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맛집'은 조작됐다…다음엔 '가짜 의사'다"
[인터뷰] 방송사와 '유쾌한 맞짱'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기사입력 2011-06-27 오후 1:22:35
'리얼이냐 아니냐'가 문제 아니다. 의심하라
<트루맛쇼> 개봉 후 당연히 영화 관련 기사도 넘쳐났다. 진중권 문화평론가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진중권 씨는 <씨네21>에 귄터 안더스의 표현을 빌려 "<트루맛쇼>의 묘미는 이 리얼리티쇼의 포맷을 빌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 <트루맛쇼>가 맛집 방송의 이면에 감추어진 '사실'을 보여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도 결국 하나의 허구라는 '사실'은 은폐해버린다. 다큐멘터리 역시 편집을 통해 '극화'를 하며, 전달할 메시지의 '서사'를 창작한다. 가령 '사실을 왜곡하는 방송이 있고, 거기에 속는 시청자가 있다. 권력이 된 방송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나, 고난을 무릅쓰고 진실을 폭로하는 감독이 있다.' 아주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다큐멘터리의 영웅서사다."라고 썼다.
<트루맛쇼> 역시 '손님'을 섭외해 허구의 맛집을 만들고 허구의 맛을 창조한 다음 시청자를 농락하는 방송사 '맛집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은, 실제하지 않는 허구에 대한 기록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진 씨는 "<트루맛쇼>를 그저 '폭로'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논하는 것은 실은 영화에 미안한 일"이라며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한 두 철학자의 논리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도구로서 <트루맛쇼>를 활용했다고 충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진 씨의 글은 분명 곱씹어 볼 만하다. <트루맛쇼>는 과연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김 감독에게 물어봤다.
프레시안 : 진중권 씨는 <트루맛쇼> 역시 편집을 통해 사실을 은폐한, 또 다른 <트루먼쇼>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송 제작관행을 촬영해 청중에게 보여주며 '이것이야말로 사실이었다'고 관객에게 '가공된 사실'을 강요할 수 있다는 거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재환 : 전 영화의 의의를 좀 다른 부분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제가 영화에서 주장한 건 '합리적으로 의심하라'는 겁니다.
다만 중요한 지적을 하셨기에 제 생각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리얼'은 없습니다. 인터뷰한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은 사라집니다. (지금 감독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감독의 지금 모습 또한 마찬가지인가요?) 당연하죠. 저 평소에는 이렇게 진지하지 않습니다.
과연 <트루맛쇼>는 리얼하냐 리얼하지 않느냐, <트루맛쇼>만 리얼하고 나머지는 거짓이냐. 이런 데 초점을 맞추는 건 제가 원한 논쟁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가 가상의 세계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해보자는 게 <트루맛쇼>의 제작 의도입니다.
과연 우리가 '리얼하다'고 믿는 게 정말 사실일까요. 맛의 프레임으로 이를 보여줬지만, 정치·경제·사회·미디어에 대해서도 합리적 의심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데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프레시안 : 결국 <트루먼쇼>의 구도와도 비슷한데요. 처음 영화 구상 당시부터 <트루먼쇼>를 염두에 두셨나요?
김재환 : 당연합니다. 처음 만들 때부터 <트루먼쇼>를 생각했습니다. 영화관에서 관객이 일어날 때 <트루먼쇼>를 보면서 가졌던 생각을 다시 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트루먼쇼>를 보면 트루먼이 진실이라고 믿는, 크리스토퍼 피디가 만든 가상 세계가 나옵니다. <트루맛쇼>에서도 시청자가 진실이라고 믿지만, 실은 제작사와 방송사가 온갖 가짜를 동원해서 만든 '맛집 방송'이라는 가상 세계가 나오죠. 다만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더 만들었습니다. 이 가상 세계로 시청자를 속이는 세계를 또 촬영하는, 우리가 만든 식당이라는 또 다른 가상세계가 있죠. 결국 방송사가 <트루맛쇼>에서는 트루먼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영화에서 프랑스인 셰프가 하는 말이 제 영화의 주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유어 아이즈 아 더 비기스트 라이어즈(You're eyes are the biggist liars)." 당신 눈이 가장 큰 거짓말쟁이입니다. 우리가 리얼이라 믿는 게 과연 리얼일까요? <트루맛쇼>는 '리얼은 없다'는 선언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건 스퍼록 감독이 <슈퍼 사이즈 미>에서 한 달 동안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게 과연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영화를 위해 설정한 세계죠. 이걸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감독이 의도한 바를 관객이 공감한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시청자 책임은 없나
프레시안 :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의도를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식문화가 나쁘다. 우리 입맛이 이 정도 수준이라 가짜 맛집이 넘친다"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인터뷰 장면입니다. 여러번, 같은 말이 반복돼서 영화에 나옵니다. 혹시 감독이 관객에게 '당신들도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대목을 늘린 것 아닙니까?
김재환 : 우리가 그 동안 공급자만 나쁘다고 얘길 해 왔는데, 이제 그럴 수 없는 시대예요. 일인미디어의 확대재생산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방송이 가짜 맛집을 알려주면 블로거들이 대거 인터넷에서 그걸 다시 소개하죠. 심지어 맛집을 소개하는 전문 블로거도 있습니다. 고전적 미디어에서 던져주는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일인미디어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황교익 선생의 말에서 드러난 '시청자가 천박하다'는 내용이죠.
맛이 없는 맛집을 띄워준 건 결국 소비자입니다. '방송사가 나쁘고 내 책임은 없다'고 하는 순간, 제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의 능동성, 적극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면피하는 거죠. 이러면 안 됩니다. 시청자도 충분한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합니다.
