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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뉴라이트

뉴라이트 인사의 공적 지원금 횡령

뉴라이트 인사의 공적 지원금 횡령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 | 입력 : 2012-06-30 14:30:46 | 수정 : 2012-06-30 14:30:46


“주문. 피고인 양○○을 징역 7년 및 벌금 2억5000만원에, 피고인 김범수를 징역 5년에 처한다. … 압수된 증 제1, 2호를 피고인 김범수로부터 각 몰수한다. 피고인 양○○으로부터 2억3036만500원을 추징한다.” 지난 5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23형사부 법정. 피고들에게 적용된 죄는 양씨에게는 뇌물, 김씨에게는 횡령, 사기, 업무상횡령, 뇌물공여,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법 위반이 적용되었다.

얼핏 봐서는 통상적인 뇌물수수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막은 경악스러웠다. 지난 6월 하순, 언론들은 일제히 “‘미소금융’지원금 꿀꺽해 재테크까지… 뉴라이트 단체 대표 징역 5년”이라고 김범수씨 사건을 보도했다.

“사실 깜짝 놀랐다. 민생포럼은 뭐고, 사람사랑은 또 뭔지 헷갈리는 부분도 있고, 갑자기 일이 터지니까 나도 당황했었다. 저 분이 정말 그랬나 하고 믿기지도 않고….” 사회적 기업 대표를 맡고 있는 A씨의 말이다. A씨의 회사는 김씨 사무실에 입주해 있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나왔을 때 A씨는 사무실에 있었다. A씨도, 김씨 회사 직원들도 다 황당해 했다.

▲ 종로구 청진동에 자리잡은 미소금융중앙재단 사무실. /정용인 기자

A씨에게 김씨는 사무실을 빌려 쓸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었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김씨 주변의 수상한 돈 흐름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해 11월부터 흘러나왔다. 사법당국도 김씨와 김씨 주변인물들을 내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꼬리가 잡혔다.

결과는 깜짝 놀랄 만했다. 미소금융중앙재단으로부터 사회적 기업에 대한 시설 및 운영자금 대출을 위한 지원금 명목으로 지급받은 돈은 민생포럼이 3년에 걸쳐 65억원, 사단법인 사람사랑이 10억원으로 모두 75억원이었다. 지원금은 사회적 기업에 지출돼야 하며 지원금액의 80%가 소진돼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공적 지원금 유흥비 등으로 날려

김씨가 횡령한 금액은 75억원 중 23억3167만여원. 6개 예비 사회적 기업들이 지원받은 것처럼 문서를 위조했다. 이 중 미소금융중앙재단 사업총괄부장을 맡고 있던 양씨에게 흘러들어간 돈은 2억1653만원이었다. 3억4084만원은 현금으로 인출해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 2,030만원은 부인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지급했고, 지인들에게 총 3억3000만원을 빌려줬다. 지인들 중에는 민생포럼과 사람사랑의 임원들도 있었다. 공적으로 지출되어야 할 돈을 개인 돈처럼 펑펑 쓴 것이다.

재판에서 김씨와 양씨는 2억1653만원을 차용금이라고 주장했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의 한 간부는 “내 의견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이들 측 주장을 들려줬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6촌인가 그렇다. 가까운 친척은 아니고 외가 쪽이라고 하는데, 친척이니까 서로의 속사정은 뻔히 알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말 뇌물을 받으려고 했다면 한꺼풀만 벗기면 다 드러나는 계좌로 주고받았겠느냐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항소도 준비한다고 하던데….”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된 것은 민생포럼이 복지사업자로 선정된 이후이며, 차용증도 작성하지 않은 채 무이자 무담보로 거액의 금전대차거래를 했다고 보기 어렵고, 돈을 빌려줄 당시에 김씨는 다른 경제적 수입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돈을 빌려줄 여유가 없었을 뿐 아니라, 양씨는 자신 명의의 적금, 골프장 회원권 등 자산을 갖고 있었으며, 치과의사인 부인이 부동산 및 금융재산 등 상당한 재력을 보유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양씨와 김씨는 미소금융중앙재단 인근 종로구 청진동 소재 유흥주점에서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288만원의 향응접대비를 썼다. 음주는 주중에, 골프 접대는 금요일과 주말에 주로 이뤄졌다. ‘범죄 일람표’에 따르면 양씨는 술자리에 항상 3~4명을 대동했다.

