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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② ``TV 맛집`은 조작됐다…다음엔 `가짜 의사`다`

"'TV 맛집'은 조작됐다…다음엔 '가짜 의사'다"
[인터뷰] 방송사와 '유쾌한 맞짱'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기사입력 2011-06-27 오후 1:22:35


김 감독은 시도때도 없이 웃었다. 웃음이 많은 것을 알고서야 <트루맛쇼>가 그렇게 재기발랄한 기획으로 영화화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머리숱이 줄어들었다'는 말에 서서히 <트루맛쇼>에 대한 질문을 이끌어낼 때가 됐다고 봤다. <트루맛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 <트루맛쇼>는 직설적으로 '맛이 간' 한국의 방송을 까댄다. 김재환 감독은 겉보기엔 '재미'로 무장한 듯한 직구를 주구장창 던져댄다. ⓒB2E

방송제작 환경 변화가 지금의 맛집 프로그램 만들어

프레시안 : <트루맛쇼>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가벼운 TV 교양프로그램 주제인 '맛집'을 갖고 방송의 어두운 제작과정을 보여줬단 점입니다. 왜 맛집이었나요?

김재환 : 제가 처음 영화화를 위해 관심을 가진 주제는 '미디어가 유포하는 이미지의 지배력'이었어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정치 뉴스를 보고, 정치행위를 하고, 그게 우리의 관점을 결정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날 것의 정치를 알진 못해요.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본 다음, 그 정보를 바탕으로 각자가 이미지를 형성하죠. 결국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서 우리의 정치 행위가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걸 영화화해서 관객에게 보여주자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람이 평생을 통해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왔는데, 어떻게 미디어를 보면서 성장하는 과정부터 정치적 행위를 결정하는 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줍니까.

그런데 맛집 프로그램이 '미디어가 유포하는 이미지의 지배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더라고요. (맛집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 있나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제작과정을 거치는 지는 알았죠. 돈과 권력이 아주 강력하게 개입됩니다.

프레시안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맛집 프로그램에 돈과 권력이 어떻게 개입되고, 시청자는 어떻게 이 '이미지'에 지배당한다는 겁니까?

김재환 : 방송 3사는 아주 강력한 지배력을 갖고 있죠. 누구나 TV를 보잖아요. 방송의 특징은 시각과 청각 매체란 점이죠. 그런데 '맛'은 미각요소입니다. 이 괴리에서 조작과 가짜의 가능성이 발생하는 거죠. 결국 지배력을 가진 방송사가 맛을 설명하는 대신, '맛'으로 포장된 무언가를 시각과 청각요소를 활용해서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중심(미각)은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이 사람의 요리가 훌륭하다'가 아니라 '이 식당 대박났다더라'는 방송꼭지가 나온 원인입니다.

프레시안 : 언제부터 이런 방송관행이 지배하기 시작했나요?

김재환 : 저는 <브이제이(VJ) 특공대>가 이 경쟁을 부추겼다고 봐요. 이 방송이 한 10년 됐는데, 한 때는 금요일 밤 10시대 시청률 20%를 넘겼었죠. 교양프로그램이 이 정도의 시청률을 낸겁니다. 어마어마하죠.

<VJ 특공대>에서 나오는 맛집의 화면을 상상해보세요. 방송은 짧은 시간 동안 맛집 대여섯 군데를 헤집고 다닙니다. 카메라는 굉장히 빠르게 샷을 바꾸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미처 생각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이미지의 폭탄이 '파파파팍' 몰아치죠. 카메라가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마다 손님들은 커다란 액션을 취하면서 '맛있다'고 연발하죠.

그런데 이게 시청률이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프로그램이 이걸 따라했습니다. 맛집 교양물의 비극이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제가 영화에서도 보여드렸지만, 캐비어 삼겹살은 정말 황당한 요리였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 방송 화면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사기임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이 방송을 본 시청자 누구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VJ 특공대>의 시청률이 10%만 나와도 500만 명이 봤단 건데, 단 한 명의 시청자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미디어가 던져주는 이미지의 지배력에 시청자들이 중독된 겁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강력한 힘의 원천이 '맛'이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맛을 좋아하니까요. 주제를 '맛'으로 잡지 않았다면 방송을 비판하는 영화에 대중이 이처럼 큰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테고, 아마 개봉도 못했을 겁니다. 미디어 감시영화의 소재로 맛을 택한데는 전략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저도 영화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이 이런 식으로 조작된 거구나'하는 황당한 느낌이 뒤늦게 들더군요. 역시 감독 말씀대로 영화를 보면서는 '어떻게 저런 뻔한 조작을 모르고 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고요.

그런데 한발 물러서 생각해보면, 신문에 광고성 기사들이 채워집니다. 기업의 제품소개 기사, 부동산 기사의 대부분은 사실 기사라기보단 광고죠. 미디어의 자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일이 발생했고요. 결국 TV의 맛집 프로그램이 그런 식으로 변한데는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현실적 이유도 있지 않을까요?

김재환 : 협찬이라는 '블랙 마켓'이 굉장히 커요. 그리고 취약한 매체일수록 협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고요. 정상적으로 광고매출을 올리기 힘드니 그렇게 되는 거죠. 케이블 방송은 방송3사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심각하게 영업하고 다니는 곳이 많습니다. 방송3사도 이제 안정적인 이익을 확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됐으니 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