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물 민영화’, 이미 시작됐다
[시사인 273호] 천관율 기자 | 승인 2012.12.11 03:06:20
물이 민영화된다. 상하수도의 설계·시공·운영에 민간 참여가 차근차근 확대되고, 2020년 이후로는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 물 전문기업이 탄생한다. 물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생필품인 데다, 상하수도는 네트워크 산업이어서 독점이 쉽다. 민영화의 폐해가 나타나기 가장 좋은 영역으로 손꼽힌다.
물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다가 역풍을 맞은 인천공항 민영화·KTX 민영화와는 추진 방식이 다르다. 정부 계획부터 민영화 논란을 철저하게 의식했다. 일련의 추진 계획을 보면, 세세하게 단계를 쪼개고 단계마다 ‘기정사실화’ 과정을 거치며 천천히 진행한다. 각 단계는 모두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모아보면 결론은 민영화다.
일종의 ‘살라미 전술’이다. 목표에 이르기까지 저항이 너무 클 때, 한번에 목표를 이루기보다는 단계를 잘게 쪼개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협상 기법이다. 전체 그림이 분명해지면 돌이킬 수 없다. 여론은 민영화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높고, 특히 물 민영화는 대단히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인천공항과 KTX를 덜컥 팔려다가 저항에 부딪혀본 정부가 물 민영화 전략으로 내놓은 것이 이 ‘민영화 쪼개기’인 셈이다.
2010년 10월 녹색성장위원회·환경부·국토해양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보고서 하나를 내놓는다. 이름은 ‘물산업 육성 전략’(이하 ‘전략’)이다. 물 민영화의 근간이 담긴 보고서다. ‘전략’은 우선 상수도와 하수도를 달리 접근한다. 상수도부터 보자. <그림 1>은 ‘전략’ 12쪽에 실린 그림을 그대로 가져왔다.
천천히 티 안 나게 ‘민영화 쪼개기’
1단계는 164개 지방 상수도를 39개 권역으로 통합하면서, 사업자 간 경쟁을 유도한다고 되어 있다. 상수도 통합은 중복 투자를 해소하고, 영세성을 극복해 노후 상수도관 누수 문제에 대응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만으로 민영화라는 딱지를 붙이기는 힘들다.
하지만 ‘전략’은 이 단계가 사실상 민영화 준비 단계임을 스스로 인정한다. ‘전략’ 13쪽에는 이렇게 적었다. “민영화 논란으로 직접적인 민간기업 참여는 곤란. 단순 위탁 및 공기업과의 컨소시엄을 통한 운영경험 확보.”
이렇게 교두보를 확보한 후 민간기업의 수도 산업 진입을 점진적으로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즉, ‘전략’은 민영화 논란을 피해갈 수 있는 단순위탁(상수관망 관리를 예로 들고 있다)에서 출발해, 결국 민간기업이 수도사업 운영을 맡는 데까지 나가는 계획을 세워뒀다.
‘상수도 사업 운영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전략’ 6쪽은 “민간기업은 상수도 운영관리 실적이 부족해 해외 진출이 곤란(하여 실적을 쌓을 필요가 있다)”이라고 적었다. 즉, ‘전략’이 가정하는 해외로 진출하는 물기업(2020년에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은 사실상 민간기업이다. ‘전략’이 2020년까지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세계적 물기업이 8개다. 공기업인 수자원공사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정도의 ‘소박한’ 계획이 아니다.
2단계 경쟁체제 강화 단계에서는 사업자와 소비자가 상하수도 사업도 경쟁 체제로 운영되는 현실에 적응하게 된다. 한때는 낯설었던 민간기업 도로를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광역화가 확대되는데, 이 시기가 되면 민간기업이 수공에서 일부 광역 단위를 위탁받아 운영까지 주도해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3단계는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 단계다. 차근차근 성장해온 물 전문기업이 해외로 진출한다. ‘전략’은 이 물 전문기업이 공기업인지 민간기업인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민간 참여의 길을 계속 넓혀가는 정책 흐름과, ‘전략’이 기대하는 물기업 숫자를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변수가 하나 더 있다. 하수도다. 수도꼭지를 틀면 당장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상수도는 소비자가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하수도는 그만큼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하수도는 이미 75% 정도가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사실상 민영화 단계이지만, 여론의 저항은 거의 없다.
