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한겨레] 이탄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전 판사 | 등록 : 2019-12-15 18:19 | 수정 : 2019-12-15 21:42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일치했던 인류 최초의 국가.’
로마 공화국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찬사다. 인류 최초의 공화국에서 시민 한명의 가치는 얼마였을까. 정확한 건 나도 모른다. 다만 로마의 웅변가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베레스 탄핵 연설’의 한 구절이다.
“로마의 시민은 누구나, 지중해 어느 곳에 버려져도 안전에 걱정이 없었다. 시민이 해를 입으면 로마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는 반드시 총력으로 대응했다.”
이 말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있다. 사도행전 22장에 나오는 아찔한 장면이다. 바울은 군중 앞에서 고문당할 위기에 처한다. 예수와의 첫 만남을 간증했다는 이유다. 옷이 벗겨지고 가죽채찍이 등을 내려치려는 순간, 바울은 말한다. “나는 로마의 시민입니다.”(Civis Romanus Sum) 이 문장 하나로 부당한 수사와 재판이 멈췄다. 채찍을 쥔 자들도 로마 정부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로마를 미화하자는 게 아니다. 내국인·외국인의 이분법에도, 보복을 통한 해결방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2000년 전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사람들은 시민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기는 정부를 꿈꾼다. 로마인들은 그 소망을 조금 더 일찍 이뤘을 뿐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의 소망이 이뤄지는 날도 다가오고 있는가.
김용균이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났다. 한 주 동안 그를 추모하는 행사들이 많았다. 그중 한 곳에 참석하였다가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 벌금 액수 얘기다.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경우에 그렇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래야 두려워서 안전조치를 한다.
내가 판사로 임용되던 2008년, 법원의 위자료 기준은 1인당 8천만 원이었다.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지급해야 하는 위로금 액수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것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이 많았다. 2017년이 되자 대법원 위자료 연구반이 기준을 올려 잡았다. 2천만 원을 더해 1억 원이 됐다. 근 10년 만에 25% 오른 셈이다. 그 정도면 같은 기간의 물가상승률밖에 되지 않는다.
선진국들은 필요할 때 시민 생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미국은 2005년 자동차 안전규제를 시도한 적이 있다. 연방교통국이 정해둔 미국 시민 1명의 가치는 350만 달러였다. 자동차 지붕을 강화하면 연평균 135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곱하면 대략 연간 5400억 원이다. 제조사들은 비용을 이유로 버텼다. 지붕을 강화하는 데 드는 돈이 5400억 원을 초과한다고 했다. 5년 뒤 미국 정부는 방법을 바꿨다. 시민 1명의 가치를 610만 달러로 대폭 올렸다. 135명의 가치도 크게 올랐다. 안전규제는 결국 통과됐다.
시민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할 때도 있다. 230년 전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울 때 논란이 있었다. 흑인 노예가 시장에서 사고 팔리던 시대였다. ‘그러면 흑인의 법적 가치는 얼마인가?’ 논쟁 끝에 합의한 수치가 ‘백인의 5분의 3’이다. 그걸 헌법에 그대로 적어 넣었다. 미국 헌법 제2조 제3항이다. 70년 뒤 그 조항을 바로잡기 위해 미국은 내전을 치렀다. 60만 명이 사망한 남북전쟁이다. 전쟁이 끝나고 헌법을 개정했다. 흑인의 가치는 비로소 ‘백인의 5분의 5’가 되었다.
최근 민식이법이 제정됐다. 그 과정에서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비용 등이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비용을 따지기 전에 더 중요한 문제를 먼저 논했으면 한다. 과연 우리 아이들의 목숨값은 얼마인가. 산재로 사라지는 노동자의 목숨값은 또 얼마인가. 여성과 노인과 빈민의 목숨값은 얼마인가. 우리의 법은 한국 사람의 목숨값을 얼마로 보고 있는가.
차라리 숫자로 적어내고 논쟁하면 좋겠다. 거부감이 들지만 그래도 그게 나을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한다면 그 누구도 450만 원짜리 결정문에는 도장을 찍지 못할 것이다.
출처 [이탄희의 공감(公感)] 한국 사람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한겨레] 이탄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전 판사 | 등록 : 2019-12-15 18:19 | 수정 : 2019-12-15 21:42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일치했던 인류 최초의 국가.’
