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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개혁, 정보경찰 폐지에서 시작해야

경찰개혁, 정보경찰 폐지에서 시작해야
[경향신문] 주영재 기자 | 입력 : 2020.03.01 09:11


▲ 서울 중구에서 바라본 청와대와 서울지방경찰청 / 경향신문 자료사진

“휴대폰이 꺼진 걸로 뜨던데 위치추적하는 걸 알고 그랬습니까?”

최은철 민주노총 서울본부장(47)은 2014년 1월 어느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철도노조 대변인이었던 그는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을 주도한 혐의를 받다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경찰조사에서 최 본부장은 경찰이 자신을 비롯해 김명환 당시 철도노조 위원장 등 10여 명에 대해서 실시간 위치추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를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경향신문 사옥에 진입한 2013년 12월 22일, 휴대폰 위치추적이 되지 않았는데 그때 어디에 있었는지 한 수사관이 물어본 것이다. 이 수사관은 자기 휴대폰을 보여주며 “업무폰에 등록하면 통신사에서 실시간 위치를 5분 간격으로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위치추적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 수사자료로도 확인했다.


문재인 정부도 정보경찰 폐지 못해

최 본부장은 2월 26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본인뿐 아니라 주변 가족, 자녀들까지 수사대상에 올려놓고 위치를 추적했다”며 “당시 실시간 위치추적만이 아니라 인터넷 아이디를 확보해 e메일 내용과 접속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찰 앞에서 ‘거의 벌거벗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은 수배자 위치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가족의 병원, 약국 방문 기록을 건강보험공단에서 받기도 했다. 건강과 관련한 정보는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민감한 정보에 속한다.

철도노조원들은 헌법의 영장주의 원칙 위반, 개인정보 침해 등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경찰의 실시간 위치추적과 기지국 수사가 수사기관에 의해 남용되고 있다며 헌법불합치를, 건보공단을 통한 건강정보 수집에 대해서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중대한 침해가 있었다고 보고 위헌을 결정했다. 체포영장 발부의 근거가 된 업무방해죄에 대해서는 이미 대법원이 2017년 무죄를 확정했다.

최 본부장은 “파업 중인 간부들에게 출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이런 이유 하나로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했다”며 “작전을 지휘했던 정보경찰 쪽 사람들이 이후 승승장구한 것으로 아는데 개인과 가족들에게 엄청나게 큰 상처를 준, 사회적으로 보면 대단히 무책임한 행위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마음만 먹으면 통신사와 공공기관의 ‘협조’를 받아 손쉽게 개인의 일상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경찰은 이런 정보수집 활동의 근거로 경찰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규정된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든다.

행정기관은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작성·배포할 수 있고, 이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통치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경찰이다. 정보경찰은 ‘치안정보’ 개념을 확장해 정치·경제·사회·학원·문화·종교 등 각 분야에서 광범위한 정보수집 활동을 한다. 범죄수사와 테러정보, 외사정보, 교통정보 등 경찰의 기능별로 정보를 수집하는 곳과는 별개의 조직이다. 경찰청 정보국이 총괄하는 정보경찰의 인력은 감소 추세이긴 하나 여전히 3000명에 가까운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정보경찰이 ‘정권 안정’을 위해 노조활동·시민운동·선거운동 등에 개입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사례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일례로 정보경찰은 故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분회장을 사찰하고, 그가 삼성의 노조탄압에 항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자 노동조합장례가 아닌 가족장을 치르도록 회사가 마련한 수억 원의 돈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공적기관이나 인사 역시 감시 대상으로 삼았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진보 성향의 교육감을 견제했고, 국가인권위 상임위원도 사찰했다.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해 2016년 총선에서는 친박세력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판세를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보경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검찰개혁과 쌍끌이로 진행돼야 할 경찰개혁법안은 20대 국회 안에 통과될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개혁법안이 정보경찰을 폐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화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경찰개혁 법안의 핵심은 자치경찰제 도입과 국가수사본부 신설, 정보 경찰의 불법사찰 방지 등이다. ‘치안정보’ 개념을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정보’로 바꿔 경찰의 정보수집 활동을 제한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개념이 자의적이고 광범위하게 적용될 여지가 있다.


“경찰개혁, 수사·정보기능 분리해야”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치안정보의 수집·작성·배포가 경찰관직무직행법에 경찰의 업무로 나오지만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와 노동조합, 유명인사의 동향을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을 치안정보로 볼 수 없다”면서 “그래서 경찰도 그간 ‘정책정보’라는 이상한 말을 끄집어내 경찰의 업무인 것처럼 말하지만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이호영 박사(상지대 법학과 강사)는 “정보경찰은 직제로 운영되는 거라 대통령 의지만 있으면 바로 바꿀 수 있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국정원을 동원해 정보를 수집한 것이 문제가 됐듯이 자칫 잘못하면 현 청와대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우려했다.