<그림 2>는 ‘전략’ 13쪽 그림을 옮겨온 것이다. 하수도의 경우, 운영 주체에서 수자원공사와 공단이 아예 사라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략’은 민영화가 상당 수준으로 진행된 하수도에 대해서는 “전문 민간기업이 위탁받아 물 전문기업 육성”이라고 알기 쉽게 적고 있다. 일단 진도가 나간 후에는 기정사실화한다. 상수도 민간위탁이 상당히 진행된 후,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미리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략’의 최종 제안은 이렇다. 상수도와 하수도를 통합한다. 이것이 세계적 물기업 육성의 방법으로 제시된다. 상하수도 통합 역시 자체의 정책 논리를 갖고 있고 해외 선례도 있는, 논의해볼 만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 정책 또한 지방 상수도 통합과 마찬가지로, 민간의 상수도 사업 진출을 결과적으로 돕는다. 하수도는 이미 상당히 민영화됐다. 상수도는 민간 참여가 단계별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 통합 기업이 공기업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전략’이 스스로 답한다. 정책과제 3번 지방상수도 및 하수도 통합화·광역화. 4번 민간기업 참여 확대를 통한 물 전문기업 육성.
태영·두산·한화·포스코·동서·효성 등 참여
‘전략’은 이렇듯 사실상 물 민영화 계획을 밝히는 데다가 작성한 지 2년이나 된 보고서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혹시 이 ‘전략’이 일회성으로 제안됐다가 폐기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올해 5월에는, 역시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략’의 이행점검 결과 및 향후대책을 담은 보고서가 나온다(이하 ‘점검’). ‘점검’은 물기업 육성 분야의 대표 성과로 상·하수도 분야 민간기업 공동 운영과 위탁이 확대되었다고 밝힌다. 올해 3월에는 지자체·민간기업 업무협약도 체결됐다.
미흡한 점도 지적한다. 제도가 개선되어 민간참여 기반은 구축되었지만, 실제 참여와 운영경험 축적은 더디다는 것이 ‘점검’의 평가다. 민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운영실적을 더 확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적었다. ‘전략’의 기조와 정확히 같은 관점이다.
<시사IN> 취재 결과, 지방상수도 통합 사업의 민간 참여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강원 남부권 통합 사업을 보면, 태백·영월·정선·평창에서 통합 사업에 참여한 기업은 태영건설, 두산건설, 한화건설, 포스코건설, 동서, 효성 등이다. 하지만 전국으로 확대하면 4개 권역 8개 지자체가 통합이 완료된 반면, 또 다른 4개 권역 10개 지자체는 통합을 포기했다. ‘전략’이 기대한 만큼 속도가 나지는 않고 있다. ‘점검’이 지적한 대로다.
‘점검’은 또, 올 2월 하수도법이 개정되어 하수도 자율경쟁이 도입될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제출해 올 2월 통과된 하수도법 개정안의 제안 이유를 보면, 정부는 “전문성이 부족한 사업자에 하수도가 위탁되는 것을 방지하는 법”이라는 취지를 든다. 물산업이니 민간 참여니 하는 표현은 쏙 뺐다. 하지만 환경부는 법 개정 이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개정 취지를 ‘민간 참여 기회’와 ‘물산업 활성화’에 맞췄다. 한 민주당 전직 보좌관은 “국회가 정부에 당했다”라고 표현했다.
더욱 노골적인 시도도 있었다. 2011년 3월, 당시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은 물산업 육성법안을 대표발의한다. 공동 발의자 9명도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이 법을 보면 수도 관련 업무 전부 또는 일부를 전문 상하수도 사업자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8조), 외국인·외국법인도 지자체와 공동으로 상하수도 사업 관리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9조) 등 사실상 공개적인 물 민영화 입법이었다. 이 법은 18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어 자동 폐기되었다. 전반적으로 보면, 급하고 눈에 뜨이는 물 민영화 시도는 저지되는 반면, ‘전략’이 제안했던 점진적이고 조용한 살라미 전술은 중단 없이 추진 중인 셈이다.
