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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양승태, ‘한일 위안부 합의’마저 재판거래에

박근혜-양승태, ‘한일 위안부 합의’마저 재판거래에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 | 발행 : 2018-06-28 10:21:08 | 수정 : 2018-06-28 10:36:43


▲ 양승태 전 대법원장(좌로 부터), 유신망령 김기춘, 유신폐계 박근혜(503).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 관련 문건들을 보면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가 ‘국민 몰래 진행한 밀실 합의’라는 지적을 받았던 ‘한일 위안부 합의’마저 재판거래에 이용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재판거래 의혹 대상 사건은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알려진 김삼석·은주씨 남매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심이다. 남매간첩단 사건은 1993년 김영삼 정권 초기에 안기부 수사권 박탈을 골자로 한 안기부 개혁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당시 야권이 정권 초기 정부에 협조하는 대가로 안기부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안기부법 개정을 요구했었고,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안기부가 이 사건을 터뜨렸다.

안기부는 1993년 9월 일본에서 활동 중이던 북한 간첩에게 공작금을 지원받아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김씨 남매를 구속했다. 김씨 남매가 1992년 1월부터 1993년 5월까지 3~4차례 일본에 건너가 당시 반국가단체로 규정돼 있던 ‘한통련’ 의장 곽동의씨와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 재일본총책으로 불리던 이좌영·권용부씨 등과 만나 군사기밀문건 등을 제공하고 총 120만엔의 공작금을 지원받았다는 혐의였다. 그 당시 “안기부가 공작해 꾸민 사건”이라는 프락치의 양심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법원은 김씨 남매에게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2년을 확정 판결했다.

그로부터 20여년 후인 2014년 8월 법원은 이 사건 재심 개시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 재심 사건은 서울고법 형사1부에 배당됐다. 재판장은 이승련 부장판사(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였다. 재판부는 2015년 5월 27일 1차 공판을 시작으로, 그 해 10월 26일 결심 공판까지 총 4회 공판을 진행한 끝에 그 해 12월 4일로 선고 기일을 잡았다.

재판부는 당초 예정됐던 선고일인 12월 4일 갑자기 김씨 남매 측에 선고일이 다음달 15일로 연기됐다고 통보했다. 연기 사유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사건 쟁점이 복잡해 법리를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거나 새로운 증거가 제출돼 추가적으로 심리가 필요한 경우 아주 드물게 선고일을 연기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다만 이 사건 재판의 경우 쟁점에 비해 꽤 오랜 기간 진행돼 재판부가 법리 검토를 할 시간은 충분했다.

특히 재판부는 재심을 개시하면서 이 사건을 “영장이 늦게 발부된 사건”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이 말은 곧 재판부가 ‘안기부가 프락치를 이용해 조작한’ 이 사안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다시 들여다볼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재판부가 심리하고자 했던 사안 자체가 매우 단순했으므로, ‘복잡한 법리 검토’를 이유로 선고를 미룰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어떤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지도 않았다.

▲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위안부 합의안을 발표할 당시 모습. ⓒ김철수 기자

이렇게 이 사건 선고일이 연기된 그 달 28일 한일 정부는 갑자기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 정부 차원의 국가 배상이 아닌 민간재단을 설립해 10억엔을 위로금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의 합의였다. 양국은 ‘최종적 타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들과는 사전 논의조차 거치지 않았다. 일본에 대한 면죄부 합의, 밀실 합의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위안부 합의’와 남매간첩단 재심 사건의 연관성

그렇다면 이 재심 사건 선고일이 연기된 것과 여론의 몰매를 맞았던 ‘위안부 합의’ 사이엔 무슨 연관성이 있었던 걸까?

양승태 사법부가 이 사건 재심을 ‘위안부 합의’라는 박근혜 정부 현안과 거래했다는 의혹의 핵심 ‘고리’가 되는 인물은 사건 당사자인 김삼석씨의 부인이다. 김씨의 부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목적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상임대표다.

정대협과 윤미향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밀실에서 합의해 졸속으로 정리하고자 했던 박근혜 정부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시위.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일 간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이후 ‘합의 무효화’를 요구하는 여론이 급격히 확산됐고, 그 중심에는 정대협과 윤 대표가 있었다.

