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썸네일형 리스트형 CIA가 본 5·18 광주와 전두환의 유산 CIA가 본 5·18 광주와 전두환의 유산 [뉴스타파] 취재: 팀 셔록(Tim Shorrock, 워싱턴 DC), 번역: 홍우람 | 2019년 5월 20일 오전 10:03 미국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이하 CIA)은 전두환이 광주 5·18민주화운동 이후 정권을 장악하고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조차도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품었다는 사실이 CIA 비밀해제 문서로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지난 1년에 걸쳐 분석한 CIA 문서들은 80년대에 군부통치에 저항하는 야권 세력이 성장함에 따라 전두환과 그의 군부 내 공범들이 CIA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든 상황도 보여준다. 또 1985년 어느 시점에선 미국이 전두환의 재집권에 대응할 방안도 고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더보기 심재철, 5·18 보상금 받으려 신청서 2번 제출 드러나 심재철, 5·18 보상금 받으려 신청서 2번 제출 드러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 광주시 “일괄보상 없었다” [경향신문] 강현석 기자 | 입력 : 2019.05.20 06:00 | 수정 : 2019.05.20 06:02 1998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피해자)로 인정돼 정부 보상금 35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토착왜구당 심재철 의원(사진)이 보상금을 수령하기 위해 신청서를 두 번 작성해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시는 19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포함해 5·18 피해자에 대한 보상 과정에서 신청서를 내지 않은 관련자를 포함시키는 ‘일괄보상’은 이뤄진 적이 없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5·18 보상금 수령에 대한 경향신문 보도(5월 16일자 2면) 이후 본인의 신청 여부는 밝히지 않은 채 .. 더보기 ‘5·18 피해자’ 사양했다던 심재철에 보상금 3500만원 지급됐다 ‘5·18 피해자’ 사양했다던 심재철에 보상금 3500만원 지급됐다 “1997년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지만 보험증 반납” 광주시 “본인이 직접 신청 안 하면 심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상금 수령 안 밝혀…심 의원 “제가 신청했었는지 알아볼 것” [경향신문] 강현석 기자 | 입력 : 2019.05.16 06:00 | 수정 : 2019.05.16 09:17 심재철 토착왜구당 의원이 20여년 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피해자)로 인정돼 정부 보상금이 지급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주장해왔던 심 의원은 정작 자신이 5·18 피해자로 인정돼 보상금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15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심 의원은 1998년 광주시에 ‘5·18민주화운동 .. 더보기 시민 무장 전 숨진 ‘꼬마상주 아버지’도 ‘카빈 희생자’라는 신군부 시민 무장 전 숨진 ‘꼬마상주 아버지’도 ‘카빈 희생자’라는 신군부 시민 희생자들 폭도로 조작한 보안사 시민들 카빈 무장 하루 전 사망 3명 M16 총에 죽었는데, 카빈 희생자로 “80%이상 폭도 만들어야” 전화 들어 “폭도끼리 교전 결론 뒤 희생자 조작” [한겨레] 정대하 기자 | 등록 : 2019-05-16 21:06 | 수정 : 2019-05-16 22:05 “5·18 총상 사망자 가운데 카빈소총에 맞은 희생자는 사체 검안 한명뿐”이었다는 당시 검안의 문형배 전 원광대 교수의 최초 증언은 ‘시민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보수단체의 5·18 왜곡 주장이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당시 전두환 사령관의 보안사는 M16 희생자를 줄이고 카빈소총 희생자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됐던 것으로 보.. 더보기 신군부가 88명 이른다던 ‘광주 카빈소총 희생자’는 단 1명뿐 신군부가 88명 이른다던 ‘광주 카빈소총 희생자’는 단 1명뿐 문형배 전 원광대 교수 최초 증언 ‘시민군 오인사격·북 개입설’ 반박 “505보안대가 폭도·비폭도 분류” 카빈 희생자 28~88명까지 늘려 시민학살 책임 줄이려 조작 의혹 [한겨레] 정대하 기자 | 등록 : 2019-05-16 20:59 | 수정 : 2019-05-17 07:46 5·18 민주화운동 당시 카빈소총에 맞아 사망한 시민 희생자는 1명뿐이었다는 사체검안 의사의 증언이 최초로 나왔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군의 학살 책임을 덜기 위해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를 시민군이 사용한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자로 조작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그동안 5공 인사들은 시민 사망자 가운데 카빈소총 희생자가 28~88명에 이른다며 이것이 시민군.. 더보기 또 나온 광주판 ‘안네의 일기’…숨가빴던 오월의 기록 또 나온 광주판 ‘안네의 일기’…숨가빴던 오월의 기록 당시 전남대 3학년, 도청 상황실에 있던 김현경씨 체포 대비해 일부 내용 한글 자모 등 암호로 표기 “5·18 왜곡 맞서 당시 순수했던 열망 전하고 싶다” [한겨레] 글·사진 안관옥 기자 | 등록 : 2019-05-17 04:59 | 수정 : 2019-05-17 19:21 “그때 공포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예비역 육군 중령 김현경(59·서울)씨는 15일 와 만나 계엄군 진입 전날 전남도청 안의 비장한 분위기를 이렇게 증언했다. 당시 20살이었던 그는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공수부대가 퇴각한 뒤 시민군이 도청을 장악하자 상황실에 배치돼 거리방송, 성명 낭독, 원고 준비 등을 맡았다. 그는 숨 가빴던 1980년 5월 열흘 동.. 더보기 누가 ‘5·18’을 흔드는가 누가 ‘5·18’을 흔드는가 ‘5월 광주’를 소환하는 정치 [경향신문] 정희완·박순봉 기자 | 입력 : 2019.05.18 06:00 | 수정 : 2019.05.18 06:01 1989년 12월 31일 살인마 전두환이 국회 증인석에 앉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광주특위)와 ‘제5공화국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5공비리특위) 청문회였다. 그는 굳은 얼굴로 5·18 유혈 진압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되뇌었다. 격분한 야당 의원들은 “발포 명령자 밝혀라”, “살인마”라며 소리를 질렀고 일부는 증인석으로 돌진하거나 명패를 던졌다. 그때마다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 의원들이 막아섰고, 청문회는 육탄전이 벌어져 7차례나 정회됐다. ‘89년 청문회’서 뻔뻔했던 전두환 다시 선 .. 더보기 울타리 뜯고 없는 길 만들어···도망치듯 광주 떠난 황교안 울타리 뜯고 없는 길 만들어···도망치듯 광주 떠난 황교안 [경향신문] 노정연 기자 | 입력 : 2019.05.18 20:52 5월 단체 등의 광주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5·18 기념식 참석을 강행한 토착왜구당 황교안이 정식 출구가 아닌 비상 출구를 통해 5·18 민주묘지를 떠났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대형버스로 정문을 통해 묘지 입구에 도착한 황교안은 기념식을 마친 오전 11시 30분쯤 후문 울타리를 뜯어낸 뒤 묘지를 빠져나갔다. ‘환영받지 못한 손님’ 황 대표의 5·18기념식 참석은 험난했다. 입장 전부터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황교안은 기념식장에 들어오는 데 30여 분이 걸렸고, 식후 묘지를 빠져나가는 데에도 또다시 30여분이 걸렸다. 5·18묘지 후문은 출입구가 계단으로 돼 ..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