이는 민영화 논란 이전에 정권의 도덕성 문제로도 비화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5월22일 “수도는 민영화 대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도 당정 협의를 통해 “수도 민영화는 없다”라고 못 박았다. 9월에는 환경부 장관도 물산업 육성 입법 포기 선언을 했다. 대통령·집권당·주무장관이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점검’을 보면, 물산업 육성 정책의 출발은 2009년 7월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이다. 구체화한 시점은 ‘전략’이 작성된 2010년 10월이다. 2008년 포기 선언 이후 고작 1년 만에 소리 소문 없이 정책이 재개된 셈이다. 박용성·정해동은 <물산업 정책변동과정에 대한 연구>(2011)에서, 2010년 이후 추진된 물 민영화정책이 포기 선언 이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썼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물산업 정책의 지지자다. 박 후보는 지난해 2월 “정부가 최근 물산업 육성전략을 세워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다행스럽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발언 이후 주식시장에서는 한때 물산업 관련주가 박근혜 테마주로 분류되기도 했다.
참여정부 때도 물 민영화 가능성 열어둬
민주당 문재인 후보도 자유롭지 않다. 2010년판 ‘전략’은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든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2007)을 사실상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이 보고서를 보면 민영화를 지자체가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적시했다. 민간 참여라며 에두르지 않고 정확히 민영화라는 단어를 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에 물산업 정책 상황을 점검하라고 직접 지시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시사IN>은 물산업을 민영화라고 평가하는지, 집권 후 계속 추진할 것인지를 두 후보 측에 물었다. 두 후보는 상반된 답을 보내왔다(18~19쪽 기사).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전략’과 ‘점검’에 등장하는 민간 참여는 민영화와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반론들을 종합하면, 시설 소유권과 요금 결정권이 지자체에 있으므로 민간이 경영하는 민영화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2007년 5개년 계획에서 민영화라는 표현을 정확히 쓴 것과 대조된다.
하지만 이는 민영화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에 맞지 않다(20~22쪽 기사). 더욱이 이는 민자 유치 도로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익숙하게 들었던 논리다. 가격 결정권이 중앙정부나 지자체에 있는 경우라 해도, 일단 운영권을 확보한 민간기업은 제품의 품질을 담보로 강한 협상력을 가지게 된다. 특히 상하수도는 네트워크 산업이어서 독점이 쉽고, 물은 대체 불가능한 생필품이다. “그 가격에 맞추려면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는 논리로 경험이 풍부한 대형 로펌을 내세워 지자체를 압박해올 때, 지자체는 예산으로 요구를 맞춰주거나 요금을 올리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작은 지자체일수록 협상력은 더 떨어지고, 지역 공론장의 감시도 더 헐겁다. 심각한 힘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일단 운영권을 민간이 확보하면 소유권과 가격 결정권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시장의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나금융 산하 하나산업정보는 지난해 7월 <물 비즈니스 관련 산업 현황 및 사업기회 점검>이라는 비공개 보고서를 썼다.
MB 정부와 박근혜 후보 “민간위탁일 뿐”
철저하게 사업 관점에서 관계사 내부용으로 쓴 이 보고서를 보면, 상수도에서는 광역화 확대 단계인 2015년 이후 4000억~5000억원 규모의 민간시장이, 하수도에서는 2020년 이후 1500억~2000억원 규모의 민간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2020년 이후 시설 수명이 다해 교체 수요가 크게 발생하리라 예상한다.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 물기업 8개가 탄생하리라고 ‘전략’이 예상한 시점이다. 컨설턴트가 보기에 최대 7000억원대의 민간시장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는 계획을 두고, 현 정부와 박근혜 후보는 민영화가 아니라 민간위탁이라고 굳이 구분하는 셈이다.
기업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대표적인 물산업 희망 기업으로 꼽히는 태영은 <시사IN>이 취재한 민간 참여 컨소시엄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렸다. 태영이 대주주로 있는 SBS는 5년째 세계 물의 날(3월22일) 특집 다큐멘터리를 편성하는 등 물 관련 프로그램에 유난히 공을 들인다. 또 다른 대표 물기업인 코오롱은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이 사장까지 지내 이명박 정부 물산업 정책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오랫동안 꼽혀왔다. 코오롱은 2008년 3월22일 세계 물의 날 걷기대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이만의 당시 환경부 장관과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직접 참여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영상 메시지를 보내 각별히 챙겼다. 직후 터진 촛불집회로 주춤했지만 여전히 물을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본다.