▲ 이명박 정부 시절 댓글 여론공작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모 전 경찰청 대변인이 지난 2월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경찰개혁의 핵심을 수사 권한과 정보수집 권한의 분할로 보고 있다. 이호중 교수는 “치안정보를 공공안녕에 관한 정보로 말만 바꾼 것은 여전히 정보수집 기능을 갖겠다는 뜻”이라며 “핵심 질문은 경찰이 정보수집 권한을 갖는 게 정당하느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 대부분은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의 분리원칙을 따르고 있다”며 “국정원에 대해서도 수사권을 폐지하라고 하는 이유가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가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수사 권한을 가진 기관은 정보수집 권한이 없어야 하고, 반대로 정보수집 기관은 수사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정보기관인 MI5가 인신구속·가택수색·압수 등 경찰상 강제권이 없는 것이 한 예다.

이호영 박사는 이런 ‘분리원칙’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유우성씨 간첩 조작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국정원이 해외 영사관에서 ‘확인서’라는 조작정보를 만들어 그걸 재판에 제출해 전문적으로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냈다”며 “수사권과 정보수집권의 결합이 낳은 가장 부정적인 사례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점에서 국정원 대공수사 기능이 경찰에 이관돼 ‘안보수사본부’로 격상되는 모습에 우려를 표했다.

경찰을 정보수집기관과 분리해도 수사·경비·교통 등 경찰의 업무범위 안에서 획득하는 정보의 수집과 분석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호중 교수는 “중요한 것은 권력과 조직의 분산인데 공수처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경찰이 그간 정보경찰·보안경찰을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면서 정보수집 부서가 경찰의 핵심부서로 취급받고 잘 나간 반면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는 수사부서는 힘이 없는 조직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검찰개혁으로 수사권 독립이라는 숙원을 푼 지금, 경찰이 정보경찰을 없애고 인력과 자원을 수사부서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 할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은 경찰개혁위 권고를 따라 정보경찰 인원을 11.3% 축소하고 업무도 필요 최소한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준법지원계를 신설해 정보활동을 감독하고, 국가기록원과 협의해 정보이력제와 정보실명제를 반영한 정보 문건의 종합적 관리방안도 마련해 조만간 시행하겠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에서 경찰이 아닌 다른 기구에 정책정보 등을 수집하도록 하는 대안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당장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정보시스템, 법적 근거 둬야

경찰이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활용해온 정보수집시스템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갈등으로 2018년 부산검찰청이 차적정보 제공을 요청했을 때 경찰이 거부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까지 분쟁이 올라온 경우가 있었다. 개보위는 애초에 경찰이 국토부에서 차적정보를 제공받은 것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회신을 했다.

철도노조 사례처럼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활용해온 ‘온라인 주민등록번호 조회(혹은 중복가입확인정보·DI값)’도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정인화 의원실이 지난해 경찰에서 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2009년 이후 나이스 신용평가정보로부터 DI값을 제공받았다. DI값을 활용하면 포털에서 개인이 가입한 카페, 올린 게시글 등 온라인 활동 추적이 가능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09년 개인정보 침해를 우려해 경찰에 요청 대상을 필요 최소한으로 할 것과 시스템 보호조치를 갖출 것을 요청했다. 경찰은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어떤 수사관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조회했는지 기록이 없는 것이다. 지난해 9월부터 방통위 권고대로 DI값에 대한 요청 건수와 요청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3주 동안 집계 건수가 4445건에 달해 DI값 수집이 광범위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인화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국감 때 다음 부사장과 네이버 이사, 나이스의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그들도 경찰이 이런 정보를 수집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경찰이 현장에서 활용하기 시작한 얼굴인식시스템(안면인식시스템)도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대표는 “DNA법(디앤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찰이 보유한 수많은 정보수집시스템이 법적 근거 없이 막연하게 치안정보 수집·작성에 근거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목적으로, 어떤 정보를 수집해 활용하는지 명시하고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영 박사는 ‘치안정보 수집’이라는 개괄적 수권조항을 ‘만능칼’처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병일 대표는 수사기관이 개인정보보호원칙을 지키는지 감시하는 독립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2018년 유럽연합(EU)이 발표한 ‘경찰지침’의 경우, 수사기관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처리할 때 개인정보 영향평가를 적용하고, 독립적인 개인정보 감독을 받도록 했다.

시민단체는 정보경찰 폐지 운동을 확대해 자치경찰제 내실화, 수사권과 정보수집권한의 분리, 경찰위원회 강화를 통한 경찰의 민주적 통제 등으로 경찰개혁 논의를 확대할 계획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오민애 변호사는 “이번 정부가 이전 정부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서라도 경찰개혁에 더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시민사회단체는 3월 이후 경찰개혁네트워크를 출범시켜 경찰개혁 전반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지금 시점에서 시민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은철 민노총 서울본부장은 “경찰은 수사권 조정 문제로 검찰과 싸울 만큼 도덕적 자부심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정보경찰 문제를 법적으로 보완을 하는 문제를 떠나 정보수집 남용에 대한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경찰개혁, 정보경찰 폐지에서 시작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