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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우물이 더럽다고 침 뱉지 마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엄마는 내게 한 가지를 당부하셨다. 우물이 아무리 더러워도 침을 뱉지 말라는 거였다. 그땐 그냥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연차가 쌓이고 진급을 하고 이직을 하면서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몇 번의 사건들이 있었다. 한 번은 실력도 없고 지각을 일삼는 상사가 모욕적인 언사로 꾸중을 하자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차라 담아두었던 얘길 다 쏟아붓고는 확 그만둬버렸다. 여행을 다녀오고 새직장을 구하고 나는 그 일을 잊어버렸다. 몇 년이 지나고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 같던 그 상사 때문에 나는 크게 낙담해야만 했다. 조건이 좋은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관이 그 상사와 첫 직장 동기였던 거다. 그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나에 대해 물으니 당연히 좋은 소리.. 더보기
중고차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혹시 여기 주차되어 있는 차 주인이세요?" "네, 그런데요?" 대답과 함께, '차를 어디에 주차해 두었지?'라고 자문하며 차를 빼달라는 건가 생각했다. "혹시 차 파실 생각 없으세요?" "@.@" 지나가다가 내 차를 보고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13년이 넘었으니 누가 봐도 부담없는(?) 차이긴 하다. 그는 근처에서 컴퓨터 부품 가게를 운영하는데 자신에게 딱 필요한 차량이라고 했다. 세상에 내 차를 탐내는 사람도 있구나 싶은 것이 유쾌하기는 했지만 나에게도 필요한 차량이다. 그 정도 차량은 벼룩시장만 찾아봐도 30만원이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조언을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뿐이 아니다. 도대체 누가 저런 차량을 담보로 대출을 해준다고.. 더보기
나 보고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몇 해 전 아침형 인간이 전 국민의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같은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생활습관을 전면 수정하거나 기업들은 아예 출근시간을 앞당겨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CEO의 평균 기상시간이 새벽 5시라는 신문기사도 뜨고 암튼 4,500만이 하나되어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책의 내용인즉 사람의 뇌는 새벽 5시부터 8시까지 가장 왕성한데 이때의 1시간은 다른 3시간의 효율과 같아서 시간에 쫓기던 사람이 시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인생을 두 배로 살 수 있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미국의 대통령 카네기는 인생의 가장 큰 지출이 아침잠이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나도 해봤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을 정독하고, 아침밥을 .. 더보기
고향 나에게 고향은 어떤 곳일까? 깨달은 자의 침묵처럼 어두워진 거리에서 나는 가끔 그렇게 자문한다. 그리고 검게 변한 강물에 붉은 불빛을 드리운 자동차 행렬들을 볼 때면, 살았던 시간보다 몇 갑절은 긴 거리를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가는 연어들의 회귀를 생각한다. 구석진 강이라 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연어들의 늙은 회귀처럼 나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서울도 고향이냐고. 그러나 내 기억의 고향에도 연 날리던 바람 부는 언덕과 썰매를 지치던 겨울 논바닥이 있으며 줄을 매달아 그네를 타던 커다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여름이면 몰려가서 멱을 감던 냇가와 낚시를 즐기던 저수지까지. 그러니 추억이 남아 있는 한 진짜 숲이 있던 자리에 아파트숲이 자.. 더보기
가을 타세요? 김광석의 오래된 노래를 듣습니다. 기형도의 낡은 시집을 꺼내 읽습니다. 11월의 우울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 그들의 음성과 글은 커피향보다 더 진한 휴식이 되고 위로가 되어 한 소절, 한 구절이 토닥거려주고 포옹해주네요. 연예계에는 11월의 괴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독 11월엔 우울증에 의한 자살 사건이 많이 있었지요. 어째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하기보다는 슬퍼지고 무기력해지고 종내에는 마지막을 결심하게 되는 걸까요? 우리가 흔히 가을 탄다고 말하는 가을증후군은 경쟁 심리, 성취 욕구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요. 그 이유는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지는 건 잠시, 1년 동안 난 무얼 하고 살았나- 의기소침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까닭이라고 합니다. 다.. 더보기
秋雪 몹시 당황스런 아침이다. 막바지 단풍을 촬영하기 위해 강원도에 왔기 때문이다. 11월 2일 아침에 맞이하는 첫눈. 게으름 덕분에 단풍 대신 겨울을 만났다. 2주 전 강원도 일대 촬영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축복 같은 아침이라는 생각이다. 다 져버린 단풍은 고사하고 눈까지 내리고 있음에도 벌써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도 맞이한 것처럼 들떠 있으니 말이다. 숲속의 집에 내리는 첫 눈을 보며 또 그런 생각을 한다. 때로 게으름은 의외의 선물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라고. 그러니 너무 서둘지 않아도 세상은 괜찮은 것이라고 위로한다. 더보기
열을 세어 보아요. 금연하면 8년, 운동하면 9년, 숙면하면 3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면 6년을, 그리고 스트레스를 줄이면 32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내 안에 화(anger)를 다스려야 건강하고 행복한, 웰빙이 가능하단 얘기지요. 하지만 무조건 화를 참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화가 나면 열을 세고 누군가 죽이고 싶도록 미울 때에는 백까지 세었다고 합니다. 잠시 한 발 물러서서 내 안의 화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동시에 감정을 이성으로 변환시킬 수 있도록 마음의 환풍기를 켜두는 거지요. 그 후에 화를 내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자네가 화낼만 하군' 동의하게 되니 다혈질의 누명을 쓰지 않고도, 인간관계를 해치지 않고도 화를 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화를.. 더보기
가을에게 배운다 세상이 온통 울긋불긋 물들고 있다. 설악에서 시작한 단풍이 멀리 제주까지 달려갔고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잎들의 향연을 보기 위해 도시를 떠난다. 이 계절이 지나면 그리 붉었던 잎들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왜 잎들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아름다운 것일까. 생을 마치기 직전, 일생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는 단풍. 사람의 삶도 그리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언젠가 맞이하게 될 생의 끝자락이 살아온 어느 순간 중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면 붉디붉은 단풍보다 더 고울 수 있지 않을까. 한평생 살아온 연륜과 여유와 애잔함이 묻어나는 모습이라면 고단하게 걸어왔던 여정도 밝게 빛날 수 있지 않을까. 더보기