하수도 분야에서는 태영과 코오롱이 금호와 더불어 ‘빅3’를 형성하고 있다. 하수도 사업의 큰 손인 환경시설관리공단은 코오롱 소유이고, 또 다른 메이저인 TSK워터는 태영과 SK가 함께 만든 회사다. 삼성은 세계 1위 물기업 베올리아와 손을 잡고 삼성베올리아를 설립해 인천을 거점으로 하수도 사업에 발을 걸쳤다. 하수도 분야 메이저 기업들은 상수도 시장 진출에도 유리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장은 물 민영화를 이미 기정사실로 본다. 정부는 민영화와 민간 참여는 다르다며 딴청을 부린다. 공공 영역에 일단 민간이 재산권을 주장할 발판이 마련되면, 이를 되돌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유무역협정(FTA) 아래에서라면, 간접수용으로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제소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차근차근 단계별로 굳혀가는 ‘살라미 민영화’가 보기보다 강력한 이유다. 물 민영화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다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물 산업 관심 많은 박지만과 서향희
박근혜 후보의 올케이자 박지만 EG 회장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사진)는 정치권이 주목하는 핵심 인사다. 그런 서 변호사가 2010년 물산업에 주력하는 코오롱의 고문변호사가 된다. 그때부터 서 변호사는 물 관련 행사에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환경정책 관련 전문가, 정책 입안자, 산업계 인사 등이 모이는 환경인포럼이라는 사단법인이 있다. 서 변호사는 2010년 1차·2차 포럼, 2011년 1차 포럼에 참석한다. 2010년 2차 포럼에서는 물산업 육성이 포함된 ‘10대 환경산업 육성안’ 발표를 들었다.
2011년 1차 포럼에는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직접 나와 물산업 육성과 상하수도 민간 참여 정책이 포함된 발표를 했는데, 서 변호사는 이 자리에도 있었다. 코오롱 경영진과 코오롱 계열사인 환경시설관리공사 경영진 등이 같이 참석했다.
서 변호사는 2011년 1차 포럼을 마지막으로 참석자 명단에서 사라지지만, 성 아무개 변호사가 그녀를 대신해 2011년 7차와 2012년 2차 포럼에 참석하며 관계를 유지한다. 성 변호사는 서 변호사와 법무법인 주원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서 변호사가 법무법인 새빛을 차려 독립할 때 함께 옮겼다.
이와 관련해서 남편 박지만 회장이 경영하는 EG의 동향도 흥미롭다. 주로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의존하는 산화철 제조업체로 출발했던 EG는 올해 4월 등기사항을 변경해 ‘수질환경 시설업’ ‘환경설비 운영사업’ ‘환경(대기·수질) 해외 사업’ ‘플랜트 엔지니어링’ 등을 새로운 사업 분야로 등록했다.
출처 : 설마 했던 ‘물 민영화’, 이미 시작됐다
[시사인 273호] 천관율 기자 | 승인 2012.12.11 03:06:20
물이 민영화된다. 상하수도의 설계·시공·운영에 민간 참여가 차근차근 확대되고, 2020년 이후로는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 물 전문기업이 탄생한다. 물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생필품인 데다, 상하수도는 네트워크 산업이어서 독점이 쉽다. 민영화의 폐해가 나타나기 가장 좋은 영역으로 손꼽힌다.
물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다가 역풍을 맞은 인천공항 민영화·KTX 민영화와는 추진 방식이 다르다. 정부 계획부터 민영화 논란을 철저하게 의식했다. 일련의 추진 계획을 보면, 세세하게 단계를 쪼개고 단계마다 ‘기정사실화’ 과정을 거치며 천천히 진행한다. 각 단계는 모두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모아보면 결론은 민영화다.
일종의 ‘살라미 전술’이다. 목표에 이르기까지 저항이 너무 클 때, 한번에 목표를 이루기보다는 단계를 잘게 쪼개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협상 기법이다. 전체 그림이 분명해지면 돌이킬 수 없다. 여론은 민영화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높고, 특히 물 민영화는 대단히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인천공항과 KTX를 덜컥 팔려다가 저항에 부딪혀본 정부가 물 민영화 전략으로 내놓은 것이 이 ‘민영화 쪼개기’인 셈이다.
2010년 10월 녹색성장위원회·환경부·국토해양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보고서 하나를 내놓는다. 이름은 ‘물산업 육성 전략’(이하 ‘전략’)이다. 물 민영화의 근간이 담긴 보고서다. ‘전략’은 우선 상수도와 하수도를 달리 접근한다. 상수도부터 보자. <그림 1>은 ‘전략’ 12쪽에 실린 그림을 그대로 가져왔다.