로마 공화국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찬사다. 인류 최초의 공화국에서 시민 한명의 가치는 얼마였을까. 정확한 건 나도 모른다. 다만 로마의 웅변가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베레스 탄핵 연설’의 한 구절이다.
“로마의 시민은 누구나, 지중해 어느 곳에 버려져도 안전에 걱정이 없었다. 시민이 해를 입으면 로마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는 반드시 총력으로 대응했다.”
이 말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있다. 사도행전 22장에 나오는 아찔한 장면이다. 바울은 군중 앞에서 고문당할 위기에 처한다. 예수와의 첫 만남을 간증했다는 이유다. 옷이 벗겨지고 가죽채찍이 등을 내려치려는 순간, 바울은 말한다. “나는 로마의 시민입니다.”(Civis Romanus Sum) 이 문장 하나로 부당한 수사와 재판이 멈췄다. 채찍을 쥔 자들도 로마 정부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로마를 미화하자는 게 아니다. 내국인·외국인의 이분법에도, 보복을 통한 해결방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2000년 전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사람들은 시민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기는 정부를 꿈꾼다. 로마인들은 그 소망을 조금 더 일찍 이뤘을 뿐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의 소망이 이뤄지는 날도 다가오고 있는가.
김용균이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났다. 한 주 동안 그를 추모하는 행사들이 많았다. 그중 한 곳에 참석하였다가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 벌금 액수 얘기다.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경우에 그렇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래야 두려워서 안전조치를 한다.
한데 형량이 얼마인지 아는가. 사망한 노동자 한 명당 벌금 평균 액수가 450만 원이라고 한다. 어떤가. 이 정도면 두려운가. 벌금이 무서우니 차라리 안전조치를 하겠는가. 영국은 최소액이 약 8억 원이다. 한국 노동자 177명이 죽어야 나오는 액수다. 아찔하다. 그 많은 벌금 결정문에 분명 내 도장도 있을 것이다. 기준대로 제시되어 오는 액수에 별 고민 없이 찍었던 것 같다. 잘못된 기준이다. 도대체 우리 법은 사람 목숨값을 얼마로 보아온 것일까.
▲ 이탄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전 판사
선진국들은 필요할 때 시민 생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미국은 2005년 자동차 안전규제를 시도한 적이 있다. 연방교통국이 정해둔 미국 시민 1명의 가치는 350만 달러였다. 자동차 지붕을 강화하면 연평균 135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곱하면 대략 연간 5400억 원이다. 제조사들은 비용을 이유로 버텼다. 지붕을 강화하는 데 드는 돈이 5400억 원을 초과한다고 했다. 5년 뒤 미국 정부는 방법을 바꿨다. 시민 1명의 가치를 610만 달러로 대폭 올렸다. 135명의 가치도 크게 올랐다. 안전규제는 결국 통과됐다.
시민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할 때도 있다. 230년 전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울 때 논란이 있었다. 흑인 노예가 시장에서 사고 팔리던 시대였다. ‘그러면 흑인의 법적 가치는 얼마인가?’ 논쟁 끝에 합의한 수치가 ‘백인의 5분의 3’이다. 그걸 헌법에 그대로 적어 넣었다. 미국 헌법 제2조 제3항이다. 70년 뒤 그 조항을 바로잡기 위해 미국은 내전을 치렀다. 60만 명이 사망한 남북전쟁이다. 전쟁이 끝나고 헌법을 개정했다. 흑인의 가치는 비로소 ‘백인의 5분의 5’가 되었다.
최근 민식이법이 제정됐다. 그 과정에서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비용 등이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비용을 따지기 전에 더 중요한 문제를 먼저 논했으면 한다. 과연 우리 아이들의 목숨값은 얼마인가. 산재로 사라지는 노동자의 목숨값은 또 얼마인가. 여성과 노인과 빈민의 목숨값은 얼마인가. 우리의 법은 한국 사람의 목숨값을 얼마로 보고 있는가.
차라리 숫자로 적어내고 논쟁하면 좋겠다. 거부감이 들지만 그래도 그게 나을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한다면 그 누구도 450만 원짜리 결정문에는 도장을 찍지 못할 것이다.
출처 [이탄희의 공감(公感)] 한국 사람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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