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망루 안 철거민은 김석기에겐 ‘국민’이 아니었다
자서전 [김석기의 길], [엘리트 경찰에서 1등 CEO]에 드러난 용산참사에 대한 인식
[민중소리] 양아라 기자 | 발행 : 2018-09-10 19:55:24 | 수정 : 2018-09-10 19:58:28
2009년 용산참사 당시 경찰 진압 책임자였던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오사카 총영사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경북 경주시)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반면 용산참사 유가족과 생존 철거민들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 10여년 째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다.
지난 5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용산참사에 대한 6개월 간의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위는 당시 경찰 지휘부가 안전 대책이 미비함에도 진압을 강행했고, 사건 이후엔 진상규명보다 경찰공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홍보하는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김석기는 7일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용산 사고 관련해서는 사고 직후 2년 동안 진상 규명 이뤄졌다.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정당한 법집행이었다’는 판단이 나왔다”라며, “진상조사위는 ‘과잉진압이다’라고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정당한 법집행을 한 경찰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라고 비판했다.
김석기의 이러한 ‘당당함’은 언제부터 계속된 것일까. 서울경찰청장을 마지막으로 경찰 직에서 퇴임한 후 그가 펴낸 두 권의 책, [김석기의 길]과 [엘리트 경찰에서 1등 CEO로]를 통해 그의 인식을 살펴 본다.
김석기가 지난 2015년 펴낸 자서전 [엘리트 경찰에서 1등 CEO로]에는 용산참사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당시 경찰청장으로 지명되고 불과 이틀 뒤,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은 용산사고(2009년 1월 20일)가 발생했다고 회상했다. 이날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농성중이던 철거민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김석기는 이 책의 ‘눈물의 퇴임식’이란 장에서 용산 참사를 ‘사고’로 규정했다.
그는 “서울 한강로 변에 있는 건물을 점거한 불법 시위대가 행인과 달리는 차량을 향해 화염병, 염산병과 벽돌 등을 무차별로 던졌으며, 주변 주택에 화염병을 던져 방화하는 등 시민의 안녕을 극도로 위협하는 불법폭력의 범죄행위였다(137~138쪽)”고 썼다.
또 “용산 사고에 대한 법적 판단은 2010년 11월 11일 대법원이 대법관 전원일치로 ‘용산 사건에 대한 경찰의 진압 작전은 정당했다’고 판결 선고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138쪽)”고 평했다.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서울경찰청은 철거민들이 용산구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25시간 만에 진압에 나섰다. 대테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대규모의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다. 심지어 경찰 1차 진입 시도 당시 망루에서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2차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때 경찰이 진압이 아니라 구조를 했다면 사망한 6명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김석기는 2011년 낸 자서전 [김석기의 길]에서도, 용산참사는 “극렬한 불법 폭력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156쪽)”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철거민들의 시위에 대해 ‘준도심테러와 같은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
이 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진압작전의 책임자로서 김석기의 ‘반성’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이 ‘강경’, ‘과잉’으로 매도당하거나 논쟁거리가 되는 슬픈 현실은 조속히 극복되어야 한다”며 “사회적 정의실현보다는 목전의 정치적 이익과 정략적 판단에 따라 여론몰이 식으로 경찰을 비난하고, 불법 폭력의 심각성보다 경찰의 과오만을 들춰내는 비이성적 습성을 하루 빨리 타파해야 한다(157쪽)”고 날을 세워 비판했다.
김석기는 ‘눈물의 퇴임식’을 통해 용산참사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엘리트 경찰에서 1등 CEO로]에서 “결국 용산 사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나는 경찰총수 지명 한 달도 안 돼 30년 몸담은 경찰을 떠나야 했다”며 “청와대 관계자에게, 현장을 지휘한 각급 경찰지휘관들에게는 어떠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과 경찰의 사기를 고려한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경찰청장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138쪽)”고 털어놨다.
김석기는 1979년 5월 경위로 임관해, 이명박 정권 당시인 2008년 7월 24일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 초반 정권에 큰 위협이 된 ‘광우병 촛불시위’를 불법 폭력 집회로 규정하며 진압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그는 2009년 경찰 최고위 직인 경찰총장에 내정되지만, 용산참사에 발목이 잡혀 해당 직위에 오르지 못하고 30년 경찰 인생을 마감했다며 안타까워 한 것이다.
