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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반일종족주의’ 이영훈, 스무살 때 어땠을 것 같나?”

“‘반일종족주의’ 이영훈, 스무살 때 어땠을 것 같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친일파에 역청산 당한 역사, 김원봉 정신이 필요하다”
[오마이뉴스] 글: 김종훈, 사진: 권우성 | 19.09.17 13:39 | 최종 업데이트 : 19.09.17 15:23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권우성

“이영훈이 스무 살 때 어땠을 것 같나?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서울대생 중 한 명이 바로 <반일종족주의> 저자인 이영훈이었다.”

역사학자로 평생을 살아온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가 여름 서점가를 휩쓴 이영훈 전 교수의 책 <반일종족주의>를 언급하며 강조한 말이다.

한 교수는 “故 신영복 교수님 말씀인 ‘처음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 바로 이영훈”이라면서 “사람이 살면서 바뀔 수 있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스무 살 때의 자신에게 부끄러워선 안 되는 거 아니냐”라고 일갈했다. 한 교수는 이어서 ‘처음처럼’ 살지 못한 인물들을 추가로 언급했다.

“서울대생 박종철이 죽었을 때 빈소를 지키던 핸섬한 청년이 바로 김무성이었다. 박종철이 고문을 받으며 끝까지 숨기려 한 인물이 바로 박종운이다. 그런데 박종운은, 박종철의 못다 한 삶을 살아가는 건 고사하고 김문수와 함께 박근혜 곁에 선 인물이다. 이명박은 젊었을 때 ‘악덕재벌 잡아먹자’라는 구호를 외치다 감옥에 갔다.”

한 교수는 “조국 사태에서 청년들이 특히 분노한 이유도 일정 부분 이런 면이 있다”면서 “검찰개혁에 대한 (기성 권력의) 저항이 심한 것도 사실이지만, 당장은 청년들의 분노에 대해 기성세대가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한 교수는 국회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 명단을 발표했다. 2015년 제헌절을 맞아 ‘반헌법행위자를 역사의 재판정에 세우겠다’며 시작된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작업은 ‘405명의 반헌법행위자 기록’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의 책임편집인이 한홍구 교수다. 한 교수는 최근 약산의 외조카인 김태영 박사와 함께 ‘약산김원봉장군기념사업회’도 준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에서 한 교수를 만나 최근 논란이 되는 일본의 경제보복과 반일종족주의 사태, 독립투쟁가 약산 김원봉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반일종족주의 통해 시민들 경각심 가질 것”

▲ 유튜브 채널 “이승만TV”에 출연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 이승만TV

이날 한 교수와의 인터뷰 첫 주제는 자연스레 이영훈 전 교수의 <반일종족주의>였다. 지난 6일 한 교수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한홍구 TV, 역사 ‘통’>에서 2시간 38분 동안 ‘반일종족주의 완전정복’이라는 제목으로 방송했다. 방송에서 한 교수는 “<반일종족주의>에서 다룬 많은 부분이 이미 일본 극우들이 하던 이야기다, 일본에서 수입됐다”면서 “그런데 이제는 일본으로 역진출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이영훈 교수의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선전하는 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라고 일축했다.

“책을 구입한 사람 중에는 하도 황당한 주장을 하니 확인하고자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중도에 위치해 있다가 반일종족주의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저거 정말로 위험하구나’ 할 사람들도 많을 거다.”

이영훈 전 교수 내용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자연스레 최대 현안인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한 문제로 옮겨갔다. 최근 청년들이 강하게 반발한 이유가 말 그대로 ‘청년들 가슴에 불 질러 놓고’ 제대로 책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헬조선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헬조선을 극복하겠다’고 약속하며 등장한 인물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며 등장했고, 말 그대로 기적을 일으켜 대통령까지 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후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등장하고,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정권이 다시 청년들 가슴에 불을 지르며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세상을 바꾸자’ 해놓고 (기존과) 다르지 않았다. 그 괴리감이 청년들을 분노케 한 것이다.”

한 교수는 “그렇다고 검찰 개혁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어렵다’라고 말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면서 “다시 한 번 (청년들 가슴에) 불을 지펴 개혁할 동력을 만들고 나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 방식에 대해 한 교수는 ‘기적과 같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100년사’를 강조하면서 “그래도 다행인 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누구보다 검찰 개혁의 방향을 잘 알고 있다, 청년들의 분노에 대해서도 답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다.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노무현 정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 실무책임자였다. 다만 당시 두 사람 모두 나이브했다. 대통령이 검찰을 정권의 칼잡이로 쓰지 않으면 검찰이 바르게 변화할 거라 생각했다. 믿어준 거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 들개한테 물고 뜯기니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존엄사’를 선택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모든 걸 안고 갔다. 적어도 ‘우리가 꾸었던 꿈이 잘못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말하고 떠난 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를 거친 뒤 촛불혁명을 통해 문재인 정권이 탄생했다. 다시 불을 지필 기회가 온 것이다.”


“불매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권우성

한 교수는 “조국 논란 이후 불매운동이 하향세로 접어든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불매운동은 죽은 이슈가 아니다. 일본이 여전히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하는 이 상황에서 아베가 틀을 깨고 있다. 징용문제를 다룬 대법원 판결 때문만은 아니다. 아베 스스로 자신이 추구했던 구도가 허물어지는 것이 우려되기 때문에 행동한 거다.”