천천히 티 안 나게 ‘민영화 쪼개기’
1단계는 164개 지방 상수도를 39개 권역으로 통합하면서, 사업자 간 경쟁을 유도한다고 되어 있다. 상수도 통합은 중복 투자를 해소하고, 영세성을 극복해 노후 상수도관 누수 문제에 대응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만으로 민영화라는 딱지를 붙이기는 힘들다.
하지만 ‘전략’은 이 단계가 사실상 민영화 준비 단계임을 스스로 인정한다. ‘전략’ 13쪽에는 이렇게 적었다. “민영화 논란으로 직접적인 민간기업 참여는 곤란. 단순 위탁 및 공기업과의 컨소시엄을 통한 운영경험 확보.”
이렇게 교두보를 확보한 후 민간기업의 수도 산업 진입을 점진적으로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즉, ‘전략’은 민영화 논란을 피해갈 수 있는 단순위탁(상수관망 관리를 예로 들고 있다)에서 출발해, 결국 민간기업이 수도사업 운영을 맡는 데까지 나가는 계획을 세워뒀다.
‘상수도 사업 운영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전략’ 6쪽은 “민간기업은 상수도 운영관리 실적이 부족해 해외 진출이 곤란(하여 실적을 쌓을 필요가 있다)”이라고 적었다. 즉, ‘전략’이 가정하는 해외로 진출하는 물기업(2020년에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은 사실상 민간기업이다. ‘전략’이 2020년까지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세계적 물기업이 8개다. 공기업인 수자원공사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정도의 ‘소박한’ 계획이 아니다.
2단계 경쟁체제 강화 단계에서는 사업자와 소비자가 상하수도 사업도 경쟁 체제로 운영되는 현실에 적응하게 된다. 한때는 낯설었던 민간기업 도로를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광역화가 확대되는데, 이 시기가 되면 민간기업이 수공에서 일부 광역 단위를 위탁받아 운영까지 주도해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3단계는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 단계다. 차근차근 성장해온 물 전문기업이 해외로 진출한다. ‘전략’은 이 물 전문기업이 공기업인지 민간기업인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민간 참여의 길을 계속 넓혀가는 정책 흐름과, ‘전략’이 기대하는 물기업 숫자를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 ⓒ시사IN 백승기 |
변수가 하나 더 있다. 하수도다. 수도꼭지를 틀면 당장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상수도는 소비자가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하수도는 그만큼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하수도는 이미 75% 정도가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사실상 민영화 단계이지만, 여론의 저항은 거의 없다.
<그림 2>는 ‘전략’ 13쪽 그림을 옮겨온 것이다. 하수도의 경우, 운영 주체에서 수자원공사와 공단이 아예 사라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략’은 민영화가 상당 수준으로 진행된 하수도에 대해서는 “전문 민간기업이 위탁받아 물 전문기업 육성”이라고 알기 쉽게 적고 있다. 일단 진도가 나간 후에는 기정사실화한다. 상수도 민간위탁이 상당히 진행된 후,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미리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략’의 최종 제안은 이렇다. 상수도와 하수도를 통합한다. 이것이 세계적 물기업 육성의 방법으로 제시된다. 상하수도 통합 역시 자체의 정책 논리를 갖고 있고 해외 선례도 있는, 논의해볼 만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 정책 또한 지방 상수도 통합과 마찬가지로, 민간의 상수도 사업 진출을 결과적으로 돕는다. 하수도는 이미 상당히 민영화됐다. 상수도는 민간 참여가 단계별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 통합 기업이 공기업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전략’이 스스로 답한다. 정책과제 3번 지방상수도 및 하수도 통합화·광역화. 4번 민간기업 참여 확대를 통한 물 전문기업 육성.
태영·두산·한화·포스코·동서·효성 등 참여
‘전략’은 이렇듯 사실상 물 민영화 계획을 밝히는 데다가 작성한 지 2년이나 된 보고서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혹시 이 ‘전략’이 일회성으로 제안됐다가 폐기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올해 5월에는, 역시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략’의 이행점검 결과 및 향후대책을 담은 보고서가 나온다(이하 ‘점검’). ‘점검’은 물기업 육성 분야의 대표 성과로 상·하수도 분야 민간기업 공동 운영과 위탁이 확대되었다고 밝힌다. 올해 3월에는 지자체·민간기업 업무협약도 체결됐다.