용산참사 이후 사법부는 불타는 망루에서 살아남은 철거민들까지 처벌했다. 하지만 김석기를 비롯한 당시 경찰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불명예 퇴진’을 했다고 본인은 이야기하지만, 퇴임한 이후 김석기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년엔 일본 오사카 총영사직에 올랐다. 이후 8개월 만에 2012년 19대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사퇴했다. 무소속으로 자신의 고향인 경북 경주시에 출마한 그는, 항의하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피해 선거운동을 하다 낙선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10월엔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그는 2016년 다시 임기를 10개월 남겨둔 채,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한국공항공사 사장직을 사퇴했다. 이번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경북 경주시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올해 초 진상조사위를 통해 9년 만에 처음으로 용산참사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지만, 김석기를 비롯한 당시 경찰 지휘부는 진상조사위 조사에 불응했다. 조사 발표에 따르면, 당시 경찰 지휘부가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지만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김석기는 진상조사위 결과 발표가 매우 불편했던 모양이다.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이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단언하며, 자신의 과오가 한 점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까지 엮어, “적폐 청산이라고 만들어진 진상조사위는 대법원의 판단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라며 “이것이 이 정권의 모습이다”라고 비난했다.
10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김석기의 행태에 대해 “공소시효와 금배지 뒤에 숨어, 책임 떠넘기기의 변명만을 내뱉은 뻔뻔함”이라며 “무릎 꿇고 사죄해도 부족한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을 멈춰라”고 규탄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김석기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닌 감옥 뿐”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불타는 망루 안 철거민은 김석기에겐 ‘국민’이 아니었다
자서전 [김석기의 길], [엘리트 경찰에서 1등 CEO]에 드러난 용산참사에 대한 인식
[민중소리] 양아라 기자 | 발행 : 2018-09-10 19:55:24 | 수정 : 2018-09-10 19:58:28
▲ 경찰특공대가 20일 새벽 용산구 한강로2가 한강대로 변 재개발지역 4층짜리 건물에서 강제진압 작전을 하던 중 시너가 폭발해 철거민 5명이 사망한 가운데 불에 휘싸인 망루를 지켜보고 있는 농성자들과 강제진압에 동원된 컨테이너와 경찰. 2009.01.21 ⓒ김철수 기자
2009년 용산참사 당시 경찰 진압 책임자였던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오사카 총영사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경북 경주시)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반면 용산참사 유가족과 생존 철거민들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 10여년 째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다.
지난 5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용산참사에 대한 6개월 간의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위는 당시 경찰 지휘부가 안전 대책이 미비함에도 진압을 강행했고, 사건 이후엔 진상규명보다 경찰공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홍보하는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김석기는 7일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용산 사고 관련해서는 사고 직후 2년 동안 진상 규명 이뤄졌다.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정당한 법집행이었다’는 판단이 나왔다”라며, “진상조사위는 ‘과잉진압이다’라고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정당한 법집행을 한 경찰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라고 비판했다.
김석기의 이러한 ‘당당함’은 언제부터 계속된 것일까. 서울경찰청장을 마지막으로 경찰 직에서 퇴임한 후 그가 펴낸 두 권의 책, [김석기의 길]과 [엘리트 경찰에서 1등 CEO로]를 통해 그의 인식을 살펴 본다.
김석기 왈, ‘용산참사’는 ‘준도심테러’
안전대책 없이 강행한 경찰 진압은 '정당한 공권력 행사'
안전대책 없이 강행한 경찰 진압은 '정당한 공권력 행사'
▲ ⓒ뉴시스
김석기가 지난 2015년 펴낸 자서전 [엘리트 경찰에서 1등 CEO로]에는 용산참사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당시 경찰청장으로 지명되고 불과 이틀 뒤,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은 용산사고(2009년 1월 20일)가 발생했다고 회상했다. 이날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농성중이던 철거민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김석기는 이 책의 ‘눈물의 퇴임식’이란 장에서 용산 참사를 ‘사고’로 규정했다.
그는 “서울 한강로 변에 있는 건물을 점거한 불법 시위대가 행인과 달리는 차량을 향해 화염병, 염산병과 벽돌 등을 무차별로 던졌으며, 주변 주택에 화염병을 던져 방화하는 등 시민의 안녕을 극도로 위협하는 불법폭력의 범죄행위였다(137~138쪽)”고 썼다.
