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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읽고

나 보고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몇 해 전 아침형 인간이 전 국민의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같은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생활습관을 전면 수정하거나
    기업들은 아예 출근시간을 앞당겨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CEO의 평균 기상시간이 새벽 5시라는 신문기사도 뜨고
    암튼 4,500만이 하나되어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책의 내용인즉 사람의 뇌는 새벽 5시부터 8시까지 가장 왕성한데
    이때의 1시간은 다른 3시간의 효율과 같아서
    시간에 쫓기던 사람이 시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인생을 두 배로 살 수 있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미국의 대통령 카네기는 인생의 가장 큰 지출이 아침잠이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나도 해봤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을 정독하고, 아침밥을 먹고,
    느긋하게 출근길에 올라 메일 읽는 것으로 업무 시작,
    점심시간 전까지 하루 업무의 절반을 모두 해치우는 경이로운 기적을 실현한 것이다.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었던 내가 갱생의 삶을 재시작한 건 좋았지만,
    내 자신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지만 여기저기 부작용이 돌출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는 게 감기약을 삼키는 아이만큼이나 힘들었고
    무엇보다 새벽시간이 외로웠다.
    음주가무를 근절한 담백한 삶도 지리멸렬했다.
    사람들의 수다가, 알콜의 위로가, 불량식품의 달달함과도 같은, 해로운 것들이
    선사하는 삶의 희열과 생의 온기가 결핍되자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2주 만에 인생을 두 배로 살 수 있다는 아침형 인간을 포기했다.
    여전히 따뜻한 이불 속에서 5분만을 외치며 지각하기 일쑤였고
    회의는 불참해도 회사 근처 선술집에서의 정종 한 잔은 사수했다.
    숲의 왕이 되기 위해 다른 새들의 깃털을 억지로 붙이고 공작으로 살기 보다는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까마귀로 살고 싶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을 경영하기보다는 사투를 벌이고 있을 올빼미형 인간들에게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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