미흡한 점도 지적한다. 제도가 개선되어 민간참여 기반은 구축되었지만, 실제 참여와 운영경험 축적은 더디다는 것이 ‘점검’의 평가다. 민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운영실적을 더 확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적었다. ‘전략’의 기조와 정확히 같은 관점이다.
<시사IN> 취재 결과, 지방상수도 통합 사업의 민간 참여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강원 남부권 통합 사업을 보면, 태백·영월·정선·평창에서 통합 사업에 참여한 기업은 태영건설, 두산건설, 한화건설, 포스코건설, 동서, 효성 등이다. 하지만 전국으로 확대하면 4개 권역 8개 지자체가 통합이 완료된 반면, 또 다른 4개 권역 10개 지자체는 통합을 포기했다. ‘전략’이 기대한 만큼 속도가 나지는 않고 있다. ‘점검’이 지적한 대로다.
‘점검’은 또, 올 2월 하수도법이 개정되어 하수도 자율경쟁이 도입될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제출해 올 2월 통과된 하수도법 개정안의 제안 이유를 보면, 정부는 “전문성이 부족한 사업자에 하수도가 위탁되는 것을 방지하는 법”이라는 취지를 든다. 물산업이니 민간 참여니 하는 표현은 쏙 뺐다. 하지만 환경부는 법 개정 이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개정 취지를 ‘민간 참여 기회’와 ‘물산업 활성화’에 맞췄다. 한 민주당 전직 보좌관은 “국회가 정부에 당했다”라고 표현했다.
더욱 노골적인 시도도 있었다. 2011년 3월, 당시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은 물산업 육성법안을 대표발의한다. 공동 발의자 9명도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이 법을 보면 수도 관련 업무 전부 또는 일부를 전문 상하수도 사업자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8조), 외국인·외국법인도 지자체와 공동으로 상하수도 사업 관리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9조) 등 사실상 공개적인 물 민영화 입법이었다. 이 법은 18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어 자동 폐기되었다. 전반적으로 보면, 급하고 눈에 뜨이는 물 민영화 시도는 저지되는 반면, ‘전략’이 제안했던 점진적이고 조용한 살라미 전술은 중단 없이 추진 중인 셈이다.
▲ 2007년 6월 대한간호협회 창립행사에 참석한 이명박이 ‘아리수’로 목을 축이고 있다. ⓒ뉴시스 |
하지만 ‘점검’을 보면, 물산업 육성 정책의 출발은 2009년 7월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이다. 구체화한 시점은 ‘전략’이 작성된 2010년 10월이다. 2008년 포기 선언 이후 고작 1년 만에 소리 소문 없이 정책이 재개된 셈이다. 박용성·정해동은 <물산업 정책변동과정에 대한 연구>(2011)에서, 2010년 이후 추진된 물 민영화정책이 포기 선언 이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썼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물산업 정책의 지지자다. 박 후보는 지난해 2월 “정부가 최근 물산업 육성전략을 세워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다행스럽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발언 이후 주식시장에서는 한때 물산업 관련주가 박근혜 테마주로 분류되기도 했다.
참여정부 때도 물 민영화 가능성 열어둬
민주당 문재인 후보도 자유롭지 않다. 2010년판 ‘전략’은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든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2007)을 사실상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이 보고서를 보면 민영화를 지자체가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적시했다. 민간 참여라며 에두르지 않고 정확히 민영화라는 단어를 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에 물산업 정책 상황을 점검하라고 직접 지시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시사IN>은 물산업을 민영화라고 평가하는지, 집권 후 계속 추진할 것인지를 두 후보 측에 물었다. 두 후보는 상반된 답을 보내왔다(18~19쪽 기사).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전략’과 ‘점검’에 등장하는 민간 참여는 민영화와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반론들을 종합하면, 시설 소유권과 요금 결정권이 지자체에 있으므로 민간이 경영하는 민영화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2007년 5개년 계획에서 민영화라는 표현을 정확히 쓴 것과 대조된다.