또 “용산 사고에 대한 법적 판단은 2010년 11월 11일 대법원이 대법관 전원일치로 ‘용산 사건에 대한 경찰의 진압 작전은 정당했다’고 판결 선고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138쪽)”고 평했다.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서울경찰청은 철거민들이 용산구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25시간 만에 진압에 나섰다. 대테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대규모의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다. 심지어 경찰 1차 진입 시도 당시 망루에서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2차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때 경찰이 진압이 아니라 구조를 했다면 사망한 6명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김석기는 2011년 낸 자서전 [김석기의 길]에서도, 용산참사는 “극렬한 불법 폭력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156쪽)”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철거민들의 시위에 대해 ‘준도심테러와 같은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
이 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진압작전의 책임자로서 김석기의 ‘반성’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이 ‘강경’, ‘과잉’으로 매도당하거나 논쟁거리가 되는 슬픈 현실은 조속히 극복되어야 한다”며 “사회적 정의실현보다는 목전의 정치적 이익과 정략적 판단에 따라 여론몰이 식으로 경찰을 비난하고, 불법 폭력의 심각성보다 경찰의 과오만을 들춰내는 비이성적 습성을 하루 빨리 타파해야 한다(157쪽)”고 날을 세워 비판했다.
도의적 책임지고 서울경찰청장 사퇴했다 주장
퇴임 이후에 오사카총영사 →한국공항공사 사장→국회의원 승승장구
퇴임 이후에 오사카총영사 →한국공항공사 사장→국회의원 승승장구
▲ 2009년 2월 12일 김석기 청장이 자신의 퇴임석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미정 기자
김석기는 ‘눈물의 퇴임식’을 통해 용산참사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엘리트 경찰에서 1등 CEO로]에서 “결국 용산 사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나는 경찰총수 지명 한 달도 안 돼 30년 몸담은 경찰을 떠나야 했다”며 “청와대 관계자에게, 현장을 지휘한 각급 경찰지휘관들에게는 어떠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과 경찰의 사기를 고려한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경찰청장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138쪽)”고 털어놨다.
김석기는 1979년 5월 경위로 임관해, 이명박 정권 당시인 2008년 7월 24일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 초반 정권에 큰 위협이 된 ‘광우병 촛불시위’를 불법 폭력 집회로 규정하며 진압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그는 2009년 경찰 최고위 직인 경찰총장에 내정되지만, 용산참사에 발목이 잡혀 해당 직위에 오르지 못하고 30년 경찰 인생을 마감했다며 안타까워 한 것이다.
용산참사 이후 사법부는 불타는 망루에서 살아남은 철거민들까지 처벌했다. 하지만 김석기를 비롯한 당시 경찰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불명예 퇴진’을 했다고 본인은 이야기하지만, 퇴임한 이후 김석기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년엔 일본 오사카 총영사직에 올랐다. 이후 8개월 만에 2012년 19대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사퇴했다. 무소속으로 자신의 고향인 경북 경주시에 출마한 그는, 항의하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피해 선거운동을 하다 낙선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10월엔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그는 2016년 다시 임기를 10개월 남겨둔 채,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한국공항공사 사장직을 사퇴했다. 이번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경북 경주시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올해 초 진상조사위를 통해 9년 만에 처음으로 용산참사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지만, 김석기를 비롯한 당시 경찰 지휘부는 진상조사위 조사에 불응했다. 조사 발표에 따르면, 당시 경찰 지휘부가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지만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김석기는 진상조사위 결과 발표가 매우 불편했던 모양이다.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이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단언하며, 자신의 과오가 한 점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까지 엮어, “적폐 청산이라고 만들어진 진상조사위는 대법원의 판단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라며 “이것이 이 정권의 모습이다”라고 비난했다.
10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김석기의 행태에 대해 “공소시효와 금배지 뒤에 숨어, 책임 떠넘기기의 변명만을 내뱉은 뻔뻔함”이라며 “무릎 꿇고 사죄해도 부족한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을 멈춰라”고 규탄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김석기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닌 감옥 뿐”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불타는 망루 안 철거민은 김석기에겐 ‘국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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