상황을 직설적인 언어로 스스로 말하고, 남들과 공유하십시오. 대기업 노동자로서 사회적 시민권은 얻었지만, 독재 국가(대기업)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면, 자신을 기만하지 마십시오. ‘나는 독재국가의 신민’이라고 스스로 말하십시오. 그리고 ‘독립투쟁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물어보십시오.”
‘나에게만은 저 성안에서 살 기회가 생길 거야’라고 자신을 기만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헬조선 어느 구석으로 도망쳐도 헬조선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이건 어디 외국으로 이민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미 글로벌 신자유주의로 엮인 이 지구 어느 곳에도 성 밖 사람들을 따뜻하게 성안으로 맞아줄 국가는 없다.
길은 하나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수많은 사람과 연대해 성문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꿈을 좇는 대신, 현실을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한다.”
출처 [기자수첩]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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