[인터뷰] 방송사와 '유쾌한 맞짱'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기사입력 2011-06-27 오후 1:22:35
'리얼이냐 아니냐'가 문제 아니다. 의심하라
<트루맛쇼> 개봉 후 당연히 영화 관련 기사도 넘쳐났다. 진중권 문화평론가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진중권 씨는 <씨네21>에 귄터 안더스의 표현을 빌려 "<트루맛쇼>의 묘미는 이 리얼리티쇼의 포맷을 빌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 <트루맛쇼>가 맛집 방송의 이면에 감추어진 '사실'을 보여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도 결국 하나의 허구라는 '사실'은 은폐해버린다. 다큐멘터리 역시 편집을 통해 '극화'를 하며, 전달할 메시지의 '서사'를 창작한다. 가령 '사실을 왜곡하는 방송이 있고, 거기에 속는 시청자가 있다. 권력이 된 방송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나, 고난을 무릅쓰고 진실을 폭로하는 감독이 있다.' 아주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다큐멘터리의 영웅서사다."라고 썼다.
<트루맛쇼> 역시 '손님'을 섭외해 허구의 맛집을 만들고 허구의 맛을 창조한 다음 시청자를 농락하는 방송사 '맛집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은, 실제하지 않는 허구에 대한 기록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진 씨는 "<트루맛쇼>를 그저 '폭로'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논하는 것은 실은 영화에 미안한 일"이라며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한 두 철학자의 논리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도구로서 <트루맛쇼>를 활용했다고 충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진 씨의 글은 분명 곱씹어 볼 만하다. <트루맛쇼>는 과연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김 감독에게 물어봤다.
▲ 김재환 감독은 "우리가 진실이다"라고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의심하라"고 외치고 "당신들의 천박한 미각이 오늘의 맛집 프로그램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B2E |
프레시안 : 진중권 씨는 <트루맛쇼> 역시 편집을 통해 사실을 은폐한, 또 다른 <트루먼쇼>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송 제작관행을 촬영해 청중에게 보여주며 '이것이야말로 사실이었다'고 관객에게 '가공된 사실'을 강요할 수 있다는 거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재환 : 전 영화의 의의를 좀 다른 부분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제가 영화에서 주장한 건 '합리적으로 의심하라'는 겁니다.
다만 중요한 지적을 하셨기에 제 생각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리얼'은 없습니다. 인터뷰한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은 사라집니다. (지금 감독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감독의 지금 모습 또한 마찬가지인가요?) 당연하죠. 저 평소에는 이렇게 진지하지 않습니다.
과연 <트루맛쇼>는 리얼하냐 리얼하지 않느냐, <트루맛쇼>만 리얼하고 나머지는 거짓이냐. 이런 데 초점을 맞추는 건 제가 원한 논쟁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가 가상의 세계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해보자는 게 <트루맛쇼>의 제작 의도입니다.
과연 우리가 '리얼하다'고 믿는 게 정말 사실일까요. 맛의 프레임으로 이를 보여줬지만, 정치·경제·사회·미디어에 대해서도 합리적 의심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데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프레시안 : 결국 <트루먼쇼>의 구도와도 비슷한데요. 처음 영화 구상 당시부터 <트루먼쇼>를 염두에 두셨나요?
김재환 : 당연합니다. 처음 만들 때부터 <트루먼쇼>를 생각했습니다. 영화관에서 관객이 일어날 때 <트루먼쇼>를 보면서 가졌던 생각을 다시 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트루먼쇼>를 보면 트루먼이 진실이라고 믿는, 크리스토퍼 피디가 만든 가상 세계가 나옵니다. <트루맛쇼>에서도 시청자가 진실이라고 믿지만, 실은 제작사와 방송사가 온갖 가짜를 동원해서 만든 '맛집 방송'이라는 가상 세계가 나오죠. 다만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더 만들었습니다. 이 가상 세계로 시청자를 속이는 세계를 또 촬영하는, 우리가 만든 식당이라는 또 다른 가상세계가 있죠. 결국 방송사가 <트루맛쇼>에서는 트루먼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영화에서 프랑스인 셰프가 하는 말이 제 영화의 주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유어 아이즈 아 더 비기스트 라이어즈(You're eyes are the biggist liars)." 당신 눈이 가장 큰 거짓말쟁이입니다. 우리가 리얼이라 믿는 게 과연 리얼일까요? <트루맛쇼>는 '리얼은 없다'는 선언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건 스퍼록 감독이 <슈퍼 사이즈 미>에서 한 달 동안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게 과연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영화를 위해 설정한 세계죠. 이걸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감독이 의도한 바를 관객이 공감한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시청자 책임은 없나
프레시안 :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의도를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식문화가 나쁘다. 우리 입맛이 이 정도 수준이라 가짜 맛집이 넘친다"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인터뷰 장면입니다. 여러번, 같은 말이 반복돼서 영화에 나옵니다. 혹시 감독이 관객에게 '당신들도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대목을 늘린 것 아닙니까?
김재환 : 우리가 그 동안 공급자만 나쁘다고 얘길 해 왔는데, 이제 그럴 수 없는 시대예요. 일인미디어의 확대재생산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방송이 가짜 맛집을 알려주면 블로거들이 대거 인터넷에서 그걸 다시 소개하죠. 심지어 맛집을 소개하는 전문 블로거도 있습니다. 고전적 미디어에서 던져주는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일인미디어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황교익 선생의 말에서 드러난 '시청자가 천박하다'는 내용이죠.
맛이 없는 맛집을 띄워준 건 결국 소비자입니다. '방송사가 나쁘고 내 책임은 없다'고 하는 순간, 제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의 능동성, 적극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면피하는 거죠. 이러면 안 됩니다. 시청자도 충분한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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