한 교수는 “아베는 지금까지 ‘북의 위협’을 대전제로 평화헌법을 고치고 전쟁 가능한 나라를 만드는 걸 목표로 활동했다, 그런데 트럼프와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이 자신들의 턱밑까지 추격한 것이 아베가 (경제보복을 감행하며) 평화적인 상황을 틀고자 한 이유”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한일 갈등의 해법으로 ‘남북 공조’를 이야기했다. 동아시아 정세가 평화 모드로 바뀌는 상황에서 일본은 ‘조일(북일) 수교’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조일수교가 과거 1965년에 박정희 정권이 맺은 ‘한일협정’을 바로 잡을 기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1965년에 맺은 한일국교정상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도 현실적으로 바꾸기란 어렵다. 아베 말대로 국가 간 합의를 뒤집는 일이다. 그럼 이를 어떻게 개선하나. 우리 정부가 못한 일을 북한이 해야 한다. 조일수교가 이뤄질 때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이 인정되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불법 지배를 역사 속에 남기자는 건데, 공통의 역사인 만큼 자연스럽게 한일 국교 정상화의 부당함도 바로 잡을 기회도 열릴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남북공조가 전제 돼야 한다.”

그러나 한 교수는 “지금 기회가 많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를 자꾸만 보내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한국전쟁의 출구인지, 제2의 한국전쟁의 입구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상황을 바꾸려는 아베와 일본 극우파의 변수를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위치가 한국전쟁 출구인가, 제2 한국전쟁 입구인가”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권우성

스스로를 ‘간첩전문가’라고 말한 한 교수는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에 심력을 쏟고 있다. 2015년 이후 햇수만 따졌을 때 벌써 5년째다. 그것도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한 교수는 “우리의 목표는 나쁜 짓을 한 사람들에 대해 누군가는 자손대대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자는 것”이라면서 “금석문처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반헌법행위자를 잘못 새기면 줄줄이 소송에 걸리기 때문에 지지 않고 계속 싸워나갈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을 조사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보통 박사급 연구원이 (반헌법행위자) 한 사람을 다루는데 한 달 정도 걸린다.”

한 교수가 책임을 맡아 진행 중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작업에는 박사급 전문가 10여 명이 상임으로 매달려 작업하고 있다. 비상임까지 합치면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다. 당연히 비용이 크게 부담되는 상황. 한 교수는 이 지점에서 ‘사명’을 언급했다.

“완간 기준으로 앞으로 4~5년은 더 걸린다. 빠르면 내년 말이나 후년이 돼야 (반헌법행위자) 100여 명 정도를 중간 발표할 것 같다. 사명감을 갖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가 조건이 돼서 하는 거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을 쓰려면 내용을 알아야 한다. 내용을 아는 사람 중에서 이렇게 살림을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결과 발표 후에는 치고받고 싸울 만한 맷집도 있어야 한다.”

지난해 편찬위는 ‘박근혜 청와대와 사법거래를 했다’라는 이유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반헌법행위 집중검토 대상자 1차 조사결과 115명에 포함시켰다. 당시 편찬위는 “양승태 사법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는 헌법 103조를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사실”이라면서 “양승태 사법부는 재판을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 3권 분립에 따른 상호견제의 원칙을 위배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반헌법행위자를 정하는 기준은 현재의 헌법이 아닌 행위 당시의 헌법을 기준으로 했다”면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을 때도 헌법은 있었다, 심지어 유신헌법 어디에도 고문해도 된다는 말은 없었다, 당시의 헌법만으로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언급했다.

▲ 한홍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이 지난해 7월 1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헌정사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 참석해 반헌법행위 집중 검토 대상자 405명 중 1차 115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친일파에 역청산 당한 역사, 김원봉 정신이 필요하다”

인터뷰 말미, 한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친일청산이 실패한 것은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청산하자고 말했던 사람들이 친일파에 역청산을 당했기 때문”이라면서 “지금 약산 김원봉 장군 같은 분이 살아 있다면 과연 무슨 일을 했을까, 시민들이 약산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는 마음에서 약산김원봉장군기념사업회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오는 11월 10일 의열단 창립 100주년에 맞춰서 기념사업회가 출범한다.

“약산의 이름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두려워 떠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서훈이 될까봐 노심초사 하는데 현실적으로 우리의 법 체계에선 약산의 서훈은 어렵다고 본다. 물론 서훈 이외에도 할 일이 많은 걸 알기에 약산의 생질(외조카)인 김태영 박사와 기념사업회를 준비 중인 거다. 지금 이 시기 약산 같은 분이 살아 있다면 무슨 일을 할지. 어떤 선택을 할지 보여주고 알리고 싶었다.”

한 교수는 “약산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관심과 분노로 폭탄을 던졌던 것”이라면서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의열단에 엄청난 인물들이 모인 것 같지만 실은 동네 친구들이 모여서 해낸 일이다, 친구들끼리 ‘쪽팔리지 않기 위해’ 결의하고 행동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산은 일생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변화하고 행동했다. 독립운동 상황이 변화하면 거기에 맞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다했다. 그 점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굴하지 않고, 거사가 실패해도 나아갔다. 그게 약산의 매력이다.”

한 교수는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해야 한다”라면서 “해방이 돼 모두 기뻐할 때 약산은 술잔을 놓고 동지들을 그리워했다, 약산기념사업회는 약산뿐 아니라 우리가 놓쳤던 의열단원들을 함께 기억하는 사업회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이어 “국내외 정세가 실시간으로 변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의열단처럼 정확하게 고민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약산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 교수는 자신의 상징이 된 ‘긴 수염’에 대해 “2006년 실크로드 답사 이후 기르게 됐다”라면서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에 있을 때 국정원 안에는 아무도 수염을 기른 놈이 없었다, 그래서 길러보고 싶어서 기른 것이다, 깎지 않아서 편하다”라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노무현 정권 당시인 2004년부터 3년 동안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서 몸담았다. 현재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이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관장, <반헌법행위자열전> 책임편집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권우성


출처  “‘반일종족주의’ 이영훈, 스무살 때 어땠을 것 같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