납득되지 않는 부분은 미소금융중앙재단의 다른 임원은 두 사람의 공모를 정말 몰랐느냐는 것이다. 양씨가 술자리에 데리고 간 사람들은 도대체 누굴까. 앞의 재단 간부는 “검찰도 조직적 수뢰를 의심해서 사람들을 여럿 소환했다. 추가적으로 구속된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재단 내부에는 같이 간 사람이 없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감독·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기 현장실사를 나간 재단의 직원이 통장 거래내역을 확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양씨는 “통장 거래내역을 확인한 결과 대출금이 수혜자에게 적정하게 대출되고 있었다”는 내부 보고서를 결제했다. 결국 양씨가 다 조작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앞의 재단 간부는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가 현장파악에 소홀했다는 지적은 맞다”고 말했다.

궁금한 것은 또 있다. 무려 23억원을 횡령하는 과정에서 김씨가 관여한 민생포럼과 사람사랑의 직원들은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언에 따르면 김씨는 열쇠를 채운 금고를 두고 따로 관리했다. 다른 지원기관 관계자는 “김씨가 횡령한 돈과 관련해서는 김씨와 김씨 최측근 인사만 관리를 했기 때문에 일반 직원들은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근무했던 직원으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김씨 관여 단체 뉴라이트 “맞다”

김씨가 ‘뉴라이트’ 쪽 사람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민생포럼과 함께 사업자로 선정되었던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전직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번인가 김씨를 만난 적이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의 전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적어도 뉴라이트 쪽 사람은 아니다. 대선 때 박영준 전 차관 등이 만든 선진국민연대 쪽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진국민연대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사에게 물어봤다. “김범수? 처음 듣는 이름이다. 우리와 같이 일한 적은 없다. 이번에 터진 횡령사건 이야기는 얼핏 들었는데, 워낙 선진국민연대를 팔아먹던 사람이 많았으니까.”

사실 ‘휴면계좌의 돈을 사회적 기업에 대출하자’는 아이디어의 애초 제안자는 뉴라이트 쪽이 아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상임이사를 맡던 시절, 희망제작소에서 제안한 사업이다. 당시 희망제작소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의 말이다. “‘아, 그거 아이디어 좋네요’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청와대에서 비서관도 와서 보고까지 했습니다. 그 자리에 김승유 행장(미소금융재단 이사장)도 있었고.”

뉴라이트 단체들이 들어오면서 사업 주체가 갑자기 바뀌었다. “이게 돈이 된다고 생각했겠죠. 자기들끼리 아귀다툼하다가 결국….”

뉴라이트가 관련 없다는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쪽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본지가 입수한 재단법인 사람사랑의 연혁 및 조직표를 보면 2010년 11월 11일 출범한 법인의 이사장은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맡은 것으로 되어 있다. 박 교수는 이른바 대안교과서를 만들어낸 교과서포럼의 공동대표다. 교과서포럼은 2005년 만들어진 ‘뉴라이트네트워크’ 참여단체다. 사회적 기업 지원단체의 한 인사는 말한다. “솔직히 분통터진다. 사회적 기업과 같은 분야는 이념을 떠난 분야다.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단체를 급조해서 치고 들어오는데, 결국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판을 말아먹고 안 좋은 이미지만 남긴 것 아니냐.”

김씨 사건은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속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5년 넘게 어렵게 쌓아온 사회적 기업 사업에 대한 신뢰에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이다.


출처 : 뉴라이트 인사의 공적 지원금 횡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