“도둑처럼 한일 정부 간에 위안부 합의가 날치기 발표됐고, 정대협 윤미향을 공격하기 위한 기사가 당사자 문제도 아닌 남편 김삼석의 남매간첩단 사건을 도구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남편이 간첩이고 윤미향은 종북이라는 굴레를 씌워 한일 합의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차단하려 했다.”(윤 대표가 6월 23일 블로그에 올린 글)

혹여 남매간첩단 사건 재심 재판부가 ‘위안부 합의’ 전에 무죄를 선고했더라면 박근혜 정부가 정대협과 윤 대표를 공격할 매개가 하나 사라지게 되는 셈이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이 사건 재심 선고일이 연기된 시점에 ‘위안부 합의’ 직후 급격히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고자 정대협 등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단체들을 반정부·종북 세력으로 매도하는 등 적극적인 여론조작 활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작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입수한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이하 ‘비서실장 지시사항’) 문건에는 “대다수 국민이 위안부 문제 뒤에 있는 정대협 등 비판세력들의 실체를 잘 모르는데, 국민들이 그 실체를 낱낱이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이 문건은 남매간첩단 사건 재심 선고일이 연기돼 다음 기일을 앞둔 시기인 2016년 1월 4일에 작성된 것이다.

같은 달 24일에 작성된 ‘비서실장 지시사항’ 문건에도 정대협 등을 언급하며 “위안부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에 참여하는 단체의 실체가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명시됐다.

이 시기에 ‘정대협의 진실을 알리는 모임’이라는 정체 불명의 단체 명의로 10여 페이지에 달하는 ‘삐라’가 전국 곳곳에 뿌려졌다. 이 삐라에는 ‘정대협이 다른 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 ‘윤미향의 남편 김삼석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과 한국외대 동문이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실제 김씨와 이 전 의원은 별다른 친분이 없는 관계였다.

당시 정대협과 관련한 여론조작 활동을 지시한 비서실장은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던 이병기 실장이었다.

여기서 이병기 전 실장이 법원의 ‘재판거래’ 문건에 등장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건에서 양승태 사법부는 상고법원 도입 작업을 위해 관리해야 할 인물 중 한명으로 이 전 실장을 지목했다.

▲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5년 6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관리 대상으로 언급하며 설명한 부분. ⓒ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5년 6월 5일 작성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문건에는 이 전 실장을 비롯해 이명재 민정특보, 주호영 정무특보 등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을 접촉해 상고법원 도입 문제를 설득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

특히 이 전 실장을 가장 먼저 거론하며 ‘최대 관심사->한일 우호관계의 복원’이라고 쓴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 아래엔 ‘주일대사 경력의 비둘기파로서 최근 한일관계 악화 안타까워함’,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사건에 대해 청구 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의 외교적 해결 노력 중’ 등 이 전 실장에 대해 분석한 내용을 곁들였다.

이 과정에서 선고일이 연기됐던 남매간첩단 사건 재심은 2016년 3월에서야 선고가 이뤄졌다. 재판부는 과거 수사기관의 불법구금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김씨 남매가 ‘반국가단체’ 구성원을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1년 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법원이 과거사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넘어 혐의의 실체를 판단하던 추세와 달리 당시 재심 재판부가 별도의 심리 없이 사건의 실체를 그대로 인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김씨 남매는 결국 재심에서조차 ‘간첩’ 딱지를 못 뗐다.

이 사건 선고일이 당일 갑자기 연기된 점, ‘위안부 합의’에 따른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청와대 차원에서 이병기 전 비서실장 주도로 진행했던 적극적인 공작, 양승태 사법부가 ‘한일 관계 복원’이라는 이 전 실장의 관심사에 주목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결국 ‘위안부 합의’ 국면과 남매간첩단 사건 재심 과정 및 결과는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윤미향 대표는 “남매간첩단 사건 재심 역시 정치적으로 ‘안기부 프락치 사건’을 덮고, 박근혜 정권이 피해자와 정대협에게도 비밀로 하고 추진해오던 ‘위안부 합의’를 밀어붙이기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정대협을 종북으로 공격하기 위한 고리로 도구화하기 위해 협의되고 거래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출처  박근혜 청와대-양승태 사법부, ‘한일 위안부 합의’마저 재판거래에 이용한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