하지만 이는 민영화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에 맞지 않다(20~22쪽 기사). 더욱이 이는 민자 유치 도로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익숙하게 들었던 논리다. 가격 결정권이 중앙정부나 지자체에 있는 경우라 해도, 일단 운영권을 확보한 민간기업은 제품의 품질을 담보로 강한 협상력을 가지게 된다. 특히 상하수도는 네트워크 산업이어서 독점이 쉽고, 물은 대체 불가능한 생필품이다. “그 가격에 맞추려면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는 논리로 경험이 풍부한 대형 로펌을 내세워 지자체를 압박해올 때, 지자체는 예산으로 요구를 맞춰주거나 요금을 올리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작은 지자체일수록 협상력은 더 떨어지고, 지역 공론장의 감시도 더 헐겁다. 심각한 힘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일단 운영권을 민간이 확보하면 소유권과 가격 결정권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시장의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나금융 산하 하나산업정보는 지난해 7월 <물 비즈니스 관련 산업 현황 및 사업기회 점검>이라는 비공개 보고서를 썼다.
MB 정부와 박근혜 후보 “민간위탁일 뿐”
철저하게 사업 관점에서 관계사 내부용으로 쓴 이 보고서를 보면, 상수도에서는 광역화 확대 단계인 2015년 이후 4000억~5000억원 규모의 민간시장이, 하수도에서는 2020년 이후 1500억~2000억원 규모의 민간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2020년 이후 시설 수명이 다해 교체 수요가 크게 발생하리라 예상한다.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 물기업 8개가 탄생하리라고 ‘전략’이 예상한 시점이다. 컨설턴트가 보기에 최대 7000억원대의 민간시장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는 계획을 두고, 현 정부와 박근혜 후보는 민영화가 아니라 민간위탁이라고 굳이 구분하는 셈이다.
기업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대표적인 물산업 희망 기업으로 꼽히는 태영은 <시사IN>이 취재한 민간 참여 컨소시엄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렸다. 태영이 대주주로 있는 SBS는 5년째 세계 물의 날(3월22일) 특집 다큐멘터리를 편성하는 등 물 관련 프로그램에 유난히 공을 들인다. 또 다른 대표 물기업인 코오롱은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이 사장까지 지내 이명박 정부 물산업 정책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오랫동안 꼽혀왔다. 코오롱은 2008년 3월22일 세계 물의 날 걷기대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이만의 당시 환경부 장관과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직접 참여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영상 메시지를 보내 각별히 챙겼다. 직후 터진 촛불집회로 주춤했지만 여전히 물을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본다.
하수도 분야에서는 태영과 코오롱이 금호와 더불어 ‘빅3’를 형성하고 있다. 하수도 사업의 큰 손인 환경시설관리공단은 코오롱 소유이고, 또 다른 메이저인 TSK워터는 태영과 SK가 함께 만든 회사다. 삼성은 세계 1위 물기업 베올리아와 손을 잡고 삼성베올리아를 설립해 인천을 거점으로 하수도 사업에 발을 걸쳤다. 하수도 분야 메이저 기업들은 상수도 시장 진출에도 유리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장은 물 민영화를 이미 기정사실로 본다. 정부는 민영화와 민간 참여는 다르다며 딴청을 부린다. 공공 영역에 일단 민간이 재산권을 주장할 발판이 마련되면, 이를 되돌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유무역협정(FTA) 아래에서라면, 간접수용으로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제소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차근차근 단계별로 굳혀가는 ‘살라미 민영화’가 보기보다 강력한 이유다. 물 민영화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다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물 산업 관심 많은 박지만과 서향희
▲ ⓒ뉴시스 |
2011년 1차 포럼에는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직접 나와 물산업 육성과 상하수도 민간 참여 정책이 포함된 발표를 했는데, 서 변호사는 이 자리에도 있었다. 코오롱 경영진과 코오롱 계열사인 환경시설관리공사 경영진 등이 같이 참석했다.
서 변호사는 2011년 1차 포럼을 마지막으로 참석자 명단에서 사라지지만, 성 아무개 변호사가 그녀를 대신해 2011년 7차와 2012년 2차 포럼에 참석하며 관계를 유지한다. 성 변호사는 서 변호사와 법무법인 주원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서 변호사가 법무법인 새빛을 차려 독립할 때 함께 옮겼다.
이와 관련해서 남편 박지만 회장이 경영하는 EG의 동향도 흥미롭다. 주로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의존하는 산화철 제조업체로 출발했던 EG는 올해 4월 등기사항을 변경해 ‘수질환경 시설업’ ‘환경설비 운영사업’ ‘환경(대기·수질) 해외 사업’ ‘플랜트 엔지니어링’ 등을 새로운 사업 분야로 등록했다.
출처 : 설마 했던 ‘물 민영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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